무신불립(無信不立)’을 생각할 때다 [신현덕]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생각할 때다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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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불립(無信不立)’을 생각할 때다

2018.07.17

지난 6월 말부터 저는 엉터리 간병인으로 지냈습니다. 아내가 어깨 수술을 받아 2주 넘게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아내는 그간 ‘50견’이라고 자기진단을 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물리치료만 받았습니다. 여느 때보다 통증이 심한 날, 정밀 검사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깨뼈에 석회질이 달라붙어 자랐고, 인대를 야금야금 갉아 끊어졌습니다. 자기진단에 따른 처방이 더 큰 화를 불렀던 것입니다.

처음 진단 받은 곳의 의사는 어찌나 장황하게 이야기했던지 환자들이 못 미더워 했습니다. 아내 말에 따르면 환자의 증상을 농담하듯 말하고, 자기의 치료 능력과 경력을 자랑삼아 늘어놓았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보다 학벌이 좋거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의사들을 경멸하는 발언도 들었습니다. ‘학력에 대한 편견’이 지나쳤습니다.

아내가 여기저기 수소문했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병원의 시설과 규모, 명성이 아니라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주관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한 곳을 알아냈습니다. 집에서 65㎞ 떨어져 간병하기가 아주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곧바로 입원, 수술을 받았습니다. 담당의사는 성과 열을 다했고, 환자들은 믿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온갖 불편을 감수하고 병원을 바꾼 것은 오직 신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주부가 하는 온갖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중 빨래가 가장 까다로웠습니다. 30여 년 전 서독에 갔을 때 세탁기로 처음 빨래를 했습니다. 기숙사 지하에 있는 세탁기에 동전을 넣어 옷을 빨았고, 다른 기계로 말렸습니다. 요즘 흔한 ‘빨래방’ 같은 곳이었습니다. 빨래가 되는 시간,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쩌다 늦게 가면, 다른 이가 벌써 빨래를 시작했습니다. 제 빨래는 바구니에 들어 있었지요. 때로는 빨래가 바뀌거나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혹은 며칠 지나면 반드시 그 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독일 생활에서 정말 믿지 못할 신뢰도 경험했습니다. 동서독 경계에서는 ‘독일은 서독보다 더 크다’는 낙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서독의 낙서에서 ‘동독의 완전한 체제를 보장한다’는 것을 보질 못했습니다. 그 말은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국민들이 알았습니다. 또 서독인들은 허용된 동독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청을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체제 선전(거짓)이 지나친 결과입니다. 동독 당국은 서독 시청자들의 ‘채널고정’을 유도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동독 시청자들조차도 동독 텔레비전의 뉴스에서 눈을 돌렸습니다. 재미는 훨씬 덜했지만 서독 텔레비전의 거짓 없는 팩트(사실)는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비자를 갱신할 때가 되었을 때 갑자기 독일을 벗어날 일이 생겼습니다. 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서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시청 담당자가 사정을 듣더니 “서류가 오는 즉시 나에게 가져오라”고 당부하며, 1년 기간의 비자를 선뜻 찍어 줬습니다. 그는 “사람 사이에 신뢰가 없는 사회는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고 철학자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지금도 가끔 독일 정부나 기관에 전자우편을 보냅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반드시 답이 옵니다. 답변이 부정일 경우, 가능하면 긍정인 해결방향도 제시합니다. 1980년대는 우편으로 몇 주일이 소요되기도 했습니다만 최근에는 며칠이면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나라 안, 특히 국가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불안해 보입니다. 외국 기업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고, 남북 간에는 아직도 괴리가 크며, 동맹국과는 엇박자가 느껴집니다. 산업현장에선 어설픈(?) 정책에 불복종 운동까지 벌어집니다. 온갖 피의사실을 까발리고, 조리돌림을 서슴지 않으며, 권력기관은 자기부정을 일삼고, 공무원은 ‘필요한 경우 할 수 있다’는 법조항을 들이밀며 "필요한 경우가 아니다"고 말하곤 합니다. 제가 공무원에게 보낸 메일 날짜를 보니 일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답이 없습니다.

최근 북한산 봉우리를 쳐다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民無信不立)’고 한 말을 곰곰 생각해 보곤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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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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