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이 저 안인지 밖인지 [김창식]


감옥이 저 안인지 밖인지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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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이 저 안인지 밖인지

2018.05.24

지난 5월 5일~6일자 신문(중앙SUNDAY)에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동향을 알리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사람인 그가 1년 6개월의 형기를 채우고 출소했다는 내용이었어요. 정 전 비서관은 만기 출소 심정을 묻는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막중한 책무를 맡아 좀 더 잘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로 부족했다.” 이어서 덧붙이기를 “뒤돌아보면 여러 가지로 가슴 아픈 일들이 많다. 지금 나오지만 감옥이 저 안인지 밖인지 모르겠다.”

“(감옥이) 안인지 밖인지…. ” 정 전 비서관의 소회를 듣고 어쩔 수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지라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기사를 본 사람들의 이념과 성향에 따라 반응 또한 다를 것입니다. ‘그 심정 이해한다. 의리 있네!’(보수주의자1) ‘죄 없는 그분도 빨리 풀려나셔야 할 텐데….’(보수주의자2) ‘뭐 잘났다고? 입 닥치고 조용히 있지 않고서’(진보주의자1) ‘참 가지가지 한다. 너희들만의 의리잖아!(진보주의자2)’ 두 진영이 마주했다면 사생결단 더 험한 말도 오갔을 거예요. 자칭 중도적 입장인(그러다 회색분자라고 가끔 양쪽으로부터 배척받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씁쓸하긴 하네. 근데 비유는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거든.’

마침 그 위 기사에도 눈이 갔습니다. 공교롭게도 김경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한 것이었어요. 검찰에 출두한 현 정권의 실세 김 전 의원은 자신만만해 했습니다. “필요하다면 특검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조사에도 당당히 임하겠다.”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실체가 드러난 것은 아닐지라도 누구에게든 왜 심증(확증편향!)이야 없겠어요? 또 보수냐, 진보냐의 갇힌 틀에 따라 극과 극의 입장 차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 또 다른 의미에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지 않은 서민들에게나, ‘하루 벌어 하루 못 먹는’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 눈에는 보혁 갈등과 끝 모를 진흙탕 싸움이 어떻게 비칠까?

기사를 보며 다른 한편 ‘뫼비우스의 띠(Moebius strip)’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수학자 뫼비우스(A. F. Moebius, 1790~1868)가 위상기하학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모형말예요. 기다란 띠의 한 끝을 180도 돌려 비튼 다음 양 끝을 붙이면 간단히 만들어지지만, 뫼비우스의 띠가 갖는 함의는 만만치 않습니다. 교과서에도 나온 이 가상의 띠는 위와 아래가 서로 맞물려 처음과 끝, 안면과 겉면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즉, 왜곡과 전도가 포함돼 있으면서도 구조적으로 동일한 형식을 취해 한 번 띠 위에 올라서면(갇히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점이지요.

그런데, 아니 그러니까 말이죠. 얼핏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 뫼비우스의 띠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을 은유한 것이 아닐까? 원형의 구체라고 하는 지구가 안팎이 없는 거대한 뫼비우스 띠 형태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 점에서 출발하면 목적지에 닿거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와 형편을 보면 매일매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일상의 띠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지만(최소한 숨은 쉬잖아요?) 열심히 할수록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생각 또한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하필 이 판국에 왜 조용필의 노래 <꿈>이 들리는 것인지. 환청인가요?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그 누구도 말을 않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금난초 (난초과) Cephalanthera falcata (Thunb.) Blume

국내 최대 규모인 ‘가지산 철쭉군락지’를 찾아가는 길,
전날 계속해서 새벽까지 쏟아지던 비가 아침이 되자 개었습니다.
가지산은 밀양시, 울산시, 청도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영남 알프스라 부르는 운문산, 신불산, 영취산, 천황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산 군락 중 가장 높은 해발 1,241m의 산입니다.
   
석남 터널 능선을 타고 가지산을 오르는 동안 
들고나는 운무 따라 해맑은 연분홍빛의 철쭉 군락이 
금세 나타났다가 어느새 사라지기를 되풀이하였습니다.
마치 신선이 노니는 환상의 숲길을 걷는 듯했습니다.
2005년 8월 천연기념물 제462호로 지정된 철쭉군락지에는
수령 150년 이상 되는 철쭉나무가 1만여 그루나 되며
약 450년 정도 되는 철쭉 노거수도 상당수가 있다고 합니다.
  
산 정상을 넘어 석남사 계곡 하산 길은 참으로 가팔랐습니다.
지리산 화엄사 뒤 노고단의 코재와 같은 가파른 길을 겨우 내려왔습니다.
운무 속 철쭉에 취한 황홀감도 잠시일 뿐
꽃도 거의 없는 급경사 자갈밭 길에 몸도 마음도 금세 지쳐갔습니다.
  
그래도 꽃 탐방 길은 뜻하지 않은 즐거움이 항시 생깁니다.
계곡 물소리 청아하게 들리는 석남사 경내 근처에 이르렀을 때 
화려한 금난초 꽃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불쑥 나타났습니다.
지친 우리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석남사 부처님의 자비인 듯합니다.
하늘거리는 노란 꽃망울의 자태가 참으로 고왔습니다.
  
적잖은 사람이 오가는 길목에 달랑 두 포기 피어 있고
길 너머 안쪽으로 꽃봉오리 맺힌 한 포기가 또 있었습니다.
막무가내 채취꾼이 하도 많아 고운 산들꽃을 보면 오히려 불안해집니다.
꽃이 화려하고 고와 개체 수가 자꾸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곳 금난초도 부처님의 가호 아래 무사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금난초는 은대난초속의 여러해살이풀로 숲속 반그늘에서 잘 자라며
남부지방의 그리 높지 않은 산 부식질 토양에 주로 자랍니다.
꽃은 수줍음에 겨운 아씨처럼 필 듯 말 듯 반쯤만 핍니다.
중부지방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은난초와 같은 모습인데
꽃 색깔이 황금빛이며 남부지방에서만 자랍니다.
관상용으로 주로 쓰이며 어린 순은 나물로 식용도 합니다.



(2018. 5. 13 가지산 석남사 계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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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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