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만에 고향 찾은 6·25 전사자 [방석순]

카테고리 없음|2018. 7. 11. 10:48


68년 만에 고향 찾은 6·25 전사자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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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만에 고향 찾은 6·25 전사자

2018.07.11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지난달 19일 대구에서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국군 일병 고 윤경혁 씨 혼령의 귀환식이 열렸습니다. 윤 일병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전선에서 산화했습니다. 그리고 68년 만에야 핏덩어리로 두고 떠났던 백발의 아들(윤팔현 씨)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고 윤 일병의 생애도 그 유해의 송환 과정도 참으로 애달프고 기구합니다. 스물한 살에 결혼, 2남1녀의 가장으로 행복한 삶을 꾸리던 그가 전선에 달려나간 것은 전화가 한창이던 1950년 8월. 미 1기병사단에 배속되었으나 그해 11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아군이 밀리던 중 북한 지역에서 전사했습니다. 유해는 지난 2001년 평안남도 개천 지역에서 미북 공동발굴 작업 중 다수의 미군 유해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고국 땅을 떠나 멀리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정밀감식 과정에서 뒤늦게 국군으로 추정되었고, DNA 검사를 통해 최근에야 비로소 신원이 확인된 것입니다.

“글쎄, 기쁘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고 윤 일병의 송환식에 참석한 사촌동생은 적잖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우리 정부나 국군이 찾아낸 게 아닙니다. 미군이 발굴해 태평양 건너 미국 땅까지 갔다가 멀고 먼 길을 되돌아오게 된 기이한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난달 12일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싱가포르에서 사상 처음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핵과 미사일을 놓고 험악한 말싸움을 벌이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놀라웠습니다. 4개 항의 합의문도 놀라웠습니다.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 유지 노력,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전쟁포로(POW) 및 실종자(MIA) 유해 발굴 및 송환이 발표된 합의 내용입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네 번째, 예상 밖의 합의사항이었습니다. 그렇게 적대적이던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한 그 중요한 회담에서 전사자와 실종자의 유해 송환에 합의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야말로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숱한 인종이 모여서 만들어진 미합중국을 지켜나가는 힘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에 대한 존경, 자국민에 대한 철두철미한 보호 정신일 것입니다. 그게 내가 믿고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북한도 그런 미국과의 대화를 열기 위한 선제 노력으로 억류자를 석방하는 일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나 나빴을 때나 우리 정부가 북한 측에 국군 포로나 전사자 유해의 송환에 대해 제대로 언급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보다 당장 살아 있는 국군 포로나 납북자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협의를 요구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인도주의, 경제협력 등 갖가지 구실로 북에 막대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우리 정부는 국군 포로, 납북자 송환 문제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평화 구걸에만 매달려 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은 전후 상호교환으로 포로 문제는 완결되었다는 입장입니다, 전향한 사람 이외의 억류자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방관과 무관심 속에 그동안 십여 명의 국군 포로가 온갖 역경을 헤치고 자유 대한을 찾아 돌아왔습니다. 그때마다 북에 억류되어 고통 속에 연명해 가는 국군 포로들의 실상이 폭로되었습니다. 정부도 북에 억류된 포로를 4만여 명, 생존자를 5백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탈출 포로의 구원 요청에는 부처 간 책임 미루기나 미온적 태도로 절망감만 안겨주곤 했습니다.

지난 2003년 북한을 탈출한 국군 포로 전용일 씨는 중국에 숨어 지내며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포로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포로가 되고,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탈출한 그가 조국으로부터 부정당했을 때 느낌이 어떠했을까요? 비상수단으로 위조여권을 마련, 고국행 비행기를 타려던 그는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국내에 이 사연이 알려지고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뒤늦게야 중국 당국과의 교섭에 나서 전씨는 환국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합의문이 발표된 직후 미국은 물론 여타 세계 언론에서 트럼프가 속은 것 같다는 논평이 나왔습니다. 혹시 이면합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북핵 폐기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여전히 자신만만하지만 최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다녀온 후에도 양측 사이에는 날 선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될지, 정말 트럼프의 제안대로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버릴지, 아직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에서 미군 유해의 송환은 여전히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북한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북에 묻혀 있던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의 뜻을 밝혔습니다. 미북에 앞서 몇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고, 민족 화해를 부르짖는 남북 사이에서는 왜 그런 인도적인 사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국군 포로, 납북자 문제를 외면한 남과 북의 어떤 화해 제스처도 정치적인 쇼요 위선일 뿐입니다. 이산가족 만남이나 스포츠 교류, 경제 협력 이전에 인도적, 인권적 차원에서 남북에 억류된 국군 포로, 납북자, 비전향자의 생존 확인과 송환 문제부터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합니다. 죽어서도 고국 땅에,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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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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