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의 청소년들 [한만수]


“응답하라 1988”의 청소년들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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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청소년들

2018.06.21

요즈음은 도시의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조용합니다. 리어카나 소형트럭에 생선이며 야채를 싣고 다니며 “팔딱팔딱 뛰는 갈치가 한 상자에 만 원!”이라고 손님을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지난 골목은 산사의 절간 같은 고요에 싸여 있습니다. 동네 곳곳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을 보는 것 쉽지가 않습니다. 저 혼자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그네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미끄럼틀에 새들이 가끔 쉬어 갈 뿐입니다.

도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방의 읍소재지에서도 골목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농촌에는 아이들 대신 노동능력을 상실한 노인들이 집 앞에 앉아 계시거나, 개들만 느릿하게 돌아다닙니다.

몇 년 전부터 모 종편방송에서 “응답하라”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방영이 된 “응답하라 1974”의 시청률이 좋아서 시즌별로 이어져 온 드라마입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절의 서민들이 살아가는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드라마입니다. “응답하라 1988”를 우연히 봤는데 배경은 1988년도를 닮아 있지만 사람들의 의식구조며 갈등 구조 등이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응답하라 시리즈가 “1997” 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시청률이 높다는 증거 일 겁니다.

“응답하라 1988” 같은 경우 종편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했는가하면 시청 층도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 층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1988년은 올림픽이 열렸던 특수성도 있지만 “응답하라” 시리즈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50~60대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고, 젊은 층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자유분방한 생활상에 호감을 느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만 해도 골목에서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 놀았습니다. 여름날 일찍 퇴근을 하다 골목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아빠를 보면 큰 소리로 “아빠!”하고 부르며 뛰어와서 안깁니다. 그런 날은 그냥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구멍가게로 갑니다. 과자 한 개씩 안겨주면 아이들은 더없이 즐거워하며 또래들에게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간이면 골목골목마다 책가방을 어깨에 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굣길에는 또래들끼리 장난을 치며 걷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농촌 초등학생들도 학교버스가 있어서 먼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습니다. 초등학생들은 스쿨버스로 다니고, 중고등학생들도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버스로 통학을 합니다. 예전에는 초등학생들도 10리길을 예사로 걸어 다녔고, 중고등학생들은 더 먼 길도 새벽이슬을 밟으며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거리가 먼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대부분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들끼리 등하교를 같이 합니다. 여름날은 일찍 수업이 끝난 저학년들은 선배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느티나무 밑의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농구를 하거나 탁구를 치며 기다리기도 하고 교실에 남아 숙제를 하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립니다.

여름날 땡볕으로 달구어진 신작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다 냇가에 도착하면 옷을 훌렁훌렁 벗이  젖히고 목욕을 합니다. 산길을 걸어가다 깨금(개암)을 따서 까먹기도 하고, 잔디를 캐 먹기도 하고, 산딸기를 따 먹으면서 걷다 보면 동네가 보이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책가방을 방에 던져 버리고 쇠꼴을 벨 생각으로 지게를 지고 밖으로 나갑니다. 고추를 따거나 콩밭을 매고 있을 부모님을 도우러 밭으로 가기도 합니다. 노을을 등에 지고 집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낮에 약속을 안 했는데도 둥구나무 밑이며, 어느 집 뒷방이나 냇가 둑에 다시 모입니다. 특별하게 할 이야기가 없는데도 작년 이맘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도 처음 하는 말처럼 귀를 기울이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와르르 웃어 젖히기도 합니다. 그마저 대화가 궁해지면 어느 누구 하나 선창에 합창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짝사랑하고 있는 이성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하나 친구의 고민을 흘려듣지 않고 자기 일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해결 방안을 생각하다보면 어느 사이에 밤이슬이 축축하게 어깨를 적십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에 안심할 수가 없어서 학원 수업이 필수사항이 되어 버린 요즈음 풍경에 비추어 보면 그 시절에는 공부하고 거리가 멀었습니다. 요즈음은 자식보다 부모가 학교에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시험성적 체크는 물론이고,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기 위한 학원 수강도 부모가 앞장을 서서 자식을 이끕니다.

그 시절 부모의 역할은 학비를 대주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채근하지 않습니다.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서면 학교에 가는 줄 알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별 탈 없이 공부 잘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을 했습니다. 건강해서 결석 안하고 열심히 학교에 다녀서 졸업만 하면 제 앞가림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식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도시에 인척 한 명 없어도 저 혼자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직업을 가졌습니다. 은행원이 되거나 재벌회사에 취직을 하지 못해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중소기업 회사원이며 공장의 직공, 상회의 배달원 자리도 도시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자리라면 마다하지 않고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작은 회사라서 월급날이 되기도 전에 통장이 비는 수가 허다해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명절이며 집안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가족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거울신경(mirror neuron)은 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이에게 밥을 떠먹일 때 엄마가 입을 벌리면 아이가 따라 벌립니다. 아이들의 '흉내 내기'는 뇌의 신경세포 중에 있는 거울신경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시절의 자식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는 믿음을 통해서 스스로 학습 받아서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10대나 20대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이돌가수나 인기 있는 탤런트들 때문은 아닐 겁니다. 같은 하늘에서 살고 있는 10대,20대이면서도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응답하라”의 인물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부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홍노도라지 (초롱꽃과) Peracarpa carnosa (Wall.) Hooker f.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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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작고도 앙증맞은 꽃, 홍노도라지입니다. 
꽃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도라지를 닮았고
제주도 서귀포시 ‘홍노리’에서 처음 발견된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홍노리’는 현재 서귀포시 동홍동~서홍동 일대의 낮은 지역입니다.
지금은 한라산 어리목 등산로 일대에만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얗게 밝은 꽃이지만 그늘에 숨어 자라
지나가도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만이 작심하고 찾아야만 
겨우 그 모습을 보여주는 꽃입니다.

작기로서니 이리도 작을꼬? 
앙증맞게시리 작은 꽃! 
하도 작고 그늘에 숨어 꽃을 피운 식물이라서 
만난 지 수차례 되고 매번 사진을 찍었지만
제대로 된 꽃모습의 사진 한 장 갖지 못한 꽃입니다.

수없이 호흡을 가다듬고 찰싹 엎드려도 
꽃이 하도 작아서 웬만한 인내심 아니면
제대로 된 모습을 잡을 수 없는 탓입니다.
마치 그리워하며 보고파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앞에
진가(眞價)를 알아보고, 낮은 자세로 끈질기게 기다려야만
비로소 마음을 열어주는 여인과 같은 꽃입니다.

홍노도라지는 도라지와 같은 초롱꽃과 식물로서
꽃 이름은 도라지인데 꽃의 크기나 모양은 
도라지와 전혀 다른 느낌이 드는 꽃입니다.
잎은 어긋나며 원형 또는 난형으로 끝이 둔하거나 거의 둥글고 
표면에 짧은 털이 흩어져 나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습니다.
뿌리 또한 도라지나 인삼처럼 곧고 굵은 것이 아니라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고 그 끝에서 줄기가 나와 자랍니다.
꽃은 5~8월에 백색 또는 엷은 보랏빛이며 
줄기 끝에 1개씩 달려 위를 향하여 핍니다.

산지의 숲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제주, 일본, 사할린, 캄차카에 분포합니다.


(2018. 5. 19 한라산 어리목에서)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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