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허찬국]


'저출산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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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2018.06.27

우리나라가 직면한 심각한 인구문제는 도시보다 TV 다큐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있는 농촌지역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가뭄에 콩 나듯 귀하고, 60대의 동네 ‘젊은이’가 마을의 이장입니다.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는 폐교된 지 오래고, 인구 관련 정책을 논할 때면 감초처럼 등장하는 보육시설은 딴 나라 얘기입니다.

밑에 보여주는 그림은 통계청이 2016년에 발표한 향후 50년 간 우리나라 인구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전망한 자료입니다. 왼쪽 그림은 연령별 인구구조를 선으로, 오른쪽 그림은 같은 인구구성비를 막대그래프로 보여 줍니다. 유소년은 14세 이하, 고령인구는 65세 이상, 그리고 생산가능인구는 그 사이 연령층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미래의 인구 추세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출산율, 사망률 등에 대한 가정이 있어야 되지만 통계청 전문가들이 그간의 추세를 반영해서 적절히 판단한 것이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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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 20년쯤 후에는 많은 도시 지역도 현재 KBS 인간극장에 자주 등장하는 농촌지역과 비슷해진다는 겁니다. 아마 70대 초의 ‘젊은이’가 아파트의 동 대표를 맡게 될 테니 동 대표 회의가 열리면 노인회 월례회와 구분이 어렵게 될 겁니다. 젊은 사람들의 철없는 떼거리 행동 때문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고 툴툴거리는 분들은 한 이십년 더 기다려 보십시오. 그때는 철든 노년인구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니 젊은 사람들의 천방지축(天方地軸) 행태가 쉽지 않겠지요. 세태도 달라져 지하철 경로석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어서 그 자리가 ‘유소년 보호석’이 되고, 임산부 보호석에는 고급스런 전동안락의자가 자리하고 있겠지요. 

워낙 현재와 다른 모습이어서 관련 통계 자료를 많이 보고 있는 필자에게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요즘 식 표현으로 ‘이게 실화냐’ 묻게 되는, 이웃 나라 얘기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화가 됩니다. 정부가 대책을 만들고 모두 대오각성해서 캠페인을 세게 벌이면 해결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이미 2005년에 관련법을 만들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 차례나 진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출산율, 노인 빈곤율과 같은 문제는 개선되는 조짐이 없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던가, 아니면 문제의 성격이 너무 복잡해 지금까지 우리의 노력이 턱없이 모자란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관련된 연구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고해보면 두 가지가 다 맞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1차 계획에서 2016~2020년에 ‘OECD 국가 평균 수준 출산율 회복’한다고 목표를 잡았습니다. 2016년 OECD의 합계 출산율이 1.7인데 우리나라는 1.2수준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출산율이 1.7이었던 것이 1994년입니다. 그 이후로 계속 떨어졌지요. 아마 십년이 지나도 이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체 인구 규모가  장기간에 걸쳐 유지되는 인구대체 출산율은 2.1입니다. 우리는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어서 출산율이 2.1을 하회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 수준은 지나치게 낮습니다.

아울러 출산율에 어떤 변수가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핀 연구들은 상당히 다양한 경제적,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 선진국에서처럼 여성들의 초혼(初婚) 연령이 늦어지고 있고 자연히 초산(初産) 연령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한 예로 영국을 봅니다. 지난 수십 년 간 20대의 결혼과 출산이 줄어들었음에도 출산율이 OECD 평균을 상회했는데 여기에는 30~40대 출산 증가가 크게 기여했습니다. 당연히 많은 산모들이 직장 재직 중 휴가·휴직하고 출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처지의 여성들에게는 출산 휴가제도는 물론 휴가 후 복귀했을 때 이전에 하던 일, 혹은 유사한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여부가 매우 중요합니다. 출산율이 양호한 선진국들은 이런 관행과 제도를 잘 정착시켜 운영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정부도 여러 부처가 참여하는 대책반을 만들어 다방면에 걸쳐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문제의 크기와 중요도에 비해서 성과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국내선 비행기에서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 승무원을 보았습니다. 젊은 승무원 일색인 국내 항공사 비행기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과거 자주 이용하였던 미국 항공사 기내에서는 젊은 승무원을 보는 게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런 단순한 주변 사회상이 출산에 중요한 사회 환경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출산율은 오랫동안 OECD 평균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항공기에서 더 많은 중년 여성 승무원을 접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과장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그것이 한국의 엉킨 저출산 실타래를 푸는 방도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게스트칼럼/선년규

가로막힌 눈과 귀

“우리 발목을 잡는 과오가 있고 그릇된 관행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렸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지난 6월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 모두발언입니다. 

