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아나운서 후배를 바라보며 [박상도]


떠나는 아나운서 후배를 바라보며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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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아나운서 후배를 바라보며

2018.03.14

후배  아나운서 한 명이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아나운서들이 방송사를 떠나면 프리를 선언했다고 보도가 나오기 때문에 필자 역시 프리를 선언했다고 쓰고는 있습니다만, 엄밀히 얘기하면 방송사에서 연예기획사로 회사를 옮겼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 최근의 추세는 아나운서들이 프리를 선언하고 나가면 연예기획사에 소속되어서 활동합니다. 물론 일반 직장의 개념이 아니라 이익을 8:2 또는 7:3으로 나누는 계약관계가 됩니다. 계약관계이긴 하지만 업무 지시를 받는다거나 조직의 지원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회사를 옮겼다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입니다.

‘도대체 왜 나가는 건데?” 많은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나가 본 적이 없는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솥밥을 먹은 식구가 나갔으니 물어볼 법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속칭 잘 나간다는 아나운서가 프리를 선언하는 경우,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는 것을 본 적도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나가는 겁니다.

후배 아나운서의 경우도 본인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서 회사를 옮긴 경우입니다. 예능프로그램의 경우 MC급이 아닌 출연자들도 보통 회당 200만에서 300만 원씩 출연료를 받습니다.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인 한 연기자는 회당 500만 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그 옆에 같이 출연하며 2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 아나운서들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주일에 1회만 출연해도 한 달이면 자신이 받는 월급보다 훨씬 많이 가져가는 연예인을 보면서 흔들리는 후배에게 “대신에 너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잖니?”라고 얘기하며 붙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옹색한 일이겠습니까?

물론 ‘아나운서로서 긍지와 자부심’ 운운하며 붙잡을 수도 있겠지만, ‘긍지’와 ‘자부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 정도로 돈 앞에 장사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경제 논리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세상이 되면서 다른 모든 것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그렇다고 모든 아나운서가 돈을 좇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나운서들이 유혹을 많이 받는 구조라는 얘기이고, 통계를 봐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나운서만 프리로 전향했다는 점에서 구조적 문제를 짚고자 하는 것입니다. 

방송사에서 출연자에게 지급되는 출연료는 장르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많이 납니다.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의 출연료는 회당 1억 원이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출연료가 지급되는 곳이 예능프로그램입니다. 연말 시상식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예능 스타들의 출연료는 회당 700만에서 1,000만 원에 달합니다. 이들은 방송사와 대등한 위치 또는 그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계약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흔히들 아직도 방송사가 출연자에게 갑질을 하는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는 방송사가 KBS와 MBC만 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입니다. 방송사가 아직도 갑질을 할 수 있다면 우선, 매년 적자의 위협에 허덕이면서 출연자에게 자기 직원 월급보다 많은 출연료를 주지 않을 겁니다.

잘나가는 젊은 아나운서가 이런 모습을 몇 년 동안 옆에서 지켜보게 되면, 차라리 프리랜서가 되어 좀 더 대접받으며 방송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되겠지요. 특이한 것은 교양프로그램의 경우는 출연료가 예능프로그램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아침 교양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리포터들은 이틀씩 야외촬영을 하고 새벽 생방송에 출연하면서 30만 원 안팎의 출연료를 받습니다. 물론 방송 경력도 출연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력이 짧은 리포터들은 고생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적은 출연료를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로 뉴스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분들입니다. 언론사의 편집국장을 지냈던 분들, 전?현직 교수 정치인 등등 쟁쟁한 분들의 출연료가 평균 2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유익한 것보다 유명하면 더 많은 돈을 버는 세상, 학식과 경륜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보다는 대중이 더 많이 보는 오락을 제공하는 사람이 훨씬 더 대접받는 세상, 세상에 대한 고민보다 웃고 즐기는 자체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 어느 순간엔가 웃음을 주는 사람들이 신격화되기 시작한 세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금전적 보상이 급격히 커졌으며 이는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했다는 사실 등등을 보며, '도대체 이런 불평등은 어디서부터 초래되었을까?' 필자의 질문은 오래전부터 궁금해하던 의문입니다. 필자의 의문은 ‘자유시장경제논리’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만들어 낸 거역할 수 없는 힘에 대항하는 나약한 몸짓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가 전세계 모든 곳에 차별을 심화시키고 있고,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에 도덕적 당위성까지 부여하는 모습에 지쳐가는 사람들은 필자가 던진 질문과 같은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아나운서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룬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며, 아나운서가 또 다른 곳을 향하는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아나운서로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후배들에게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세상은 점점 탐욕스럽게 변하고 있고 이를 견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이 그냥 바라보는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큰개불알풀 (현삼과) Veronica persica Poir.

