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사장, 방송인 監事로 바람잘날 없는 국민연금공단

 

정치인 이사장, 방송인 監事로 바람잘날 없는 국민연금공단

615조 거대 공룡

 

잇단 '인사 잡음'에 구설수
文캠프 출신 김성주 이사장 이어 전문성 논란 고교 선배가 '넘버2'
"全州연금됐다"는 얘기 나돌아… 연금측 "임명권은 대통령에 있어"


기금운용본부장은 8개월째 비어
"자리의 중요성을 몰라서인지 챙길 사람 고르느라 그러는지…"
최근 공모 시작… 또 낙하산?


 
   615조원의 국민 노후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작년 말부터 인사 잡음으로 뒤숭숭하다. 새 정부가 작년 말 임명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전문성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최근 선임된 감사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전주  국민연금공단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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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의 고교 선배인 데다, 감사 업무와 관련 있는 경력이 없는 탓이다. 게다가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은 8개월째 공석(空席)이다. 최근에야 공모가 시작됐다. 만약 또 한 번 낙하산 논란이 일면 국민연금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에도 위험 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13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가 전년보다 감소했다. 과거 세 차례(1998·2000·2004년) 가입자 감소와 달리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저출산에 따른 구조적 변화일 가능성이 있다. 2060년으로 예상하는 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 보험료 인상 여부 등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인사 잡음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불가능하다. 전주시 덕진구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국민연금을 다녀왔다.




"건물 뒤편 공터 주차장이 가득 차 있는 것 보이시죠. 여기는 차 없이 못 다닙니다."


지난 13일 국민연금공단에서 만난 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전 4년째지만 주변은 여전히 황량했다. 전주 시내까지는 차로 30분 걸리고, 신시가지라고 부르는 신도심도 15분 넘게 걸린다. 버스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교통이 불편해 차를 몰고 다니는 직원이 많아 인근 공터에 임시 주차장까지 설치했다. 국민연금 직원이 900여 명인데, 647대가 주차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 직원은 "10층짜리 건물인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공터라서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고 했다. 국민연금 건물은 금융 허브(Hub·중심지)가 아니라 서울에서 180㎞ 떨어진 벌판에 서 있다.

 

세계 3위 국민연금, 황량한 전주벌에서 "글로벌 투자" -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왼쪽 건물)과 기금운용본부 건물 주변에 공터가 보인다. 세계 10대 연기금 가운데 국민연금만 수도나 금융 허브가 아닌 곳에 기금운용센터를 두고 있다. /김영근 기자


 
점심시간 지하 1층 구내식당은 만원이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당은 7~8곳뿐이라서다. 인근 신축 상가들은 비어 있는 곳이 더 많다. 건물 1층도 세가 나가지 않아 유리창에 '임대 문의' 광고를 붙여놓은 곳이 수두룩했다. 후미진 공터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다. 국민연금 직원들은 근무 여건 불만과 함께 인사 잡음(雜音)에 대한 걱정이 컸다. 한 30대 직원은 "신임 감사에 대해 밖에서 이상하게 보는데 우리라고 좋게 보겠느냐. 안에서도 뒷말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서열 1·2위 이사장, 감사가 고교 동문