누가 한 번 뱉은 말을 놓고 해석이 분분할 때가 많습니다. 세계적 관심사인 이번 회담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우선 김 위원장이 발언한 ‘과오’ ‘관행’이 북한 강경파의 노선을 지적하는 반성의 의미를 담았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북한 내부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을 지칭함으로써 북·미 사이의 높다란 오해의 담장을 에둘러 표현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여튼 트럼프 대통령은 이 말을 통역으로 전해 듣고 엄지를 ‘척’ 치켜세웠습니다. 이어 손을 내밀어 김 위원장과 악수하면서 격한 공감을 표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취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대화 당사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이해했길래 정상회담에 걸맞지 않은 제스처까지 취했을까요? 우리끼리 논의해봐야 국민 모두가 정치‘썰’에 일가견이 있는 현실에서 결론은 결코 나지 않을 겁니다. 당시 두 사람이 만난 것에 더 큰 의미가 있기에 이 부분은 이 정도로 접어두고자 합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김 위원장을 다시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폐쇄 국가에서 세계의 이목을 받으며 단번에 국제무대에 데뷔한 셈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34세에 배짱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저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예전 수준보다 한 단계 높였는데, 순전히 ‘관행이 눈과 귀를 가렸다’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우선 불통·고집·고립·편견·소외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동굴·어둠이라는 고전적·문학적 표현을 연상하는 이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속성’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비단 김 위원장만 눈과 귀가 막히고 가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회담의 또 다른 주인공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젊은 김 위원장의 외교적 발언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들뿐일까요? 얼마 전 치른 6·13 지방선거에서도 그런 인물이 있습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어떤 식으로 평가했던가요? 본인 생각과 다른 것은 무조건 잘못되고 조작됐다며 스스로 성벽을 쌓는 극단적인 성향까지 보였습니다. 감탄고토(甘呑苦吐)로 동조하는 당직자들의 집단심리도 홍 전 대표 이목(耳目)의 올바른 작동을 방해하는 데 한몫 보탰을 거구요. 홍 전 대표의 집회 현장마다 나타나 태극기와 미국 국기를 마구 흔들어댄 극성 팬(?)들은 외부 민심 파악을 가로막는 차단막 역할을 했을 터입니다. 

‘갑질’의 대명사가 된 한진그룹 일가도 눈과 귀를 가린 대표 주자입니다. 조현아·현민 자매는 어려서부터 ‘돈’의 보호막 아래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을 아예 배우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사회는 남과 함께 사는 곳이라는 인식을 배양할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어머니 행태를 보면 조양호·이명희 부부에게 고용된 어느 누구도 감히 이들 자매에게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지적을 했을 리 없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조현아·현민 자매에겐 그렇게 그들만의 신분·계급의식이 굳어져 ‘관행’이 됐을 테고, 주변의 입은 철옹성처럼 굳게 닫혔을 겁니다. 

그렇다고 저라고 해서 그리 깔끔하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겠지요. 저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불편한 것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귀를 즐겁게 하는 것만 들었고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죠. 이미 너저분해진 의식이 제 몸을 지배하는 한, 순수를 갈망한다고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육체와 인식·마음은 그래서 비가역적이라고 합니다.

인지상정이라구요? 원래 인간이 그런 속성이라지만, 엄이도령(掩耳盜鈴)이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이 안 보고 안 듣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면 눈과 귀가 가려져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북·미든, 인간관계든 올바른 관계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필자소개

선년규

한국일보 기자로 사회생활 시작. 2000년 인터넷 매체 창간에 합류해 기자 생활을 더 한 뒤
미국으로 가 보스턴에서 8년을 지냄. 2013년 귀국 후 석간경제지 이투데이를 거쳐 지금은
온라인 뉴스사이트 아이뉴스24에서 정책·산업부문 에디터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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