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 친 '국민참여재판'의 예견된 실패..."활용률 1%대 '뚝'"


큰 소리 친 '국민참여재판'의 예견된 실패..."활용률 1%대 '뚝'"


피고인 "재판 예측 더 어려워"  

변호인 "배심원용 자료제작 힘들어" 


외면받은 국민참여재판 10년 

하루 안에 배심원 선정·판결 

재판 길어져 자정 넘기기 일쑤  

"시간 과다 소요로 집중력 떨어져" 


중립성 의심받는 배심원들 

법보다 피고인에 대한 연민으로  

약한 평결 내리는 경향도 많아 

판사 판결과 불일치 155건


아직 한국 실정에는 안맞아 의식 수준 결여

국민 수준이 선진국 정도는 돼야 가능

(케이콘텐츠편집자주)


   도입한 지 만 10년을 넘긴 국민참여재판이 정작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2008년 도입 후 5%에 육박했던 국민참여재판 활용률은 1%대로 추락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참여재판 신청 여부를 결정하는 피고인들이 외면하고 있고 변호사와 검사, 판사들 사이에서도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공판에서 확인된 내용을 토대로 사건 실체를 파악하는 선진적인 ‘공판중심주의’를 실현하고 투명 판결을 유도할 것이란 청사진은 크게 퇴색했다는 평가다.




피고인과 변호사·판검사도 ‘외면’ 

8일 대법원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2008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10년간 이뤄진 국민참여재판은 총 2267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대상 사건 14만3807건의 1.57%에 불과했다. 도입 4년차인 2011년에 4.27%까지 올랐던 재판활용률이 이후 추락을 거듭해 1%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민참여재판 신청률도 2011년 8.3%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에는 3.6%로 낮아졌다.




국민참여재판 대상은 법정형이 사형,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 금고에 해당하는 형사사건이다. 참여재판의 부진은 피고인과 변호인이 배심원단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많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이 직접 신청해야만 열리는 ‘피고인 신청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은 일반 재판(4.2%)보다 두 배 이상(10.1%) 높다. 하지만 피고인들 사이에서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오히려 형량이 높아질 수 있으니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인식이 높다.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형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판사 개인만 설득하면 되는 일반 재판에 비해 국민참여재판은 최대 9명의 배심원을 설득해야 한다”며 “이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하는 일은 예측 불가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는 “배심원단이 유죄를 평결하면 재판부가 양형 기준상 상대적으로 센 형량을 선고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배심원 재판이 ‘모 아니면 도’로 나오는 경향이 있어 법리에 집중하는 법관의 판결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높다는 설명이다.


연민에 약한 배심원들? 

배심원들이 피고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등에 흔들릴 것이란 도입 당시의 우려는 더 커졌다는 진단이 우세하다. 국민참여재판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강도·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은 피고의 여동생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젖먹이를 안고 나와 배심원의 동정심을 자극한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근소한 차이로 유죄 평결을 받았지만 한눈에 봐도 배심원단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단을 한자리에 모으는 데 한계가 있어 선정부터 판결까지 주로 하루 안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한다. 이 경우 재판이 길어지면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한 변호사는 “밤 12시를 넘기면 판사, 검사, 변호인, 배심원 모두 집중력이 떨어진다”며 “그런 상황에서 무슨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서면으로 의견서와 증거를 제시하는 보통 재판과 달리 국민참여재판은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등 수고가 만만치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수임료가 더 높지도 않아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국민참여재판 한 건 하느니 일반 재판 열 건 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 설명이다.



민사까지 국민참여 확대하려는 대법원 

배심원단의 전문성과 중립성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 큰 문제로 꼽힌다. 10년 동안 배심원 평결과 판사의 판결이 다른 경우는 총 155건으로 국민참여재판 건수의 6.8%다. 대부분 배심원이 무죄 평결했지만 재판부가 유죄 판결한 사례다. 




중립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거 박근혜 대선 후보를 비방했다는 공직선거법 혐의로 2013년 재판에 넘겨진 안도현 시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배심원은 무죄 평결했지만 재판부는 선고를 미루고 이후 유죄로 판결했다. 과거 여론의 관심이 높은 한 재판에서는 판사를 협박해 배심원 평결을 관철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미국은 헌법에서 배심제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임을 명시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전통적으로 쌓여온 배심원제에 대한 인식을 한국에 무조건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국민참여재판이 유명무실한 채로 겉돌고 있지만 정부는 확대를 적극 검토 중이다. 대법원은 살인 등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중대 범죄에 대해 의무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받도록 하거나 배심원 전원일치 무죄평결 판결에 대해 검사의 항소권을 제한하는 등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전문성과 중립성에 대한 보완책이 없다면 부작용만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찮다.


정부는 국민참여재판을 민사재판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민사는 사인 간 법적 다툼에 국민 정서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부작용만 키울 것이란 지적이 많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민사재판은 형사재판보다 더 높은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배심원들이 짧은 시간에 얼마나 사건을 이해하고 의미 있는 결론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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