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어디까지 배달해야 하나? [박상도]


택배, 어디까지 배달해야 하나?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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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어디까지 배달해야 하나?

2018.05.03

십여년 전에 미국에 연수를 갔을 때였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는데 그중 하나가 늦게 배달되는 택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비싼 배송료였습니다. 인터넷에서 물품을 구입할 때면, 으레 기본적으로 5달러 안팎의 배송료를 내야 했고 조금 더 빨리 배송되는 익스프레스 배송을 이용하려면 7~10달러 정도의 요금을 더 내야만 했습니다. 익스프레스 배송라고 해서 아주 빠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보통 3,4일 정도 걸리는 배송을 그들은 익스프레스라 배송이라고 하더군요. 간혹 무료 배송을 하는 상품도 있긴 한데, 이 경우는 구매한 사실을 잊을 때쯤이면 배송이 돼서 ‘내가 이런 걸 주문했었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피자를 배달해서 먹을 때에도 5달러 안팎의 배달 요금을 따로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은 곳에서 배달을 시켰으니 당연히 무료일 줄 알았는데 적지 않은 돈을 배달료로 낸다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배달을 시켰으면 당연히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논리적이긴 한데 한국에서 배달료를 주고 피자를 시켜먹은 적이 없었던 터라 그 비용이 왠지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니 ‘배달의 민족’, 대한민국의 위력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로켓배송이니 번개배송이니 해서 주문하면 다음 날에 배송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당일 배송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정도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배송비를 적어도 10달러 정도는 더 내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 구매를 하면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역시 대한민국이 뭐든 빨리 하는 것에는 세계 최고구나’라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적응이 되니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되었고 이렇게 빠른 서비스를 당연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어느 날부터 택배 상자 귀퉁이가 파손되어 배달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주문한 유리병이 깨진 상태로 배송되더니 하루는 아예 다른 집으로 배송되어, 이를 찾는 데 몇 주가 걸리기도 했습니다. 아내에게 “요즘 택배가 제대로 배달되는 것 같지가 않네?”하고 말하자, “딱 한 사람이 문제예요. 아무개라고 그 사람이 우리 아파트에선 벌써 유명해요. 아마 택배 회사에 배송 기사를 바꿔달라고 민원도 많이 들어갔을 텐데 요지부동인가 봐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일찍 퇴근해서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마침 문제의 택배 회사 차량이 물건을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안 보이고 탑차 안에서 택배 상자가 바깥으로 던져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왜 박스 귀퉁이가 파손되어 배달되었는지, 왜 유리병이 산산조각이 나서 배달되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렸습니다.

또 몇 주가 흐르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해당 택배 회사 지점장의 사과문이 게시되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택배 직원의 불미스러운 일에 사과하며 다른 직원으로 교체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필자가 모르는 큰 실수가 더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바뀐 후에도 정도의 차이만 조금 있을 뿐 그 택배 회사에 소속된 기사의 불성실한 모습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집에 사람이 있는데 확인도 없이 경비실에 택배를 맡겨두거나 문 앞에 택배를 놔두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박스는 귀퉁이가 파손되어 오기 일쑤였습니다.

