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먼지가 문화를 바꿉니다 [김수종]


미세 먼지가 문화를 바꿉니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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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먼지가 문화를 바꿉니다

2018.04.12

어제 오전 10시쯤 모임이 있어 외출했습니다. 아침 방송을 별로 안 보는 터라 날씨 정보를 전혀 모른 채 집을 나섰습니다.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기온은 따뜻하고 공기는 상쾌했습니다. 전날 밤 비바람이 정체된 공기를 밀어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날씨가 정말 상쾌하네요. 미세먼지도 없고...”
좌중의 한 사람이 내 말을 이렇게 받았습니다.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다는데, 무슨 이야기입니까? 중국에서 황사가 크게 덮쳐 온답니다.”

낮에는 광화문 네거리를 걸었습니다. 교보빌딩 앞에는 라일락이 몇 그루 있습니다. 무심코 그냥 지나치다 코끝을 찌르는 향기에 흠칫해서 고개를 들었더니 보랏빛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런데 라일락 나무 옆을 지나가는 몇 사람의 젊은 여성들이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습니다. 그 좋은 향기를 못 맡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요즘 나오는 미세먼지 필터 기능을 가진 마스크를 끼면 라일락 향기도 스며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우리 사회가 미세먼지에 이토록 민감해진 건지 헷갈립니다. 올해 미세먼지가 특별히 많이 발생하는 건지, 아니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세먼지 대책을 걱정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는 1980년대부터 스모그가 서울 공기를 뿌옇게 색칠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스크도 안 낀 채 잘 돌아다녔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미세먼지에 민감한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첫째 이유는 미세먼지 측정 기술과 장비가 더욱 정교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대기오염’ 또는 ‘스모그’란 단어로 공기의 질을 표현했습니다. 기상청이 예보하는 측정치보다 사람들은 하늘을 내다보고 오염 정도를 목측(目測)했던 겁니다. 그런데 삼사 년 전부터 미세먼지 측정이 정밀해지고 먼지 굵기에 따라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분류해서 예보하면서 미세먼지에 더욱 민감해졌습니다.
둘째 이유는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폐해입니다. 호흡에 의해 초미세먼지가 허파 세포에 흡수되어 심장질환과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의학계의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미세먼지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급증했습니다. 특히 임산부가 마신 미세먼지가 태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오면서 젊은 여성들이 임신을 꺼리는 경향이 빅데이터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셋째 한국인들이 미세먼지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은 우리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날아오기 때문입니다. 평균적인 측정치는 없지만 미세먼지의 40~50%는 중국에서 발원한다는 것이 과학적 상식이 되었습니다. 미세먼지에 관한 한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불신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연히 나타납니다.

이제 미세먼지는 한국인의 생활 구석구석을 깊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출근하기 전에 아침 뉴스에서 미세먼지를 우선 체크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뉴스가 아니라 카카오톡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세 먼지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나들이를 하는 시대가 된 듯합니다.

마스크는 감기에 걸리면 어쩌다 사용하는 상품이 아닙니다. 거의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필터 기능에 따라 'KF80' 'KF99' 등 알아먹기도 힘든 마스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개에 1만8,000원씩 하는 미세먼지 필터 마스크도 잘 팔린다고 합니다.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과 의학적 정보가 많아질수록 마스크 업체는 더욱 고급화된 제품을 개발할 것이고 시민들의 부담은 커질 것입니다. 한번 세탁하면 미세먼지 필터 기능이 크기 떨어진다니 마스크 소비를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추세로 사람들이 미세먼지에 민감해진다면 마스크 구매에 쓰는 비용이 통신비를 능가할지 모릅니다. 화생방훈련에 쓰이는 방독마스크 같은 것들도 나온다니 앞으로 서울 거리가 기묘한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세먼지를 방지한다고 문을 닫는데, 이게 초미세먼지 방지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숨을 쉬는 공기가 들어오는 틈만 있으면 공기 중의 미세먼지는 아무 방해받지 않고 실내로 침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서울의 고급 백화점에 가보면 전에 없이 넓어진 게 공기청정기 전시 매장입니다. 종류도 많고 값도 천차만별이고 비쌉니다. TV세트,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이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처럼 곧 공기청정기가 그 대열에 합세할 것입니다.
최근 좀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수소차 ‘넥쏘’의 판매 예약을 받았는데 하루 만에 신청 대수가 733대나 몰렸습니다. 이 차의 가격은 7천만 원대입니다. 이렇게 신청자가 몰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수소차 넥쏘가 탁월한 미세먼지 필터 기능이 있다는 현대차의 홍보도 먹혀들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들이 이 차를 타고 달리면 자동차 안에는 미세먼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착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세먼지가 생활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로 야구 경기가 취소됐습니다. 이제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학교도 쉴 것입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병가가 허용되는 시대가 올지 모릅니다. 좀 역설적이지만 ‘아는 게 병’이라는 속담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달래 (백합과) Allium monanthum Maxim.

