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와 균형의 궤멸 [김영환]


견제와 균형의 궤멸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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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와 균형의 궤멸

2018.06.20

6·13 선거는 우익 정당의 궤멸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 의식의 궤멸이라고 필자는 봅니다.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고 외친 것은 좌익이었는데 이젠 우익이 그 말을 써야 할 판입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평화 마케팅에 가세한 데다 문재인 정권의 독주가 심해도 친 정권적인 언론 환경으로 야당의 참패는 예고된 선거였습니다. 

‘평화’는 드루킹 민주당원 기사 댓글 여론 조작 사건도 파묻었습니다. 일본선 NHK 등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결백을 주장함에도 아베 일본 총리의 가계학원 수의학부 신설 연루 의혹을 보도한 것과 딴판이죠. 의외의 당선은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지사였습니다. 독설가인 홍준표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그가 가야 할 곳은 도지사실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했는데 유권자들은 혹시 모를 재선거를 각오하고 찍은 걸까요? 허익범 특검은 김경수도 필요하면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슈는 사라지고 여론조사의 후보 순위를 주입하는 경마식 보도에 선거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제1야당이 최악의 조건에서 27.5퍼센트(광역단체장)라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인한 데서 균형의 기회는 오리라고 봅니다. 40퍼센트 투표 불참자, 냉담자도 있으니까요. 탄핵과 무관한 젊은 리더십으로 선명한 대의명분과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더 높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국민들에게서 북핵 폐기에 대해 회의적 의견이 더 높은 것과 달리 우리는 장밋빛의 입도선매(立稻先賣) 식 ‘평화’에 취해 있는 사이 엄청난 청구서가 날아옵니다. 북핵 폐기 비용만 200억 달러(약 22조 원) 든다고 합니다. 통일을 염두에 두면 향후 10년 간 2조 달러(블룸버그 보도, 약 2,200조 원)에 이를 금액이 대북 지원으로 필요하다고 추산합니다. 우리나라 2017년 국내총생산(GDP)이 1조 5,000억 달러입니다. 고도성장은커녕 세계 평균에 못 미치는 허약한 경제가 만약 통일이 아니라 북한 체제를 보장하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비용을 쓴다면 역설이죠. 

북핵을 머리에 인 우리에게 심각한 것은 싱가포르 회담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CVID)'를 선언하지 못 한 점입니다. 결과가 이거냐는 비판은 미국 언론과 여야 정치인, 핵과 한반도 전문가들에게서 쉽게 봅니다. 9월 무렵 김정은의 방미 초청에서 큰 것을 터트릴 거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트럼프가 역사를 바꿀 호재는 절묘한 타이밍에 쓴다는 것이죠.

회담 전부터 핵 폐기의 어려움을 말하는 핵과 한반도 전문가는 부지기수였습니다. 미국의소리(VOA)가 설문 조사한 20명의 미 상원 의원 중 2명만이 북한의 핵 폐기를 예상했습니다. 트럼프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고 이를 성공이라고 선전한다면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수미 테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국담당관 같은 이의 분석이 그랬습니다.

요즘 북핵 문제로 VOA를 늘 접합니다. VOA는 정부가 지원하는 국제 공영방송이지만 여야 정치가를 비롯해 트럼프에 비판적인 핵과 한반도 전문가들까지 나와 세련되고 논리적인 분석으로 북핵 회담을 전망하고 핵 폐기의 어려움을 진단했습니다. 그것이 불편부당한 선진국 공영 엘리트 언론의 모습입니다. 이 나라에선 KBS 공영노조가 “KBS는 정권과 여당 편을 드는 보도를 당장 멈춰라”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이 끝나자 트럼프가 방향을 틀어 방어형인 한미 군사훈련을 ‘전쟁 연습’이니 중단하자고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과 중국이 하던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권 하에서 한미동맹은 흔들릴 것이라는 신호입니다. 다행인 것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미 여야 의원들이 북한의 핵, 미사일 프로그램 폐기와 검증을 목표로 북핵 기준법을 만들어 행정부가 정기적으로 북핵 협상 결과를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국방수권법에서는 의회 승인 없이 주한미군을 2만 2,0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게 하려는 점입니다. 한미 군사훈련과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을 동시에 하지 말자는 소위 중국의 ‘쌍 중단’은 문정인 같은 좌익들이 호응했죠. 전직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면 주한미군은 필요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북한이 그토록 원해 온 주한미군 철수가 언제, 어떻게 현실화할지 모릅니다. 이 판국에 문재인 정권은 전시작전권을 갖고 와서 국가를 어떻게 지킬까요? 병역 기간 단축과 감군은 아니죠. 조공하던 습관대로 중국의 속방이 되어? 자식들은 미국에 유학시키며 반미하는 좌익까지 무임승차해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의 젖과 꿀은 미국이라는 동맹국 우산으로 가능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껏 미국이 준 거의 ‘공짜 안보’에 너무 길들여져 왔고 트럼프는 북핵 협상을 계기로 지정학적 요소를 요란하게 흔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역사적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여준 짧은 동영상처럼 북한이 미래를 바꾸어 준다면 한반도의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힘의 공백에 대비해 유대를 강화해야 할 일본은 최근 2018 외교청서에서 한국에 대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는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공유할 게 없다는 거죠. '양호한 한일 관계는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불가결하다.… 어려운 문제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진행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만 썼습니다. 우리의 고립입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지난 15일 한국 증시가 폭락했습니다. 경제외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투자 위험도의 증가를 우려해 외국인이 매도를 늘린 원인도 있었다고 분석되고 있습니다. 안보가 불안할 때 외환이 불안하고 경제가 불안해집니다. 가뜩이나 청년실업률은 10퍼센트를 돌파하여 최악 상황입니다. 정권의 심부는 과거사에 매몰돼 국가의 동력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듯합니다. 분배는 쉽죠. 경제를 성장시킬 인물은 안 보입니다. 정책은 옳은데 시장이 잘못되었다고 100번 외친들 정부는 시장을 이기지 못합니다. 

입에 단 평화가 좋다고 투표에서 ‘몰빵’했지만 정작 북한이 질긴 협상으로 핵무기 몇 개는 반출하여 비핵화 시늉을 하면서 3,000 곳이나 된다는 시설에 상당량을 감추어 검증을 어렵게 하고 핵무기를 시인도 부인도 않는 ‘NCND’로 나간다면 우리는 돈은 돈대로 대면서 안보 중압에 시달릴 것입니다.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고 여당의 상징인 추미애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즐거워할 때가 아닙니다. 일부 유권자들은 당선자 수로 본 이번의 '궤멸적' 승리에 당혹해할지도 모릅니다. 너무 나갔나, 하고요. 안보와 경제의 지축이 흔들립니다. 국정을 견제할 힘을 어디서 얻을지 걱정입니다. 국민 화합 차원에서, 선거도 압승했으니 이만 병고에 시달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풀어 불구속 재판하는 것은 어떨까요? 적장 김정은도 껴안은 것처럼….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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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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