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하면 통일 오나? [김영환]


개헌하면 통일 오나?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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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하면 통일 오나?

2018.02.09

동계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 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사용을 보고 통일이 가까워졌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경험이 있는 현정화 대한마사회 탁구팀 감독은 "빙판의 작은 통일도 중요하지만 선수가 먼저다"라고 말했고 1987년 대한항공 858편기를 폭파한 북한 공작원 출신의 김현희 씨는 "한반도기가 평화의 상징이 아니다"라고 워싱턴포스트 신문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이제 언론으로 잘 기능하는 유튜브에서 떠오른 ‘벌레 소년’의 랩송 ‘평창 유감'은 올림픽에도 낙하산이 있냐며 정부의 각종 실책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이 노래를 놓고 전국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남북한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비롯하여 몇 차례 단일팀을 구성한 적이 있었지만 그 후 남북 관계에 어떤 질적인 개선을 가져왔는가는 의문입니다. 장 웅 북한 IOC 위원의 말대로 스포츠는 정치 밑에 있나 봅니다. 단일팀을 만들고 응원단이 와도 남북 관계의 해빙은 그때뿐, 경직된 정체(正體)가 곧 드러납니다.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북한 김정은이 친동생으로 실세라는 김여정을 평창에 보내지만 북핵을 해결할 활로가 트이지 않는다면 역시 이벤트에 머물 것입니다. 오히려 항공기, 선박, 사람의 국제 제재에 예외의 구멍만 뚫어놓은 모양이 됩니다. 

올림픽에 즈음해 한미동맹은 연례 군사훈련도 연기했는데 북한은 올림픽 개막 전야에 수만 명이 참가한 열병식을 했습니다. 올림픽의 축제 곁에 군국적, 호전적 모드가 엄존하는 것이죠. 통일부 장관 조명균이 열병식을 두둔하자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은 국회에서 "대한민국 장관이냐, 북한 대변인이냐"라고 따졌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술 더 떠서“김정은이 아버지, 할아버지 못지않은 업적을 쌓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행사인데, 그걸 평창 올림픽에 재 뿌리려는 것으로 몰아붙여선 안 된다”라고 비호했습니다. 평화 올림픽이 북한군 무력시위와 어울리는지 물어봅시다. 방한하는 아베 일본 총리는 평창 패럴림픽이 끝난 뒤의 조속한 한미 군사훈련 재개를 요구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미국은 평창 올림픽을 통한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지만 비핵화의 진전은 이룰 수 없다고 비관합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북한에 압박과 제재를 강화한다는 것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복안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의회의 국정연설 자리에, 식량으로 바꾸려고 화물차에서 석탄을 훔치려다 다리가 잘린 탈북자 지성호 씨와 북한에서 혼수상태로 풀려나 사망한 오토 웜비어 씨의 부모를 소개했죠. 또 탈북자 8명을 대통령 집무실로 초청해 격의 없이 북한 정세에 관하여 대화하는 모습을 백악관이 한글 자막까지 붙여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지씨를 대통령과 동급의 의자에 나란히 앉혔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대통령 특사 홍석현을 뒷줄에 세워 보좌진처럼 사진 찍게 한 것과 딴판입니다. 탈북자의 존중과 부각은 반인류적 정권임을 적시하여 다음 단계로 나가려는 절차로 보입니다. 북한의 대남 유화 공세를 경계하며 북한의 근원적 문제를 중시하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 정부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탈북자와 만난 일이 있느냐 따졌습니다. 통일부는 부인했지만 고위 탈북자인 태영호 전 영국 주재 공사는 올림픽 기간 중 공개 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보도되니 기막힌 일입니다. 

최근 백악관은 주한 미국대사로 빅터 차 지명을 철회했죠. 물망에 올랐을 때 한국의 우익도 선호했고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까지 받았다는 설이 있었지만 부족했나 봅니다. 그의 지명 철회는 대북 군사적 옵션에 대한 이견 때문에 미 정부를 대표할 수 없다는 트럼프의 강고한 대북정책 기조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직접적 위협으로 등장한 북 핵무기의 해결을 강제하기 위해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개헌 공방을 시작했습니다. 그 개헌은 통일에도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목표가 불투명한 개헌을 의회의 소수파 정권이 무엇엔가에 쫒기는 듯한‘적폐 청산’처럼 할 수는 없죠. 특검은 작년에 240조 원의 매출을 올린 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을 대표적 적폐라는 정경유착의 굴레를 씌워 엮으려고 했지만 고등법원은 대부분 혐의를 무죄 판결함으로써 참패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문 정부는 능력 이상으로 너무 많이 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개헌이 사회주의 헌법을 만들고 소위‘지방정부’라는 분권으로 중앙정부를 무력화하여 1국 2 체제의 남북연방제를 목표로 삼은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개헌론의 출발점이었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는 논의는 실종됐죠. 4년 중임제를 내걸어 1987년 민주화 헌법의 최대 공적인 단임제마저 부정해 5년간의 제왕적 대통령을 8년간으로 늘리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으로 간첩들에게 비단길을 깔아주고 헌법에서 국군의 국가안보 의무까지 삭제하려 합니다. 개헌 반대 세력은 3·1절에 대대적인 개헌 반대 시위를 전개할 예정입니다.

통일을 염두에 둔 개헌이라면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의 의사입니다. 그들이 어떤 체제를 원하는지는 3만 1,000여 명의 탈북자들이 자유 대한민국을 선택함으로써 증명되었습니다. 6·25전쟁 때 월남한 150만 명의 동포들도 마찬가지죠. 그런데도 남한의 정부와 여당은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진정한 선거를 누리지 못하는 북한 주민이 자유로이 의사를 결집하여 체제를 선택할 날을 기다리지 못한 채 ‘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통일’이라는 둥 헌법에서‘자유’를 삭제하려는 혼란스런 태도로 영구적인 북한 세습 독재체제에 면죄부를 주려는 꼴이 아닌지 우려됩니다. 버려야 할 것을 움켜쥐려는 통일 논의는 무의미하죠.

우리들은 분단 고착적인 행위를 중단하고 자유의 바람을 더 불어넣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헌법 정신입니다. 이산가족 상봉보다 탈북자 북송 중지, 서신 교환, 친척 상호 방문, 남한 방송 청취 허용 등 북한 인권 문제에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왜 당당하게, 돈도 안 드는, 사람다운 삶의 추구를 허용하라고 요구하지 못합니까? 언제까지 쌍팔년도 식의 눈물바다를 이루는 상봉 이벤트에나 기댈 것인가요? 

북한 주민들이 미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하고 그날이 빨리 오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 용기가 없는, 개헌을 빙자한 통일 논의는 미봉책이고 현상 고수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로 1990년 3월에 실시한 동독 최초, 최후의 자유 총선거에서 구성된 동독 국회가 서독에 통합될 것을 결의하여 자유민주주의로 흡수, 통일되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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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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