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고토(甘呑苦吐) 이재명 [박상도]


감탄고토(甘呑苦吐) 이재명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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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고토(甘呑苦吐) 이재명

2018.06.25

가족간의 불화, 여배우와의 염문 - 전자는 녹음파일이 유출되어 사실이 확인되었고 후자는 아직 사실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경우, 이 정도의 추문(醜聞)이면 낙선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경기도민의 선택은 이재명 전 성남 시장이었습니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 도저히 찍어줄 수 없는 제1야당의 반성 없는 태도, 흠결(欠缺)보다 장점을 취한 유권자의 판단 등등 이재명 도지사의 당선 요인은 꽤 많습니다. 국민은 선거로 말한다는 것에 비춰볼 때, 논란과 선택을 분리해서 투표를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따라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여배우와의 염문은 논외로 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또한 그 염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가정하에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이 많이 당하고 삽니다. 힘있는 정치인이나 재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는 최근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국회의원 한 대 때렸다고 바로 구속을 하면서 상습적으로 폭행, 폭언을 한 재벌 사모님은 ‘사실관계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불구속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 적용 기준입니다. 최후의 보루인 법마저도 적용 상대의 의자의 높이와 주머니의 크기에 따라 판결이 달라집니다.

이재명 당선인이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가정을 하면, 이런 추문은 너무나 억울한 일일 겁니다. 게다가 선거 막판에 불거진 추문이라 선거 결과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깨서 소문을 낸 사람들을 응징하고 싶었을 겁니다. 소문이 파급력이 컸던 것은 정치인과 여배우라는 두 공인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세입니다.

이재명 당선인은 성남 시장 때부터 언론의 관심을 받았었고 대선 주자로서도 관심을 끈 인물입니다. 특히,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부부가 함께 출연해 알콩달콩 부부애를 과시했습니다. 정치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단발성 출연을 한 경우는 있으나 몇 달 동안 계속 출연한 경우는 드뭅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출연자를 내립니다. 흔히 정글이라고 표현되는 약육강식의 예능 판에서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견인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능력을 보여준 다재다능한 정치인이 바로 이재명 당선인입니다. 그는 그만큼 방송을 잘 알고 대중의 심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방송은 대중을 이기지 못합니다. 과거 80년대 공중파 방송만 존재하던 시기에는 방송의 교육적 효과가 강조되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방송은 계몽적이었고 방송 종사자들은 약간의 존경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의 뉴스는 정권에 아부는 많이 했지만 품격 없는 소재를 뉴스로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까지도 뉴스로 포장되어 매체에 등장하는 세상입니다. 공중파 방송의 뉴스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매우 연성화되었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아젠다(Agenda)를 세팅하는 역할보다는 이슈를 따라잡아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이번 스캔들도 그런 경우입니다. 선거 유세 막판에 의혹이 다시 불거졌고 그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상대 후보였습니다. 게다가 의혹과 관련한 다양한 사람들의 주장이 등장하면서 뉴스가 확대 재생산되었습니다. 다루기 싫어도 다뤄야 하는 뉴스 아이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이재명 당선인에게 이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좋지 않은 소문이지만 그는 공인이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질문을 당선인의 부인에게 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겠지만 이재명 당선인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는 의혹의 당사자이며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보도 윤리 규정(RTNDA Code of Ethics)이나 우리나라의 취재 윤리 규정에 따르면 ‘취재와 보도에 있어서 약자에 대한 각별한 보호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재명 도지사 당선인을 약자로 간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그는 언론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입니다.

당선인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서 선거 막판에 불거진 논란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축하 분위기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지만 듣기 좋은 콧노래만 부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어봐야 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당선인은 경기도의 미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고 하며 불편한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내용은 앵커가 정하는 것이지 인터뷰이(interviewee)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받고 싶은 질문만 받겠다는 것은 독재자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당선인은 언론에 대해 “예의가 없어.”라고 얘기했지만 정작 누가 예의가 없었는지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또한, “약속을 어겨서 안 돼. 인터뷰 받지마.”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보이긴 하나, 기본적으로 정치인이 질문의 내용을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속 시원하게 논란에 대해 입장을 애기해 주시죠?” 라고 물어봤으면 좋겠다는 것이 사람들의 속마음이었을 겁니다. 방송 인터뷰는 앵커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앵커는 시청자와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앵커는 시청자가 궁금한 것을 물어볼 의무와 권한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의 힘이 유권자에게서 나오듯 언론 역시 시청자로부터 위임된 권한으로 정치인에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투표를 앞두고 침묵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확산되지 않게 하는 당선인의 선택이었고 또 유권자들은 그러한 점을 이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투표는 끝났고 궁금증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분위기가 좋을 때를 노려 궁금한 것은 물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질문하지 않는 언론은 죽은 언론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기자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고 들어가서 “무슨 기자회견이 질문도 받지 않는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불통으로 일관했던 지도자의 끝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후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당선인은 지난 14일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지나쳤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앞서 (언론에) 호되게 당한 데다가, 사실 언론사와 미래 지향적 이야기를 하기로 사전에 약속했다. 예외 없이 다 과거 얘기를 해서 그렇게 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내 부족함이다. 죄송하다. 이건 (내가) 수양해야지요"라면서인터뷰 태도 논란과 관련해 사과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앵커의 질문이 잘 들리는데 안 들린다고 말한 것을 잘못했다는 건지, 자신의 대 언론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잘못했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사실 ‘안 들린다’고 얘기한 것에 대해선 유출된 동영상의 문맥상 거짓말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진중하지 못한 사람으로 비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미 대가를 치렀다고 봅니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그의 언론관입니다.

사실을 밝히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은 때가 되면 스스로 명백해질 겁니다. 다만, 언론에 대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 당선인만큼 방송의 도움을 받은 후보는 많지 않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매우 친숙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이미지가 이번 스캔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방송에 출연한 사람이 자신의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하자 돌연 태도를 바꾼 겁니다. 그리고는 논란이 일자 상대 방송사가 아닌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일방적으로 ‘내가 지나쳤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사과는 당사자에게 직접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당사자는 해당 방송사입니다.

가끔은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선출직 공무원들이 언론을 단지 홍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들은 기자 출신을 대변인으로 고용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합니다. 하지만 언론이 항상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습니다.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유착관계일 겁니다. 사안에 따라 진실을 물어볼 수도, 불편한 질문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예의 없다.”고 얘기하며 외면한다면 주변에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질 것입니다. 

이번 선거로 여권은 엄청난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리멸렬한 야권은 권력을 견제할 능력이 당분간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국민의 뜻이라고 판단됩니다. 언론 역시 시대의 요구를 알고 있습니다. 다만, 견제와 균형이라는 기본적 소임을 하는 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할 일을 한 것을 한낱 조롱거리로 만든 당선인의 태도가 걱정스러운 것은 듣고 싶은 것만 듣겠다는 독선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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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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