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정상회담 보도, 정부 발표 토대로 써라" 논란


방심위, "정상회담 보도, 정부 발표 토대로 써라" 논란

사실상 '보도 지침' 배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남북 정상회담을 취재·보도할 때 국가기관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보도하라는 취지의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언론계와 학자들 사이에선 "북핵(北核) 폐기와 남북 간 합의 사항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보도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방송 심의와 제재 권한을 가진 기관이 사실상 '보도 지침'을 배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심의위는 26일 "일명 '드루킹 사건' 보도 과정에서 연이어 발생한 오보(誤報)를 감안할 때 남북 정상회담 보도 역시 매우 우려스럽다. 객관적 보도를 위해 국가기관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보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면서 객관성, 출처 명시, 오보 정정에 관한 방송 심의 규정을 소개하고 이 조항들에 대한 해석과 심의 기준을 담은 자료를 배포했다.

중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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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심의위는 자료에서 "속보·단독 보도에 급급해 잘못된 보도를 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확인되지 않은 취재원의 발언과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추측 보도를 해서는 안 되며, 신원이 불분명한 제3자로부터 자료를 받거나 진위 확인이 불명확한 자료를 사용하는 행위도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통심의위는 이날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방송심의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남북 정상회담 보도 특별 모니터링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방통심의위의 권고가 언론의 취재·보도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국익 차원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받아쓰라는 지침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나올 수 있는 발상"이라며 "기자들이 따라야 하는 취재 윤리의 기본은 오히려 보도자료를 베껴 쓰지 않고 자유롭게 취재하고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상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남북 관계와 안보에 대한 보도에는 (언론의) 비판적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를 막겠다는 것은 언론의 감시·비판 기능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며 "방송 내용에 대한 사후 심의와 제재에 대한 권한을 가진 기관에서 나온 이 자료를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압력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언론개혁운동을 벌여온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도 이날 논평을 내고 "방통심의위가 오보 사례로 드루킹 사건을 들먹이며 '연이어 발생한 오보 논란' 운운하면서 낙인 찍기를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며 "남북 정상회담 취재에 관한 부당한 관여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방통심의위는 방송 심의·제재와 관련된 정부 업무를 대행하는 기구로 위원장을 포함한 9명의 심의위원은 국회의장과 국회 소관 상임위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위촉한다. 민경중 방통심의위 사무총장은 "국회에서도 그동안 사후 규제만 하지 말고 사전에 교육을 통해 예방하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면서 "국가 중대사를 앞두고 잘못된 내용이 방송될 경우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심의에서 자주 지적된 부분을 중심으로 사전 안내를 한 것일 뿐 정부와 사전 교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료 배포 이전 방통심의위 내부에서 이견(異見)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언론사에 '권고' 등의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동흔 기자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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