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본능과 오케이어(OK’er) [임철순]


교정본능과 오케이어(OK’er)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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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본능과 오케이어(OK’er)

2018.05.31

지난주 전남 담양으로 1박2일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둘째 날 죽록원을 거닐면서 대나무의 멋과 푸르름을 만끽했는데, 함께 간 분들의 설명으로 대나무에 관해 꽤 많은 걸 알게 됐습니다. 고산 윤선도의 시구처럼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지’ 몰라도 사시(四時)에 늘 푸르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나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군데군데 대나무에 비끄러매둔 안내판의 문구가 눈에 거슬렸습니다. 사람이 넘어지는 그림과 함께 ‘미끄럼 주의 Slow’라고 써 놓았던데, Slow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뜻이라면 ‘Slippery’를 잘못 쓴 거겠지요? ‘Slippery When Wet’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아니면 미끄러질지 모르니 천천히 가라는 뜻인가? 아니면 미끄러지더라도 천천히 넘어지라는 뜻인가? 그러면 Slow가 아니라 Slowly 뭐라고 써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만날 틀린 것, 이상한 것만 재빨리 발견하고 시비 거는 내가 다시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오나가나 잘못된 것, 이상한 것과 부정확한 엉터리 말과 글이 눈에 띕니다. 이틀 전에 문재인 대통령도 알기 쉽고 바른 공공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데, 틀린 말과 표현을 바로잡는 차원을 넘어 좀 더 간명하고 어색하지 않게 고쳐 쓰고 싶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각종 안내문구나 게시판, 펼침막, 현수막 따위는 말할 것도 없지만 출판물의 틀린 것은 정말 참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그동안 오자 오류가 많은 책의 저자나 역자에게 메일을 보내 지적질한 경우가 많습니다.  6년 전에는 어떤 번역 에세이집에 틀린 게 하도 많아서 메일로 알린 일이 있습니다. 깜짝 놀란 출판사와 역자는 재고 500부를 전량 폐기하고 책을 다시 찍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아무 소식이 없어 빈말인가 하다가 지난해 우연히 서점에서 그 책의 중판(重版)이 나온 걸 보고 반가워서 샀습니다. 살펴보니 새로 틀린 것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옮긴이의 말’을 충실하게 고쳐 쓰고 본문도 많이 수정했더군요(중판을 찍도록 해준 사람에게 출간 사실을 알리며 책 한 권 보내줄 법도 하건만. 쩝!) 

최근에도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저서를 선물하면서 잘못된 게 거의 없을 거라고 말하기에 유심히 더 열심히 읽은 끝에 잘못된 것, 글자가 빠진 것, 어법이 이상한 걸 메일로 알려준 바 있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상했는지 메일을 읽고도 아무 응답이 없어 ‘괜한 짓을 했나 보다’ 하고 후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밥이 생겨 술이 생겨? 나는 대체 뭐하러 이렇게 열을 내서 기 쓰고 남의 잘못이나 오류를 헤집고 파헤쳐 성가시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뉴욕은 교열 중>이라는 책을 읽게 됐습니다. 1925년 창간된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서 40년 가까이 일한 ‘교열장이’ 메리 노리스(66)의 에세이입니다. 책에는 ‘<뉴요커> 교열자 콤마퀸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주간지의 책임 교열자이자 작가인 노리스는 연필 중독자이며 구두점 등 문장부호에 예민해 ‘마녀’, ‘콤마 퀸’으로 불리는 여성입니다. 긴 세월 동안 그녀는 “무슨 글이든 눈에 보이는 족족 교열했다”고 합니다. 누가 쓴 무슨 글이든 읽다 보면 ‘교열의 신’이 들락날락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하이픈, 아포스트로피, 대시, 세미콜론 등에 얽힌 필자들의 이상한 문장과 습관, 그들의 문장을 다듬고 검토한 경험과 에피소드가 다양합니다. 이런 걸 이야기하느라 영문을 제시하고 시시콜콜 문법설명까지 하고 있으니 읽기에 골치 아프고 재미없기도 하지만, 그렇게 깐깐한 교열을 고쳐 책을 냄으로써 <뉴요커>가 세계 최고의 잡지가 된 건 분명합니다.  

그녀는 20여 년 전부터 오케이어(OK’er)’로 불리고 있습니다. 오케이어란 잡지가 인쇄되기 전까지 편집자, 작가, 팩트체커, 보조 교정자와 함께 글을 교정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뉴요커에만 있는 직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자보다 더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번역자 김영준입니다. 그는 책을 읽다가 맞춤법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 정정 표시를 하는 버릇이 있다고 ‘옮긴이의 말’에 써놓았습니다. 이 고질적 습관 때문에 독서의 진도가 느려지고 정작 글의 내용에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독서란 책과 사전과 필기구가 있어야 완성되는 행위라고 합니다. 독서를 좀 편하게 하려 해도 잘 안 된다는 사람이니 이런 책을 번역한 것이겠지요. 

그의 고백에 실실 웃으면서 ‘나랑 똑같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심지어 ‘옮긴이의 말’까지) 읽는 독자도 별종이 아닐까 싶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나는 스스로 ‘교정본능’이라는 말을 애용하고 있지만 그 말을 읽고 그도 별종, 나도 별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읽고 싶은 곳 위주로 펼치면서 ‘깐깐이가 쓰고 깐깐이가 번역한 책이니 틀린 게 하나도 없겠지?’, 아니 ‘뭔가 그래도 틀린 게 있겠지?’ 이렇게 눈을 부릅뜨고 읽었습니다. 과연 큰 잘못은 아니지만 지적질할 만한 곳은 좀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 출판계에도 이렇게 치열한 교열장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자동번역기나 컴퓨터의 맞춤법 점검기능에 의지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교열기능은 점차 약해지거나 실종돼가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갈수록 더 무식해지는 느낌입니다. 특히 저임에 의지하다 보니 좋은 교열자는 양성되지도 않고 생존하기도 어렵습니다. 나는 ‘출판물에 교열 실명제를’ 실시하자는 글도 쓴 바 있는데, 이 책에도 편집 디자인 마케팅 이런 것의 책임자는 죽 나열돼 있지만 교열 책임자는 나와 있지 않더군요. 

‘콤마 퀸’은 권두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자동 교정 기능은 없으면 좋겠다. 이것은 나를 서투른 바보로 취급한다. 왜 기계가 나를 대신해서 말하게 놔둬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직업적인 교열꾼이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면 그런 것의 도움을 받는 교열기능의 강화를 주장하고 싶습니다. ‘교정본능’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나 불쾌감을 주지 않고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교열력(이런 말이 있을 수 있다면)도 국력이고 지력, 문화력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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