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제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박상도]

카테고리 없음|2018. 5. 30. 12:00


도대체 제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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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제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2018.05.30

큰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마침 시험 기간이라 일찍 집에 온 아이와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누구 집이죠? 지금 아들이 다쳐서 전화합니다.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 …." 상대는 큰아이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아내는 당황하지 않고 “아들아, 네가 다쳤다고 전화가 왔네?”하며 “내 아들 지금 내 옆에 있는데 무슨 얼토당토아니한 얘기를 합니까?"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아까는 아이들도있고 정신도 없고 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떨려요.만약에 큰애가 집에 없었다면 정말 하라는 대로 다 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 애 이름과 전화번호를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라며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아니, 아까 낮에는 그렇게 대범하게 전화를 받더니 왜 그러셔? 게다가 보이스피싱범들을 꾸짖기까지 한 분이 왜 이리 약해지셨나?”라며 필자가 반문하자, “그건 그거고 다시 생각하니까 영 찝찝하잖아요. 누군가 우리 애와 내 전화 번호까지 다 알고 있다는 얘기인데…” 말을 듣고 보니 필자 역시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전화번호를 바꿀까 생각하다가 며칠 동안 별 일이 더 생기지 않아서 이 해프닝은 이렇게 이야깃거리만 남기고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전화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걸려 옵니다. 금감원에서 근무하는 필자의 친구는 “내게 보이스피싱 전화가 욌는데 자기들이 금감원 직원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금감원 직원이데, 전화한 사람은 누굽니까?” 했지 뭐냐.”라고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필자의 경우는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고 회복실에 누워 있을 때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왔었습니다. 비몽사몽간이라 물어보는 대로 알려주다가 너무 졸려 다시 잠이 드는 바람에 피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을 때마다 너무도 궁금한 것은 ‘사기꾼들이 어떻게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요즘에는 개인정보보호법이 매우 엄격해서 상대방의 동의없이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전에 주차장 뺑소니 사고를 겪었을 때 주차장 CCTV를 확인하는 일조차도 개인정보 보호조치 때문에 불가능했고, 가해 차량을 확인한 후 경찰이 나서서 연락을 하고 소환을 했지만 정작 피해자인 필자는 가해자의 신원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개인이 사사로운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연락처와 이름을 알아낸다는 것이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해진 세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이 정보들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선거 때가 되니 모르는 곳에서 문자가 오기 시작합니다. 일면식이 없는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후보들로부터 문자가 오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이 내가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에 산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런 선거 관련 문자를 받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서 새삼 놀랍지는 않으나 이 사람들이 필자의 전화번호를 어디서 알아냈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문자가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네, 아무개 선거 사무실입니다.”
“안녕하세요, 방금 문자를 받고 전화 드립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려고요. 제 전화 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요?”
이렇게 묻자,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다른 사람으로 통화가 연결되었습니다.
“아무개 선거 사무실입니다. 어떤 점이 궁금하신지요?”
“네, 방금 말씀 드린 대로 거기서 보낸 선거 관련 문자를 받았는데. 제 번호를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해서요.”
“아, 그거 그냥 여기저기서 얻었습니다.”
“무슨 대답이 그런가요? 여기저기서 얻다니요?”

개인정보보호법 제20호에 의하면, 정보 주체 이외로부터 수집한 개인정보의 수집 출처 등에 대해 정보 주체의 요구가 있으면 즉시 다음 각 호의 모든 사항을 정보 주체에게 알려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개인정보의 수집 출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따라서, 선거 사무실은 필자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거 사무실에서는 이러한 필자의 정당한 요구에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인겁니다. 재차 따져 묻자,
“저희가 전화 번호를 다양한 경로로 입수하는데요, 학교나 친목회 같은 곳에서 얻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정확히 제 정보를 어디서 얻으셨는지 알려주셔야죠. 그래야 본인의 동의 없이 제 전화번호를 넘겨준 곳을 알지 않겠습니까?”
필자가 집요하게 캐묻자 저쪽에서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이
“이런 전화를 처음 받아서 당황스럽네요. 지역 주민이시면 이 정도는 이해하셔야 되는 것 아닌가요?”하고 완장 찬 사람처럼 슬쩍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앞으로 이 번호로 문자를 안 보낼게요. 그럼 됐죠?”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문자를 받았고. 내가 선거 사무실에 내 전화 번호를 알려줘도 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누군가가 내 정보를 그쪽에 내 허락 없이 넘긴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고자 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문자를 보내시고 말고는 그 다음에 논의할 부분입니다.”라고 얘기를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정확한 입수 경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알려줄 수 없는 것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후보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일이 어느 특정 후보에게만 한정되어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칙상, 경찰도 영장 없이는 알아내지 못하는 개인 정보를 어떻게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저리도 쉽게 얻어낼수 있으며, 당사자의 동의 없이 사용하면서 저렇게 한없이 당당할 수 있을까요?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필자의 휴대폰 번호를 아는 곳은 아파트 관리 사무실, 구청,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가 전부입니다. 선거 사무소에서는 필자의 직업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유추하건대 어디선가 대량으로 정보를 입수하면서 필자의 전화번호도 같이 입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쨌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입니다. 지역 주민이 얼마나 쉬워 보였으면, 선거 운동 때부터 불법을 저지르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완장을 차면 어떻게 행동을 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액이 2,000억 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각 선거 사무실에서 가져다 쓰는 개인정보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마구 쓰이다가 제대로 파기되지 않고 어디론가 흘러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杞憂)일까요?

내친김에 중앙선관위에 문의를 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제재가 이뤄지는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공직선거법에 개인정보의 수집에 관한 제한 및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거법을 위반할 경우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에 해당하는 판결로 당선이 취소되지만 선거법이 아닌 경우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퍈결이 있어야 당선이 취소됩니다. 결국 지역 주민의 전화번호를 불법으로 채집한 것만으로는 당선이 취소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법이 느슨하니 국회의원 선거, 지자체 선거 할 것 없이 선거철만 되면 문자의 홍수가 펼쳐졌던 것입니다. 중앙선관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내용을 선거법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입법기관에서 받아주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하긴 누가 자기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겠습니까?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법을 어기는 꼴을 이제는 더 보고 싶지 않습니다. 128, 개인정보 침해신고센터 전화 번호입니다. 유권자가 똑똑해야 정치가 바뀝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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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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