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는 부력(浮力)이 있다 [김영환]


진실에는 부력(浮力)이 있다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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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는 부력(浮力)이 있다

2018.05.25

최근 최순실 씨의 옥중 회고록 서문(序文)을 읽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안종범 씨 등과 관련된 사건의 검찰 수사와 공판 기록에서 팩트(fact)만을 찾아 밀도 있게 검증해온 우종창 대기자가 ‘거짓과 진실-대통령을 묻어버린 거짓의 산’이라는 유튜브 방송 91편에서 자필 원고를 소개한 것입니다. 

최 씨의 태블릿PC 언급은 대강 이랬습니다. “JTBC 태블릿 보도 사건으로 이미 악성 루머와 마녀사냥은 언론, 방송, SNS에서 퍼지고 시작하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몰고 가는 속도는 따라잡을 수도, 변명할 여유도 주지 않았다.", “블루K 사무실에서 태블릿PC를 갖고 나왔다는 것은 이사 간 집에서 금고를 털었다는 것과 같다.…누가 만들어낸 말인가. 박 대통령을 죽이려는 것의 시작이자 전초전이었다.”

‘최순실 거’라는 태블릿PC 조작 의혹과 드루킹 댓글 조작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악용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유민주주의의 유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문제의 태블릿은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의 요구로 실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포렌식 검증 에서 JTBC가 입수 이후 무결성(無缺性)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1심 재판에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3일 최씨의 2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국과수 연구원은 "국과수는 태블릿PC 사용자가 최씨라고 단정한 적 없다. 사용자가 누구인지는 재판부가 포렌식 보고서를 보고 판단해달라"라고 증언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용의자가 될 수도 있으며, JTBC 홍정도 사장의 친구로 알려진 김한수 청와대 행정관이 최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들었다는 ‘네가 태블릿PC를 만들어주었다면서…“라는 말을 최씨 본인이 부인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부정하는 불확실한 전문(傳聞)임에도 김, 최 양인의 대질 신문도 없이 증거로 채택해 ’소문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을 증명했습니다. 

왜 이 태블릿이 ‘최씨가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고영태 씨의 사무실 서랍에 생뚱맞게 남아 있었다는 건지, JTBC는 그 존재를 어찌 알고 책상을 뒤졌는지, 왜 국정농단의 ‘스모킹 건’이라고 자찬한 이 ‘요물(妖物)’에 대해 검찰은 김한수가 개통한 이래의 모든 카카오톡 내용과 위치 추적을 공개하지 못 하는지, 대선 SNS 팀이 쓴 것이라는 양심선언은 못 들었는지 의문투성이입니다. 진실 규명을 기대했던 2심 재판부도 손석희, 김필준, 심수미, 김한수, 이진동 씨 등의 증인 신청을 기각해 변호인이 즉시항고를 했다고 합니다. 이게 과학 수사고 과학 재판일까요? “나누어 받은 권력도, 요구한 자리도 없는데 국정농단의 실체가 뭐냐”, 누가 만든 각본대로 움직인다고 항변하는 것이 최씨의 주장입니다. 박 대통령이 항소를 포기한 절망이 느껴집니다. 

그간 여러 단체들이 태블릿PC 조작 의혹을 방송통신심의위, 언론중재위 등에 제기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죠. ‘국정농단’의 과학적 규명을 꺼리는 ‘디지털 농단’인가요? 디지털 기기는 과학입니다. 법치 국가라면 끝까지 과학으로 진실을 파헤쳐야죠. 이것을 못하는 비과학적 풍토가 노벨 과학상을 하나도 못 받고 선진국 문턱에서 맴도는 이 나라의 자화상인가 봅니다. 

또 다른 사이버 범죄, 핸드폰 170대로 대선 전부터 9만여 건의 기사 댓글에 2억여 회의 부정 클릭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민주당원 드루킹 일당의 네이버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은 김경수, 백원우, 송인배 씨 등 청와대 문고리 권력 심부와 연루 의혹이 드러나면서 특별검사의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대통령의 영혼까지 읽는다’는 김경수 씨는 대통령이 취임식으로 향한 차에 동승한 최측근입니다. 드루킹과의 보안이 얼마나 중요했기에 IS 등 비밀 조직들이 쓴다는 ‘시그널’ 메신저를 이용했을까요.