냉이와 함께 우리 식탁에서 
가장 먼저 봄맛을 느끼게 해주는 나물을 들라치면 
대부분 사람은 달래를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달래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나물 이름입니다.
달래 무침, 달래 된장국, 달래 양념장은 전통의 봄맛 음식이며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역시 익숙한 동요의 한 구절입니다.
   
이토록 우리에게 친숙한 달래이지만, 
실제 달래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냉이와 함께 이른 봄나물로 시장에서 사고팔며
지금은 재배하여 사철 즐겨 먹을 수 있게 된 나물,
그 나물은 산림청의 국가식물표준목록에 따르자면
사실은 ‘달래’가 아니라 ‘산달래’입니다.
   
대표적 봄나물로 오랜 기간 즐겨왔던 식재료 산달래가
언제부터 달래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였을까?
아니면 식물학자가 산달래와 달래를 혼동하여 이름 붙인 것인가?
그 유래와 내력은 알 수 없지만, 
국가식물표준목록의 정식 명칭은 달래와 산달래가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용어와 서로 뒤바뀌어 있습니다. 
즉, 흔히 우리가 즐겨 먹는, 
달래라고 부르는 나물이 달래가 아닌 산달래입니다.
실제의 달래는 주로 산속에서 자라는 아주 작은 개체로
흔히 관심 밖에 있어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식물입니다.
  
산달래는 이름과 달리 주로 들판이나 오래된 밭,
혹은 인가 근처 야산에서 많이 발견되고, 
달래는 깊은 산속이나, 큰 산언저리의 낙엽 더미에 많이 보입니다.
  
달래의 생김새는 매우 작고 잎은 한두 개뿐입니다.
봄기운 번지면서 따스한 햇볕이 퍼지는 이른 봄,
얼어붙고 황량한 깊은 산, 낙엽 더미 속에서
잔디처럼 생긴 선형의 줄기 싹이 한두 개 빼꼼히 나옵니다.
꽃은 4월에 한 개의 꽃대 끝에 쌀알 크기의 꽃이 한두 개 달리며
흰색 또는 연한 홍색으로 반쯤만 벌어집니다.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암수딴몸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흔히 나물로 이용하는 산달래는 
산이 아닌 주로 들판이나 인가 근처 밭에서 자랍니다.
잎이 2~9개이며 꽃은 5~6월에 꽃대 끝에 여러 개의 꽃이
산형꽃차례로 활짝 벌어지는 암수한몸입니다.
   
달래 역시 산달래와 마찬가지로 
잎과 알뿌리를 무침으로 먹거나 식재료로 이용합니다. 
마늘의 매운맛 성분인 알리신(allicin)이 들어 있습니다. 
독특한 향과 알싸한 맛으로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돋우며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예로부터 자양강장 음식으로도 알려졌습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 강장 효과 때문에 달래를 '오신채'라 하여 
파, 마늘, 부추, 무릇 등과 함께 금하고 있는 식재료입니다.
  
달래와 산달래, 맛과 향은 차이가 별로 없으나 
모습과 생육지, 꽃피는 시기와 꽃차례가 다릅니다.
달래는 줄기도 알뿌리도 산달래보다 훨씬 작아 애기달래라고도 부릅니다.
달래는 깊은 산에, 산달래는 주로 들에 자라니
달래와 산달래 이름을 바꾸거나 산달래를 들달래라 불렀다면 
지금처럼 일반인의 혼동이 덜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2018. 4. 4 천마산 천마계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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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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