국민연금의 인사 논란은 김성주 이사장이 작년 11월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대선 캠프 출신이고, 더불어민주당 전(前) 의원이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했다지만 어떤 전문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권에서는 "정권 실세들이 자기 돈이면 저 사람에게 맡기겠느냐"는 말까지 돌았다. 국민연금이 이전한 전주 덕진구의 지역구 의원이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됐다. 김 이사장은 홍보실 명칭을 '국민소통실'로 바꾸도록 했고, 지난달 말엔 '국민 설명회'라는 전례 없는 행사를 열었다. 국민에게 기금 현황 등을 알리겠다는 자리였는데 전북 지사, 지역 국회의원 등과 공단에서 국민 대표라고 선정한 10여 명이 참석한 게 전부였다. 국민연금 출신 한 금융권 인사는 "새 이사장이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임명된 감사는 논란을 더 키웠다. KBS전주방송총국 보도국장 등의 경력이 연금 운영 전반을 감사하는 역할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김 이사장의 전주고 선배이기도 하다. 전주고 선후배가 이사장과 감사를 차지하면서 "전주로 이사 가더니 '전주 연금'이 됐다"는 말이 금융권에 돌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라 우리가 감사 임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定員도 못 채우고 있는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은 8개월째 비워뒀던 기금운용본부장 공모를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한 본부장이 임기를 1년 넘게 남긴 작년 7월 갑작스레 사퇴했다. 당사자는 "누구한테 전화받은 것 없다"고 했지만, 주변에선 "유구무언 아니겠느냐"고 한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10년 전쯤 4개월간 공석이었던 적이 있지만 그 뒤로는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전임자가 근무하는 게 관례였다"고 말했다. 비워두면 안 될 자리인데 문재인 정부가 신기록을 세웠다는 얘기다. 한 전직 경제 관료는 "자리의 중요성을 몰라서 비워놨는지, 챙겨줄 사람을 고른다고 그랬는지 몰라도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지난달 말부터 공모 절차가 진행돼 16명이 지원한 상태다. 이번 공모는 유독 비밀스럽다는 말이 나온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16명이 지원했다는데 돌아다니는 하마평도 없다. 깜깜한 데서 무슨 일이 벌어질 모양"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직원은 "능력 있는 사람 뽑겠다고 본부장 연봉을 2배로 올려 6억원 준다는 말도 있던데 누구 정해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냐고도 한다"고 했다.

 

작년 초 기금운용본부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우수 인력이 대거 이탈한 공백을 아직 메우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 관계자는 "자산 운용사 본부장급, 대표급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전주 이전을 앞두고 상당수 떠났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계 10대 연·기금 가운데 수도나 금융 허브가 아닌 곳에 기금운용센터를 둔 곳은 우리뿐이다. 국민연금은 국민 모두의 자산 운용사나 마찬가지라 최고 인력을 보유해야 하는데…"라고 했다. 기금 운용 전문 인력의 대거 사퇴 이후 연봉 인상을 단행했지만 정원(定員)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278명 정원이지만 235명이 근무하고 있다.

 

연금의 구조적 문제 해결은 손도 못 대

인사 잡음도 문제지만 일주일 전 발표된 가입자 감소 통계도 국민연금의 걱정거리다. 지난해 말 기준 가입자가 2182만4172명으로 전년보다 8352명 줄었다. 가입자 감소가 2019년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2년 빨리 닥친 것이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든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반면 고령화로 국민연금 수령자는 지난해 33만명 정도 늘어 469만명을 넘었다. 국민연금은 2025년 1000조원을 넘고 2043년 2500조원까지 불어나지만 이후 연금 수령자가 급증하면서 2060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절벽을 향해 가고 있다. 제도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5년마다 개편 주기인 국민연금 종합 운영 계획을 대대적으로 손볼 예정이지만, 내부에서는 "때마다 하는 일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노후 보장 못하는 '용돈 연금', 2060년이면 고갈될 '시한부 연금'이라는 근본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금 수령자(432만명)의 월평균 연금액은 36만원 남짓이고 20년 이상 가입자도 월평균 89만원에 그쳤다. 월 100만원 이상은 16만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부분적인 보험료 인상 카드 등을 만지작거리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과 달리 국가가 책임진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소진됐다고 가입자들에게 연금 못 주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 고갈되기 전에 제도 변경 등을 해야 하는데 인사 문제로 이렇게 시끄러워서야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하반기 '스튜어드십' 도입 예정… 기업 리스트 만들어 압박할 듯

국민연금이 올 하반기 스튜어드십(Stewardship·주주권 행사 강화)을 도입하면 대기업을 상대로 '군기(軍紀) 반장'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금 운용에서 예전보다 공공성에 더 무게를 둘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스튜어드십은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충직한 집사(스튜어드)처럼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주주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영국에서 2010년 시작돼 일본 등 12개국이 운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포커스 리스트(focus list·집중 관리 대상 기업 명단)'라는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경영진 비리나 배당이 낮은 기업 등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 운용에서 공공성을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현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이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작년 7월 "국민연금이 공공 임대주택이나 국공립 보육 시설에 대한 사회책임 투자를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 금융사 임원은 "국민 노후 자금 운용은 안정성과 수익성이 최우선이며 그 외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 엉뚱한 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5/20180315030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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