이런 여론 조작의 토양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점적 인터넷 뉴스 유통업자로서 하루 2,500만 명이 읽는다는 네이버 탓이 큽니다. 그들은 언론재단이라도 되는 양 뉴스를 홈페이지 전면에 내걸고 유통하는 기사에 댓글과 공감, 비공감을 누르게 했습니다. 네이버의 댓글 참여자는 0.9퍼센트, 적극 참여자는 0.029퍼센트라고 합니다. 네이버는 드루킹의 댓글 자동 추천 프로그램인 ‘킹크랩’ 등이 가동되어 공감을 양산해 기사의 표출 순위를 바꾸는 여론 조작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봇(자동화 소프트웨어)’을 걸러내는 선진국 업계와 다른 점입니다. 

네이버는 자산 8조 원의 대기업으로 컸고 부사장 윤영찬 씨는 국민소통수석이 됨으로써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네이버는 검색 제휴를 논할 때 기사의 질을 심사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뉴스 먹이사슬의 포식자죠. 뉴스는 언론사에게 돌려주고 구글처럼 자율주행 차 등 정보통신 분야로 커야 합니다. 포털의 횡포를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많았지만 인터넷에서의 유리함을 본 좌파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다가 드루킹으로 폭발했습니다. 하마터면 덮였을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이 민주당의 수사 의뢰로 정권에 부메랑이 된 것은 역설적입니다. 

연초의 기자회견이 떠오릅니다. 한 기자가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에 격렬한 댓글이 많이 붙는다고 호소하자 대통령은 “정치인인 나도 누구보다 많은 비판을 받지만 국민의 소리려니 한다”라는 요지로 답변했습니다. 대통령은 드루킹, 경공모, 경인선 같은 충직한 우군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기자는 혈혈단신 자신의 이름으로 기사를 쓰고 공격도 자기 한 몸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댓글의 폐해를 인식한 선진국 언론사 중에는 댓글을 금지한 매체가 꽤 있습니다. 심지어 읽어보지도 않은 기사를 책임 의식이 희석되는 군중심리로 공격하고 비인간적으로 반박, 증오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천(like)’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가치 있게 생산된 기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비판은 순간적인 클릭이 아니라 기사를 쓰는 데 들인 공(功)만큼 진중해야 공론의 장이 형성됩니다.

좀 다르지만 인터넷 청원도 도를 넘었습니다. 어떤 재판의 특정 판사를 해임하라는 청원 발의가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아이디 등을 통해 20만 건의 동의를 넘어 청와대가 법원에 전달하자 판사들은 사법부 판결이 국민청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삼권분립에 어긋나죠. 조직이 맘만 먹으면 단결해 청원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습니다. 자유를 찾아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추방 청원 역시 정치적 목적으로 침묵하는 다수를 제압하려는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 파리대 교수가 최근 방한하여 동아일보 회견에서 한국을 “아직 덜 완성된 민주주의, 가짜 민주주의 체제”라고 진단했습니다. 가짜 뉴스나 댓글 여론 조작에 한국 사회가 휘둘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뉴스나 여론이 조작되는 건 두려운 일이며 수시로 확인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데 지금 한국에는 이것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사법기관은 정치나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다면서 해외 선진국의 경우, "재판받기 전 비집권 정당이나 전 정권의 정치인 구금은 상상할 수 없고 공영방송이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귀담아들어야 할 강력한 충고입니다. 

진실을 업으로 삼는 언론사 기자나 PD, 경찰, 검찰, 사법부 사람들은 첨단 정보통신 과학시대에 맞게 ‘묵시적 청탁’이라는 등 독심술(讀心術)이나 ‘카더라’ 식의 흐리멍텅한 자세를 버리고 과학적으로 법치라는 직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억지로 작문하거나, 혹시 다른 죄가 있더라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은폐하지 말라는 말이죠. 권력의 힘으로 숨기고 싶다고 해도 드루킹 여론 조작처럼 실상은 결국 드러납니다. “진실에는 부력(浮力)이 있다. 때가 되면 수면 위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영국 출신 여류 추리소설 작가 재클린 윈스피어의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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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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