올해의 봄꽃 소식이 유달리 늦습니다.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 사이의 기록적 맹추위 때문으로 보입니다. 
절기는 경칩이 지나고 춘분으로 가는데 꽃소식은 남쪽에서만 맴돌 뿐 
북상의 길을 잃은 듯 서울의 꽃소식은 깜깜합니다.
지난가을 이후 긴 겨울 동안 꽃을 보지 못해 안달이 난 
꽃쟁이들의 간절한 기다림을 몰라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예전 같으면 이맘때쯤이면 진즉 피웠어야 할 풍년화, 복수초,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홍매화 등 이른 봄꽃이 
아직도 벙글어지지 않는 꽃망울 비늘 속에 갇혀 있습니다.
또한, 꽃다지, 냉이의 꽃줄기도 오르지 않은 것을 보니 
예년보다 일주일 이상 꽃소식이 늦어지나 봅니다.
   
행여나 싶어 나름 작성한 예년의 꽃 일지 따라 
남한산성, 운길산, 천마산 등을 찾아갔으나 
헛걸음질만 하고 말았습니다.
  
올해의 첫 꽃을 찾아 헤맨 끝에 
그나마 겨우 만난 것이 바로 큰개불알풀입니다.
큰개불알풀은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라는 
해넘이한해살이 식물로 보통 가을에 발아하고 
3월에서 6월까지 집중적으로 꽃이 핍니다. 
한편 직사광선이 내리쬐고 바람막이 있는 양지바른 곳에서는 
겨울에도 줄기 끝에 한 송이씩 꽃을 피우는 개체가 간혹 있습니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았어도 대지에 봄기운이 감도는 듯싶으면
일찍 꽃을 피워 봄의 전령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꽃은 흰색이 도는 연한 군청색으로 매우 작으며 
꽃잎이 4개처럼 보이지만 기부까지 깊게 갈라진 통꽃으로
꽃잎 안쪽에 짙은 색깔의 파란 줄이 있습니다.
잎겨드랑이에 꽃이 1개씩 달리며 수술은 2개, 암술은 1개입니다.
  
우리나라 개불알풀속(屬)엔 개불알풀, 눈개불알풀, 선개불알풀, 좀개불알풀, 
그리고 큰개불알풀이 있습니다. 이 중 개불알풀만 우리나라 자생종이고 
나머지는 서남아시아,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귀화식물입니다.
큰개불알풀은 서남아시아가 원산으로 1800년대 초에는 유럽, 
19세기 이후에는 전 세계 온대지역에 귀화하여 널리 분포하고 있습니다.
   
큰개불알풀의 이름은 열매가 '개의 불알'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일본명의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 직역 이름이라고 합니다.
큰개불알풀은 여러 나라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유럽 등 서양에서는 꽃이 어떤 새의 눈을 닮았다고 해서 ‘Bird's eye',
한자 이름은 땅에 깔린 비단이란 뜻의 '지금(地錦)'입니다,
국내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이름이 거시기하다고 해서 
‘봄까치꽃'이란 예쁜 이름으로 부르고 있긴 하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여전히 ‘큰개불알풀’로 등재돼 있습니다.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추운 겨울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꽃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입니다.
이제 ‘기쁜 소식’이 피어나니 머지않아 천지사방에 
봄꽃이 만발할 날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2018. 3. 11 서울 성내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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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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