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를 국민 품으로 [고영회]


한글학회를 국민 품으로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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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를 국민 품으로

2018.03.22

1997년에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바로쓰기’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우리말 공부를 잘못한 것인지,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인지 우리말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 책을 읽은 뒤부터 우리말과 우리글을 보는 눈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말을 가운데에 두고 신문, 방송, 거리 간판, 정부 정책설명자료를 보면 딱한 게 참 많습니다. 정부에서 주로 영어권 나라에 유학 다녀온 사람이 자리를 차지해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말을 몰라서 그런지, 정부에서 만든 정책이나 설명 자료에 외국말이 넘칩니다. 신문기사와 방송에도 어울리지 않는 외래어가 판칩니다. 민간 부문에서 광고나 안내표지에 나오는 어설픈 외래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정부정책이나 보도 기사는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우리말과 우리글로 쉽게 써야 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이고, 독자를 위한 보도, 손님을 위한 광고라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당연히 우리말과 우리글로 쉽게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고 써야 합니다. 요즘 그 당연함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로잡을 중심에 한글학회가 있습니다. 한글학회는 1908년에 생겼으니 100년을 훌쩍 넘겨 가장 오래된 학회입니다. 한글학회는 일제 강점기에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 발전시켜왔습니다.

아십니까. 우리말과 글의 조련사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이나 소설가, 평론가, 기자는 한글학회 정회원이 될 수 있을까요? 토박이 우리말을 연구하는 시민은, 초중고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님은 정회원이 될 수 있을까요? 예상과 달리 정회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한글학회 회칙에는, 정회원은 “국어학, 언어학, 국어 교육학 또는 이와 연관된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이로서 공인된 논문을 발표한 실적이 있는 사람”으로 정했습니다. 연구에 종사하면서 논문 발표 실적이 있는 사람이니 그에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말과 글로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도 정회원이 되기 어렵습니다.

한글학회 정회원은 총회에서 회장을 뽑을 권리가 있을까요? 정회원은 총회에 참석하지만 ‘임원 선출권’이 없습니다. 단지 ‘임원 및 평의원 선출결과 보고받기’가 있을 뿐입니다. 회장을 뽑는 권한이 총회에 없는 단체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회원의 뜻이 반영되어 회장을 뽑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럴까요?

한글학회의 선거제도를 살펴보죠. 한글학회 기구에는 ①총회 ②이사회 ③평의원회가 있습니다. ②이사회는 11명(회장과 부회장을 포함)으로, ③평의원회는 90명 안팎으로 구성됩니다. 평의원은 이사회가 추천하고 평의원회 인준을 받아야 하니, 평의원은 이사회가 뽑습니다. 그리고 평의원회가 이사를 선출합니다. ‘이사회->평의원 추천->평의원회 인준-> 평의원회가 이사 선출’하는 과정으로 움직이니 이사회와 평의원회는 한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회장과 부회장은 이사끼리 호선으로 선출합니다. 이 짜임새(구조)를 보면, 정회원은 이사, 감사, 나아가 부회장과 회장을 뽑는 절차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냥 선출 결과를 보고 받을 뿐이니 임명을 거부할 권한도 없습니다. 그러니 참신하고 유능한 사람이 있더라도 이사회가 귀를 막으면 반영될 여지가 없습니다. 회칙을 올바르게 고치려 해도 총회에 오르는 의제는 이사회가 발의하고(회칙 개정안도), 평의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니, 이사회와 평의원회가 반대하면 개정안 자체가 총회에 오를 수 없습니다.

한글학회 회칙이 불합리한 것을 바로잡으려고 정회원인 박용규 박사(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글학회개혁위원회를 결성하고, 지난 겨울은 무척 추웠는데도 거의 날마다 한 달여 동안 한글학회 회관 앞에서 '한글학회를 국민의 품으로!'를 외치며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회칙개정위원회가 회장 선거를 비롯하여 개선 방안을 담은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이사회는 마뜩잖은가 봅니다.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붙임의견을 달아 총회에 올린다고 합니다. 이제 공은 총회로, 총회에 참석하여 의결 권한이 있는 정회원에게 넘어갔습니다. 정회원들이 어떻게 선택할지 궁금합니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나, 현재 할 일을 생각하면, 한글학회가 단순히 학문을 연구하는 단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글학회는 학회의 목적에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널리 펴고 발전시키는 것’이라 하여, 말글살이를 바로잡을 목적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글학회 회칙을 바르게 고쳐 정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범위도 넓히고, 회장 선출 방식도 고쳐서 학회 목적에 맞게 학회가 활동하면 좋겠습니다. 한글학회가 단순히 학회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온 국민과 함께하는 한글학회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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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현)과실연 공동대표,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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