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간방송(KBS)’이 해야 할 일 [신현덕]


‘국가 기간방송(KBS)’이 해야 할 일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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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기간방송(KBS)’이 해야 할 일

2018.05.29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이 취소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습니다. 변화와 진행이 ‘청룡열차’처럼 180도 뒤집고, 흔들고, 까불고, 떨어지다 올라가곤 했습니다.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영국 BBC 방송이 ‘21세기의 정치적인 도박’이라고 했듯, 도박이 가진 모든 요소를 다 갖춘 회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명 양측 다 요행수를 바라고 회담에 임했습니다만, 미국이 먼저 불가능함을 알고는 미리 위험한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화들짝 놀란 북한이 손사래를 치면서 그건 아니라고 부정하고 나왔습니다. 그간 흥행을 위해서 양측 모두 최상의 ‘포커페이스(도박꾼 얼굴)’를 유지했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을 이 판의 다른 선수(“포커 플레이어”)로 지목했습니다.

북한의 포커페이스는 지난주 풍계리 핵 실험장을 파괴하던 날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언론을 골라서 불러들였습니다. 위성전화 등으로 세계 어디서나 동시에 방송과 연결될 수 있는 시설을 가진 서방 언론사들의 생중계를 막았고, 모든 것을 자기들 멋대로 결정했습니다. 싫으면 오지 말라고 배짱을 부렸습니다. 그만두면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것이란 두려움은 얼굴에서 감췄습니다.

북핵을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우리 정부를 보며, 언론사들은 어정쩡하게 굴었습니다. 북한이 스스로 선정한 우리 취재진이 북한행 비행기를 못 탔는데도, 어느 언론사도 부당하다는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많은 언론 단체들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국내 여론이 “역시 못 믿겠다”는 것으로 바뀌자, 북한은 취재 인원을 선심 쓰듯 서방 기자단에 합류시켰습니다. 우리 정부도 가관입니다. 북한의 조치를 어물어물 받아들였고, 두 언론사 취재진을 (국영 언론사 소속인 것처럼) 국가 소유 수송기를 태워 북한으로 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기간방송인 KBS를 보노라면 당혹스럽습니다. 중심에 서야 할 KBS가 중심은커녕 들러리를 섰습니다. 북한이 지목한 언론사 명단에 KBS는 아예 없었습니다. 기간방송이 북한에 가지도 못했는데, 긴 시간 이 뉴스를 진행했습니다. 화면에는 ‘풍계리 공동취재단’이라고 자막을 내보냈습니다. 이에 KBS 노조, 기자협회 분회 등 모든 조직들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최근 KBS 뉴스화면 배경에는 북한의 인공기가 ‘약방의 감초’처럼 깔립니다. 북한 이선권(북한 표기 리선권)이 나와 대한민국을 비난할 때도 인공기를 삽입했습니다. 이선권이 발표하는 장소에 인공기가 걸려 있었다면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휘날리는 인공기 화면을 KBS가 편집해 넣었습니다. 북한의 김계관과 최선희가 독한 말을 할 때도 똑같았습니다.

의도적이 아니기를 바랍니다만, 최근에는 북한을 동맹국보다 더 앞세웁니다. 북한에 다녀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미국과 북한 간의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을 때도, KBS는 ‘북미 직접대화’라고 북을 앞세워 자막 등으로 내보냈습니다. 또 북한에 갔다 온 사람들은 김정은을 솔직하고 대담하다(?)고 전합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기간방송이 북한에서 (진실이든 아니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김정일뿐이라고 지적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북한 동포는 반드시 끌어안아야 할 우리 국민입니다. 북한 정권은 우리의 협상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적입니다. 포용할 대상에도 정도의 차이를 두어야 합니다.

2017년 9월 3일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바로 그날입니다. KBS가 북한 평양방송의 발표를 그대로 생중계했습니다. 나이든 북한 여자 아나운서가 나오더니 들뜬 목소리로, 신이 나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성공을 알렸습니다. 강성대국, 핵 강국이라고 선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양방송은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고 공갈·협박하는) 핵무기 개발을 찬양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KBS가 마치 평양방송 서울 중계소 같다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KBS는 ‘국가 재난 주간 방송사’로서 마땅히 중계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북한의 핵개발 완성은 우리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기입니다. 북한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주민을 더 독하게 통제하고, 인권을 유린한다고 국내 정보기관과 외신들이 전합니다. 북한 주민을 구하고 북한 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오로지 한 길은 북한의 의도와 실상을 정직하게 전달하여,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뿐입니다. KBS는 ‘국가 기간방송’으로서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미래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앞둔 때일수록 헌법과 규정과 원칙에 따라 편성하고, 냉정하게 보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국내에 사례가 없다면 통일에 성공한 독일의 ZDF방송의 원칙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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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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