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욕하고 재미로 일하나? [김홍묵]


재미로 욕하고 재미로 일하나?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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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욕하고 재미로 일하나?

2018.07.05

한국 축구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 독일을 꺾은 이변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짜릿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뻥 축구’가 아닌 필사즉생(必死卽生)의 배수진으로 더 빨리, 더 뛰고, 더 압박한 결과입니다.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각오의 결실입니다. 국민 모두가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조별 리그 3패 예측을 뒤엎고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완파한 승리는 우리 젊은이들의 기상·투지·열정이 충만해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쉽게도 16강 진출은 좌절됐지만, 2002년 서울 월드컵 4강 쾌거에 버금가는 여운을 남겼습니다. ‘붉은 악마’ 응원단과 국민의 염원이 승화된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환호 이면에는 적지 않은 생채기가 남았습니다. 댓글 테러 때문입니다. 스웨덴과 멕시코 전에서 태클로 상대방에게 페널티 킥을 내준 장현수(27)에게는 “국외로 추방해라” “태형을 시켜라”는 등의 독설이 쏟아졌습니다. 독일 전 선방으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조현우(27)는 아내의 외모를 비하하는 악성 댓글 때문에 시종 얼굴에 웃음을 거두었습니다.

왜 그렇게 남을 비방하고 욕들을 할까요?  댓글창의 익명성 때문에, 습관적으로, 남들이 하니까, 재미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쫄보’ 되기 두려워서, 친근감의 표현으로…. 욕을 하는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스마트폰 세상에서 대면(對面)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MIT 셰리 터클 교수 저서)이 많아져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일본생산성본부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전국 신입사원 1,644명에게 장래 목표를 물었더니 ‘사장까지 올라가고 싶다’고 답한 사람(10.3%)이 196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적었다고 합니다. 임원(14.2%) 부장(16.3%) 주임이나 팀장(10.4%)이 되고 싶다는 응답보다 적었습니다.

한편 ‘젊어서 고생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느냐’는 질문에는 ‘사서 고생할 것까진 없다’는 사람(34.1%)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힘든 일을 하게 된다면 몰라도 일부러 고생을 할 생각은 없다는 반응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돈을 주고도 사서 한다’는 옛 속담은 요즘 젊은이들에겐 고리타분한 헛소리일 뿐인 것 같습니다.

‘일하는 목적’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1970년대 고속 성장기 때는 ‘자기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일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재미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경제적 풍요를 위해’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올 신입사원들은 재미있는 생활(41.1%) 경제적 풍요(30.4%)를 앞세우고, 자신을 시험하고 싶다는 사람(10.0%)은 열에 하나 정도였습니다.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의 중등 장학사 선발 시험에 17개 분야 중 2개 분야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젊은 교사들이 일 많은 보직교사나 장학사 자리보다 개인생활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임·기간제 교사가 보직을 맡거나 제비뽑기를 하는 실정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야망이 줄어든 현상을 언론은 ‘욕망의 거세’라고 해석합니다. 그들의 욕망 거세 현상과 우리 젊은이들의 닥치고 욕설 테러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굳이 공통점을 찾으라면 ‘재미’를 우선시한다는 점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은 재미있는 생활을 위해 야망을 접고, 한국 젊은이들은 책임지지 않는 공간에서 재미로 욕을 한다니 말입니다.

재미는 자양분이 많고 맛이 좋은 음식을 가리키는 자미(滋味)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어떤 일에 대한 흥미, 그것에 대한 만족감의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끝없이 다양한 재미를 추구합니다. 재미는 삶의 활력소이기도 하지만, 생활 일상에서 재미만 추구하다 보면 거짓말이나 욕설과 결합해 상상 밖의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몰래 카메라 촬영, 온라인 게임 몰입, 페이크 뉴스 배포, 온라인 시스템 해킹 등 재밋거리는 끝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재미에 대한 탐닉은 알게모르게 인격 파탄, 아동 폭력, 자녀 학대, 여론 오도, 전산망 마비, 근로의욕 상실 같은 반사회적 행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이를 더욱 부채질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꽃아까시나무 (콩과) Robinia hispida L., Mant. 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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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꽃이 아닌 빨간 꽃을 매단 아카시아를 만났습니다.
정식 명칭은 ‘꽃아까시나무’인데 ‘붉은아까시나무’라고도 합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매우 귀에 익은 동요의 한 구절,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카시아는 옛 시절 추억이 깊이 새겨진 
아련한 그리움과 정겨움이 배어 있는 꽃 이름입니다.
   
하지만 아카시아(Acacia catechu)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산지인 상록수로서
우리가 예전에 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種)입니다.
국내에서 불리고 있는 아카시아가 잘못된 이름이라는 것을
산들꽃에 관심을 두고 난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어린 시절의 아카시아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로서
현재는 국명(國名)도 아카시아에서 아까시나무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것이라서
아직도 ‘아카시아’라 불러야 훨씬 의사소통이 잘 됩니다. 
  
왜 북미 원산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가 
한국에서 ‘아카시아(Acacia catechu)’로 바뀌었을까?
상록수인 아카시아가 식물학계에 알려진 이후 
미국 남동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 중
아카시아의 잎을 닮은 나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의 종소명(種小名)을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의 
‘pseudo-acacia’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영명(英名)도 'False Acacia'라 하였고
일본도 '니세(にせ 偽) 아카시아'라고 불렀는데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이 나무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심어지기 시작하면서
가짜라는 부정적 의미의 '니세'를 생략한 채 
‘아카시아’로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하얀 꽃을 피우는 북미산 아까시나무는 
중국 북경에서 일본인이 묘목을 가져와 
1891년 인천에 심은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후 맹아력이 좋고 아무 땅에서나 속성으로 잘 자라 
황폐지 복구용 또는 연료림으로 전국에 심어져
마치 우리 자생종인 것처럼 산과 들, 주변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붉은 꽃을 피우는 ‘꽃아까시나무’는 
1920년경 관상수로 국내에 도입되었습니다.
아까시나무와 도입 시기가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널리 퍼지지 못한 것은 
관상수 용도보다는 사방용, 연료림 용도가 
보다 절박한 시대적 배경 탓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꽃아까시나무는 북미 원산을 스페인이 관상용으로 개량한 나무입니다.
꽃은 5∼6월에 연한 붉은 색으로 피는데 
꽃이 아까시나무보다 2배 이상 크고 아름답습니다. 
아까시나무보다 줄기, 가지에 붉은색의 굳센 털이 밀생합니다.
꼬투리에는 5∼10개의 종자가 들어 있지만, 열매를 잘 맺지 않습니다. 
관상용으로 주로 심습니다. 
   
(2018. 6월 평창 대화면 안미천(安味川) 변에서)



*종소명 [epithet, 種小名] : 학명의 구성요소로 속명(屬名, generic name) 뒤에 따라오는 형용의 이름.
         식물 학명은 속명과 종소명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이명법) 국제명명규약에 따라 지어짐.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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