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세먼지 속의 개헌안 [김영환]


초미세먼지 속의 개헌안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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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세먼지 속의 개헌안

2018.04.04

초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립니다. 얼마 전 강화도 서쪽의 해안에서는 몇십 미터 앞에서 가는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점멸등을 켜고 조심스레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강화도 서남단은 공장이라고는 없는 데다 서울 도심에서 5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니 국내에서 발생한 초미세먼지가 원인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초미세먼지에 당황한 당국은 석탄 발전소 가동을 줄인다든가 자가용 차량 2부제 운행 따위의 대책을 실시했죠. 서울서는 1월 초 무료 대중교통 제공에 사흘 동안 150억 원을 썼다고 합니다. 결과는 하루에 최대 1.7퍼센트 저감이었다고 하니 별 효과는 없었던 거죠. 그 돈이면 50만 원짜리 공기청정기 3만 대, 안면 마스크 2,000원짜리 750만 개를 살 수 있죠. 미세먼지는 중국발 오염원이 존재하는 한 근치가 어렵습니다. 최근 북·중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러 온 양제츠 특사가 한중환경협력센터의 조기 출범에 동의했다는데요. 이런 건 작년 대통령 국빈방문 때 중국이 마땅히 했어야 할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미세먼지의 국내적 요인은 우리가 알아서 대응할 일이고 중국에 설명할 필요는 없죠. 한국표준과학원 가스분석센터의 정진상 책임연구원 팀은 중국이 춘절에 터뜨리는 폭죽 오염이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에 내습한다는 것을 대기 오염 물질 성분 분석으로 최근 입증했습니다. 이웃나라의 대기오염에 무관심한 중국에게 당당하게 대책을 압박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계 최강인 미국의 동맹국이겠다, 중국에 결핍된 자유민주주의라는 소프트 파워를 가졌는데 왜 위축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를 번영시킨 자유민주주의는 세계의 자랑거리입니다. 

대기 오염이 이렇게 심각한데 환경을 내걸고 도롱뇽을 살리자던 사람들,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나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요? 어느 환경단체는 ‘중국발 미세먼지 절대 책임론’은 부적절하고 우리 탓이 크다며 중국의 책임을 ‘사대적으로’ 희석하려 들기도 합니다. 

대기오염은 비가 씻어주는 게 좋으므로 2016년 12월 중국 허쩌 시는 인공강우 촉진 로켓탄을 발사해 한국의 수도권만 한 면적에 평균 13.5밀리미터의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무인기 살포로도 인공강우에 성공했죠. 우리나라도 인공강우로 대기오염을 씻어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급한 대로 한강 주변을 비롯한 전국의 도시와 유원지의 분수를 하늘로 치솟게 하고  인공 폭포를 전면 가동해 오염물을 씻어내는 것은 어떨까요? 살수차로 도로도 계속 닦고요. 

외부의 오염원은 초미세먼지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2기 10년'으로 제한한 국가주석 임기 규정을 철폐하는 헌법 개정안을 99.83퍼센트로 채택해 시진핑이 2022년 현 임기 종료 후에도 연임할 수 있는 종신 집권 길을 텄습니다. 북한에는 김정은으로 이어진 3대 세습 독재가 있고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6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 4기 집권에 성공하여 71세가 되는 2024년까지 사실상 24년간 크렘린 권좌를 지키게 됐습니다.

최근의 대통령 개헌안을 보며 이런 한반도 주변의 불온한 공기가 대한민국을 오염시키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헌법은 장기집권의 폐해와 독재 방지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국민이 쟁취한 5년 단임의 대통령도 긴데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의 권력 분산은 않고 중임제로 8년이라니 시대 역행이죠. 대통령들은 한 번 더 해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합법을 가장하는 독재 정권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지금도 촛불에 야당이 한껏 위축된 모습입니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울산지방경찰청이 울산시장 후보로 나선 김기현 시장의 부속실 등 5곳을 압수 수색하고 기각된 동생의 영장청구 행위를 놓고 벌이는 공방이 이를 웅변합니다. 야당은 울산의 여당 후보가 문재인 대통령과 친하다는 송철호 변호사이며 울산경찰청장이 이 사람을 몇 차례 만난 뒤 수사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황운하 청장을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조진래 창원시장 공천자 수사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비난합니다. 반면 경찰은 범죄 혐의의 수사가 당연하다는 식입니다.

검찰은 탄핵에서 이어진 칼춤을 추고 있고 경찰도 검경 수사권 조정을 노리고 자신도 한몫을 하려는 위압적 분위기로 보입니다. 과연 개헌저지선인 100명을 훌쩍 넘는 116석의 자유한국당이 단독으로 개헌안을 저지할 수 있을까, 저지 못할 것을 상상하는 분석가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84조에도 불구하고 올해 2월 24일까지 임기가 보장된 박근혜 대통령까지 각종 혐의를 씌워 유죄를 확정하기도 전에 선동과 조작 보도의 쓰나미로 국회가 탄핵하고 헌재가 이를 방관하는 나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대통령 개헌안은 조문 수정이 불가능해 국회가 폐기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6월 13일 지방선거 투표장에서나 여러 단체장과 의원을 선거하는 투표지에 섞인 개헌안을 찬반만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 ‘국민헌법’이라고 정부는 선전하지만 밀봉 끝에 사흘간의 쪼개기 취지 설명과 전문(全文)공개는 개헌 업무와 번지수가 먼 민정수석 조국이 발표했습니다. 

야당과  언론은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난도 합니다. 가뜩이나 지역갈등이 존재하고 재정자립도도 형편없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방분권 국가’ 제창으로 단합이 더 잘 될까요. 꼬리가 머리를 부정하는 일은 안 생길까요? ‘국민’ 대신에 무슨 세계 인권선언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의 무절제한 남용,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토지 공개념,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여러 ‘정신’을 담은 헌법 전문(前文) 등, 각종 입법과 규제의 근거가 될 조문의 자구 하나에도 몇 달이고 토론을 거쳐야 할 중대 사안이 국무회의의 심의는 단 40여 분만에 통과했습니다. 국가 백년대계의 무게감은커녕 국민과 입법부를 무시하는 졸속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쉽게 헌법을 고치면 세상이 바뀔 때 또 고침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굳이 지금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나? 대답은 국회 표결과, 통과할 경우 이어질 국민투표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조셉 드 메스트르 백작(1753-1821)은 “모든 국민은 그에 어울리는 정부를 갖는다.(Toute nation a le gouvernement qu'elle mérite.)”라고 갈파했습니다. 헌법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 이상의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국회와 국민에게 나라의 미래를 향한 판단 책임이 어느 때보다 무거워지는 이유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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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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