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걸어 세배 가는 날 [한만수]


눈길을 걸어 세배 가는 날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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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걸어 세배 가는 날

2018.02.08

며칠만 있으면 우리 민족의 명절 설입니다. 설날은 ‘선날’ 즉 개시한다는 뜻의 ‘선다’ 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해설할 수 있습니다.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고 합니다.

설날은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섦다’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설날을 한자어로 삼갈 신(愼)자를 써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인데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 완전한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설날에는 집안의 곡식을 밖으로 내면 한 해 동안 재물이 샌다고 하여 조심했고, 부엌의 재를 치우면 불(火)로 상징되는 밝은 기운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날만큼은 재를 치우지 말아야 한다. 설날에 바느질을 하면 낡은 물건을 수선한다는 의미에서 궁핍한 살림을 산다는 말에 피해야 한다. 남자는 상가(喪家)에 가서는 안 되는데, 죽음이 전염된다고 믿는 등 금기시하는 일이 많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우리 고유의 민속절인 ‘설날’을 기다리기보다는 ‘연휴’라는 점을 앞세워 기다리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음력으로 새해 첫날 가족끼리 모여서 차례를 지내고,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살다 보니 만나지 못했던 친척을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는 생각보다는 어디로 여행을 가느냐가 더 관심사입니다. 

예전에는 설날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동차가 귀한 시절이라서 어떤 방법으로 귀성 기차표를 사느냐부터 시작해서, 고향에 내려갈 때 선물은 무엇을 구입하느냐, 친척 어르신들이나, 동네 어르신들한테는 언제 세배를 다닐지 계획을 하며 설날을 기다렸습니다. 

제가 현재 사는 곳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입니다. 예전에는 작은 설이 되면 서울이며 부산에 터를 잡고 살던 자식이며 형제들이 친척들이 일찌감치 귀향합니다. 이집 저집 인사를 다니느라, 친구를 만나 반가움을 풀어내느라 동네가 들썩일 정도였습니다. 요즈음은 골목 여기저기 안 보이던 승용차만 주차되어 있을 뿐 평소보다 더 조용합니다.

설 분위기도 사뭇 다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면 아버지께서 세배를 드리러 갈 곳을 일일이 알려주시는 것으로 하루 일정이 시작됩니다. 일가친척은 당연히 세배를 드리는 분들이지만, 아버지 친구분이며, 동네에서 어른 대접을 받는 나이 드신 어르신에게도 반드시 세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눈이라도 발목이 빠질 정도로 내린 날이면 고무신 안으로 눈이 들어옵니다. 젖은 양말을 신고 세배를 할 수 없으니까 집으로 가서 아랫목이나 화롯불에 양말을 말려 신습니다. 양말이 마르는 동안 얼었던 발도 따뜻해지면 다시 세배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세배를 하러 다니다 보면 설빔을 입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는 초등학교도 교복이 있던 시절이라서 웬만큼 사는 집이 아니고는 광목을 검게 염색해서 만든 교복이 유일한 설빔이었습니다. 

친구들하고 같이 세배를 다니면 훨씬 덜 부끄러워서 좋습니다. 어른들께 세배를 하고 나면 요즘처럼 새뱃돈을 주시는 경우는 드뭅니다. 집에서 만든 강정이나 과일 떡 같은 것을 접시에 담아서 내놓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당이 깊은 우물이 있는 부잣집에는 하얀 턱수염이 긴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그 집 어르신께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세배를 드리는 어르신이라 설날이면 그 집은 잔칫날처럼 붐볐습니다. 어르신은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셨습니다. 해마다 새뱃돈을 준비해 놓으셨다가, 세배를 하고 나면 덕담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의 부모님들께도 세배하러 다녔습니다. 머리가 좀 컸다고 정종이며 막걸리상을 차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머리를 깎은 고등학생인데도 옛날 같았으면 장가갈 나이라며 손수 술잔을 채워주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얼굴을 붉히며 돌아앉아서 조심스럽게 술잔을 비웠습니다. 
술이 술을 마신다고, 몇 잔 얻어 마시고 나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본격적인 술 파티를 합니다. 취기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길을 걷다가 어른들을 만나면 학생이 술을 마셨다고 혼을 내시기보다는 “설날이라고 한잔했구나?” 라며 껄껄 웃으시기 일쑤입니다.

요즘처럼 노래방이 있는 시절도 아니고, 게임이 흔하지도 않은 시절이라 술 취한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정월이라서 방문 밖에는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거나, 밤바람이 아우성을 치고 있어도 대화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밤이 이슥해지고 마당 구석에 있는 거름자리에 오줌을 갈길 때 얼굴을 때리는 겨울바람이 제법 맵기 시작하면 배가 출출 합니다. 사정에 따라서 누구는 떡을 가져오고, 누구는 과일이며 강정을, 또 누구는 정종 병을 들고 와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문화와 풍습은 시대적 환경에 적응합니다. 우리의 설 문화도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옛 정취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명절에는 빚을 내서라도 고향에 내려가서 조상에게 성묘를 해야 한다는 문화였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의 젊은 세대들이 나보다는 가정을 먼저 생각했다면, 요즘은 가정보다는 나를 먼저 앞장세웁니다. 그러다 보니 취직을 못했거나, 결혼 적령기를 넘겨 버린 젊은이들 중에는 쓸쓸한 설을 보내고 계실 부모님을 배려하지 않고 귀향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지간에도 경기가 안 좋다는 이유를 들어서, 몸 컨디션이 안 좋다는 걸 앞세워 차례 지내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가 밀린다거나, 기차표를 예매하기 힘들다는 점을 앞세워 늙은 부모님을 도시로 올라오시게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부모님이 도시로 역귀성하시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치더라도, 조상의 묘까지 등에 지고 갈 수는 없을 겁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노동능력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 언제든지 사정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가신 부모님은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다시는 오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귀성길이 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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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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