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보는 안락사 문제 [황경춘]



다시 생각해 보는 안락사 문제 [황경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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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 보는 안락사 문제

2018.05.17

호주의 저명한 학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락하는 스위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04세의 생을 원하는 대로 자신의 손으로 마쳤다는 이달 초의 신문 보도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정확히 저보다 열 살 위인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평소에 건강한 몸으로, 생태계 권위자로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책도 써내고 90세 때까지는 테니스를 즐길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행복한 생활을 이어 온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100세가 되면서 시력이 약해지고 차츰 일상생활에 권태감을 느끼게 된 끝에, 가족의 동의를 얻어 안락사를 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동년배와 저보다 젊은 나이의 친구들을 앞세워 저승으로 보내고, 어느덧 90줄에 들어선 지 오래인 저는 죽음에 대하여 가끔 진지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도 곧 하찮은 일상사에 휩쓸려 예전과 같이 건강에 조심하면서 적당히 여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지난 2월 통풍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던 혹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병으로 병석 신세를 지고 난 뒤부터,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통풍으로 거동의 제약을 받고 운동을 게을리한 결과, 체력의 감퇴가 상상외로 빨리 와, ‘90대 중반의 노구’라는 자신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자유칼럼그룹의 봄·가을 소풍에 부부동반으로 한번 빠짐없이 동참해 오다가, 이달 말에 예정된 금년 봄 소풍에는 불참한다고 통고했습니다.

탁상 캘린더에서 3개월 전에 예약해 둔 구청 보건소의 신체검사 일정을 발견하고, 아침 식사를 걸은 채 200~300미터 거리에 있는 가까운 보건소로 지팡이를 짚고 나섰습니다. 아침 10시가 넘어 보건소를 나서면서 가까이에 있는 추어탕 집 생각이나 걸음을 돌려 추어탕 2인분을 포장해 받아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식전이어서 그런지 갑자기 하체 피로가 심해져 짧은 거리를 두 번이나 쉬었다가 땀을 많이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구달 박사처럼 인생에 권태감은 아직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짜증을 낼 때가 많아졌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가까운 공원까지의 산책과 가벼운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이지만, 하체의 불안정과 미세먼지 등 갖가지 핑계로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달 박사는 100세 되면서 시력이 약해지고 체력이 생각 외로 빨리 소진되어, 평소 해 오던 학구(學究)생활을 계속할 수 없으니 자기 생명의 연장에 큰 의의를 찾지 못하고 안락사를 택하였습니다. 저는 5~6년 더 살 자신이 이번 경험으로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삶 자체에 권태감을 느낄 정도의 달관(達觀)을 얻지도 못했습니다. 생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는 일반 소인배(小人輩)의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존엄사법이 만들어졌습니다. 2년 전 존엄사와 안락사에 관한 글을 써 여러 생각을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락사를 스스로 택할 경지에는 아직 가지 못했지만, 존엄사를 원해 추한 자기 마지막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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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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