쿠팡이나 GS쇼핑에서 배송을 오는 분은 매우 친절합니다. 여름이면 마음 착한 아내는 꼭 냉장고에 생수를 넣어 뒀다가 그분들 손에 쥐어 줍니다. 문제가 많았던 택배 회사의 배송기사도 ‘내가 먼저 잘해주면 우리 집에 오는 물건을 잘 배송해 주겠지’하고 몇 번 생수도 주고 했다는데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 그쪽은 포기했다고 합니다. 택배 기사가 바뀌어도 서비스의 질이 나아지지 않았다면 결론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입니다. 직원을 직접 고용하거나 고객대응 매뉴얼이 잘 갖춰진 회사의 경우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고 혹시 문제가 발생했어도 고객의 불만을 바로 반영합니다. 하지만 택배 기사가 자신이 배송하는 택배 물품의 건수 당 수입을 올리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개인 사업자로서 택배 회사와 이익을 나누는 구조로 일을 하는 분들은 하루에 몇 개를 배달하느냐가 자신의 수입과 직결됩니다. 그분들에게 시간은 돈입니다. 가정에 직접 배달하는 것보다 경비실에 맡기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여러모로 더 좋습니다. 그분들이 적은 보수로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방송으로 이미 많이 알려져서 경비실로 택배 물건을 맡기고 문자 한 통 주고 떠나는 경우에 대해 큰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너무 야박해 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게가 적잖이 나가는 물건을 경비실에서 찾아 올 때는, ‘택배가 무슨 뜻이야? 집까지 배달해 주니까 택배라고 부르는 것 아냐? 내가 물건을 살 때는 당연히 택배비가 포함된 건데, 왜 서비스가 중간에 중단된 거지?’라는 불만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다산 신도시 택배 문제가 보도되면서 사회 이슈가 되어 국토교통부가 해결에 나섰다가 역풍을 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감정을 자극하는 게시글 때문이었습니다.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로 지어진 그곳에 택배 차량이 지상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붙여놓은 ‘최고의 품격을 위해서’라는 문구가 사람들을 자극했습니다. 그 결과 아파트 주민들은 ‘갑’, 택배 기사들은 ‘을’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했고 이 둘의 대립으로 문제가 단순하게 고착되었습니다. 기사의 댓글에는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로 해당 아파트 주민들을 성토하는 내용이 여과없이 실리고 이러한 여론에 힘을 얻어 택배 회사의 택배 거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택배는 ‘우편물이나 짐, 상품 따위를 요구하는 장소까지 직접 배달해 주는 일. ‘문 앞 배달’, ‘집 배달’로 순화’ 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택배라는 말 대신에 문 앞 배달’ 또는 ‘집 배달’을 쓰라고 권고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택배는 집까지 배달하는 일입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이 일이 벌어지고 필자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일반 주택이나 빌라 같은 곳에 사는 분들은 과연 어떻게 택배를 받고 있을까?’였습니다. 아파트보다 훨씬 더 배달하기가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곳에 사는 분들은 별 탈없이 택배를 받고 있을까? 그렇다면 다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은 역차별을 받는 셈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우려했던 기사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경우 택배 물품을 동네 편의점 앞에 내려놓고 가고 있어서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객의 소중한 상품’, ‘한 개에 몇 백 원짜리 일거리’ – 택배 기사가 택배 물품을 전자로 보느냐 후자로 보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질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질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후자로 보는 분들이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택배 기사 개인의 소양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데 이번 다산 신도시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토교통부가 지방의 한 아파트 단지의 지엽적인 택배 문제를 해결하는 곳은 아닐 텐데 너무 오지랖이 넓었습니다. 다산 신도시의 택배 문제는 개인과 개인 간의 분쟁이고 이 분쟁으로 인해 공중의 안전에 위해가 없는 한 정부가 나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차후 이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음을 인지하고 전국적으로 택배 시스템을 점검해서 해결책을 내놔야 합니다. 택배 회사와 택배 기사간에 불공정한 계약이나 관행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익의 배분에 있어서 택배 회사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택배 기사들을 착취하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서 추후 택배 요금이 인상되더라도 그 수익이 택배 기사에게 돌아가서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지엽적으로 생색내는 일만 하려고 하니 비난을 받는 겁니다.

외국에서 조금이라도 살았던 경험이 있는 분들은 대한민국의 택배 서비스에 찬사를 보냅니다. 싸고, 말도 안 되게 빠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도 한국이 살기 좋은 이유로 빠른 인터넷과 택배 서비스를 꼽습니다. 그런데 이런 찬사가 어느 한 편의 일방적인 희생 속에 얻어진 거라면 오히려 부끄러운 일입니다. 원칙을 지키라고 말은 하면서 원칙을 지키면 배고픈 사회를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다산 신도시 택배 문제는 원칙과 현실의 괴리에서 온 구조적 문제입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고객의 소중한 상품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님들을 응원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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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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