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에 세워지는 소녀상 [방석순]


방방곡곡에 세워지는 소녀상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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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에 세워지는 소녀상

2018.03.06

평화의 소녀상은 일제의 강압으로, 혹은 일제의 기만에 속아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한 우리 할머니들의 상징입니다. 그런 할머니들의 꽃다운 시절을 표상하는 소녀상을 세우는 의미는 일제 만행에 대한 항의요 사죄의 요구입니다. 반인륜적 만행을 고발함으로써 같은 범죄의 재발을 막자는 뜻도 있습니다. 지난 2013년 7월 해외에서 처음으로 미국 글렌데일에 소녀상이 세워질 때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측의 반인륜적 만행을 만천하에 알리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라고 제막식 참석 이유를 밝혔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의 뜻도 있을 것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2011년 12월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지면서 그 같은 뜻을 세계만방에 알렸습니다. 이후 국내에는 경쟁하듯 소녀상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여러 곳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전주, 대전, 원주, 울산, 목포, 군산, 익산, 해남, 성남, 광명, 천안, 거제, 남해 등등 이미 수십 곳에 소녀상에 세워졌습니다. 올 3·1절 하루에만도 의왕, 동두천, 보령 등지에서 일제히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곳에 소녀상이 세워질지 알 수 없습니다. 경쟁의식 때문은 아니겠지만 대구·경북 지역에는 지난 3월 1일 벌써 9번째로 구미에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소녀상을 세우지 않는 지역에 대해 누가 뭐라고 시비할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녀상 세우기를 꺼리거나 거부하는 지역이 있다면 또 어떤 시비가 벌어질지도 알 수 없습니다. 평화 기원을 거부하는 지역? 인권유린에 대해 눈감는 마을?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들? 만약 우리 마을에, 내 집 앞에 소녀상을 세우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떤 비난을 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만약 소녀상을 각 지역에 고루 세워야 한다면 어느 정도로 세워야 하는 것일까요. 광역시에는 구·군 단위로, 일반 시에는 동·리 단위로?

마포구의회가 세우려던 소녀상이 한 곳에서는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또 다른 곳에서는 대학생들의 반대에 막혀 설 곳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의회가 소녀상 건립 결의 이전에 구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았는지 의문입니다. 결의와 함께 합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연고자들의 의견을 참고해 부지를 확보하는 절차도 필요했습니다. 어떤 설치물이든 그로 인해 불편과 부담을 느끼는 주민이나 연고자들이 없는지 살피는 게 바른 절차입니다. 소녀상 건립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이든 일방적으로 그들을 매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솔직히 나는 평화의 소녀상을 볼 때마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뉴욕으로 퍼져 나갈 때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못난 나라의 국민임이 부끄럽고, 아직도 그들의 원성이 나라를 넘어 세계로 퍼져나감이 부끄러워집니다. 일제의 인권유린에 항의하고 우리 자신의 과거 무지, 무능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몇 곳에 소녀상을 세우는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요?

소녀상 작가 자신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로서 이번처럼 아파하면서 작업한 적은 또 없었다. 소녀상이 모습을 갖춰 갈수록 쉼 없이 밀려오는 분노와 아픔, 슬픔과 고통……” 작가의 느낌 그대로 우리는 지금 경쟁하듯 방방곡곡 분노와 아픔과 슬픔을 세우고 심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얼마나? 분노와 아픔, 슬픔과 고통을 안은 소녀상이 나라의 얼굴처럼 방방곡곡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 소녀상을 민족의 각성으로 독립정신을 만방에 떨친 3·1절에 꼭 세워야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차라리 꽃 같은 나이에 일제에 끝까지 항거하며 독립을 부르짖다 숨진 유관순(柳寬順, 1902~1920)상을 방방곡곡에 세우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은가요. 아니, 서울 장충단공원과 천안에 유관순상을 세운 것처럼 서울 정신여고 교정에는 김마리아(1892~1944)상, 경북 영양에는 남자현(南慈賢, 1872~1933)상, 배재학당 자리에는 지청천(池靑天, 1888~1957)상, 전남 보성에는 서재필(徐載弼, 1864~1951)상, 부산 동래에는 김규식(金奎植, 1881~1950)상, 충남 보령에는 이규동(李圭東, 1889~1950년)상을 세워 굴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기개를 기리고 가르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요. 이미 연고를 찾아 동상이 세워진 애국지사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까지 미처 챙겨 드리지 못한 지사들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내 고장 의인들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민족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3·1절이나 8·15 광복절이라면 목숨을 걸고 일제와 싸워 나라를 되찾아 준 애국선열들을 기념하는 일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폭풍 노도, 격랑과 같은 분노와 갈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끝없는 분노 속에 갈등이 일고, 내 편 네 편이 갈립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망령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소위 글로벌시대 세계를 향해 도전해야 할 이 시기에 미래를 위한 큰 그림은 그리지 못하고 오로지 코앞의 작은 이권과 분풀이로 나라를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끝내 좌절하고 망하고 당해온 역사를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문화혁명과도 같은 이 퇴행의 살풀이 바람이 물러가고 미래를 향한 진정한 혁신의 바람이 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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