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방석순]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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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2018.05.23

눈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의 하나입니다. 당장 몸을 움직이려면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길을 걸을 때도 가장 큰 의지가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도 눈에 보이지 않으며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은 미덥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님,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프리즘으로 비쳐 보면 일곱 가지 영롱한 색깔이 드러납니다. 햇빛 속에 평소 우리 눈으로는 미처 깨닫지 못하던 무지개색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 우리 눈의 판단이 얼마나 어수룩한지 영화를 보면 압니다. 여러 장면으로 잘게 쪼개어진 스틸 사진들을 빠른 속도로 돌리면 움직이는 영상이 됩니다. 눈의 착시현상이지요. 그만큼 우리 눈은 속기도 쉬운 감각기관입니다. 눈에 고장이 나면서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소 신문도 돋보기 없이 보았으니 남보다 눈이 좋다고 자부하던 터였습니다. 양 눈에 비문(飛蚊)이 날아다녀 조금 성가신 정도. 그러다 나이 들면 으레 찾아온다는 백내장(白內障)을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에서 왼눈, 오른눈을 따로 점검하다가 왼눈 시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이 확인됐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간단히 백내장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백내장 수술을 위한 정밀검사에서 백내장은 둘째 치고 그보다 훨씬 심각한 고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황반원공(黃斑圓空?)’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망막의 중심 부분이 들떠 일어나며 구멍이 생겨 물체의 상이 제대로 맺히지 않고 시력이 떨어지는 고장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왼눈으로만 보면 사각형 물체의 위쪽 좌우 모서리가 크게 일그러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한쪽 눈을 감고 다닌 적이 없었으니 모르고 지냈던 것입니다.

황반원공에 덤으로 백내장 수술도 함께 받았습니다. 백내장 수술은 무지하게도 수정체의 혼탁한 부분을 어찌어찌 긁어내는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예 부모님이 주신 원래 수정체를 들어내고 인공 수정체를 끼워 넣는 것이라 해서 잠시 착잡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수술 후 한동안은 꼼짝없이 엎드려 있었고, 그 후로도 꽤 오랜 정양 기간이 지났지만 왼눈의 왜곡현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각형 형태는 웬만큼 회복되었지만 사각형 윗변 가운데가 마치 종이 접힌 듯 꺾여 보이는 현상이 남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수술받은 왼눈에서 성가신 비문은 사라졌습니다. 수술 때 유리체 속 부유물을 걷어낸 덕인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왼눈과 오른눈의 색감이 현저히 달라진 것입니다. 왼눈으로만 보면 백옥 같던 도자기가 오른눈으로만 보면 옅은 황색 기운이 감돌아 보입니다. 백지를 보아도, 흰 꽃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온 세상 물체가 다 왼눈에는 색이 날아갈 듯 희게 비치고 오른눈에는 옅은 노란빛이 덧씌워져 보입니다. 막 돋아나는 나뭇잎도 왼눈에는 초록, 오른눈에는 연두, 두 눈을 다 뜨고 보면 그 중간쯤의 색감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정말 그 잎의 원래 색깔이 초록인지 연두인지 알 수가 없게 됐습니다.

물체를 보는 우리의 육안이 그러하듯 사회를 보는 우리 마음의 눈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온갖 사회현상을 제 마음의 눈으로만, 보고자 하는 쪽의 색깔로만 보게 될 테니 그게 다른 사람 마음의 눈에 비치는 색깔과 일치할 리 없습니다. 남과의 소통이니 사회통합이니 하는 것도 결국 제 눈만 믿고, 제 생각만 고집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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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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