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直線)과 칼(刀)’을 생각하며 [이성낙]


‘직선(直線)과 칼(刀)’을 생각하며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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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直線)과 칼(刀)’을 생각하며

2018.01.30

제목을 보고 이미 짐작하셨겠지만,‘직선과 칼’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 Benedict, 1887~1948)가 1946년 출간해 세상을 놀라게 한 책 제목 《국화(菊花)와 칼(刀)(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본래 인류학이 주된 연구 분야이지만 문화라는 측면 역시 중시했기 때문에 문화인류학자(culture anthropologist)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게도 베네딕트가 자신의 책에서 일본 문화의 특징이라 주장했던 내용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우리는 일본 초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한국, 중국, 일본의 초상화는 큰 차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특히 물리적 요소인 초상화의 바탕, 즉 명주인 견본(絹本)에 그림을 그리고, 형태적인 기본 틀이‘족자(簇子)’라는 점은 한중일 초상화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그러나 초상화를‘내용’이라는 측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다름’의 정도가 가히 당혹스러울 따름입니다.

먼저 세 나라 초상화의 특징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의 초상화는 권위적이고 화려합니다. 한마디로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반면 조선 초상화는 상대적이긴 하지만 검소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어찌 보면 거북스러울 수 있는 피부 병변(病變)을 거리낌 없이 그려내 솔직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초상화에서는 얼핏 특유의 권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피사체의 의상(衣裳)은 비교적 단색으로 처리해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피사체가 몸에 걸친 옷, 즉 하오리(羽織)의 어깨선에서는 특유의‘직선과 각(角)의 미(美)’를 과시합니다. 이는 조선 초상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일본 고유의‘문화 코드’입니다. 

일본 문화에서‘직선의 미’는 일본 건축물의 지붕선(Roof line)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일본 건축은 아주 규격화된 직선과 각(角)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반면 우리 전통 건축의 지붕선이나 초상화의 의상에서는 직선이나 각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일본의‘직선’과 우리의‘곡선(曲線)’이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료사진)

일본 초상화에 칼(刀)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우리나라 초상화와 비교할 때 분명한 차이점입니다. 일본 초상화는 고승(高僧)의 초상화를 제외하고 피사체가 칼자루를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가 하면, 어떤 초상화에서는 두 개의 단도(短刀)를 허리띠(帶)에 꽂은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손에 칼 대신 활(弓)을 움켜쥐고 있기도 합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참으로 절묘한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대목입니다. 

반면 조선의 초상화에서는 힘(武)의 상징인 칼이나 활이‘직접’ 등장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피사체가 입은 관복(官服)에 문관에게는 문(文)을 상징하는 흰 두루미(白鶴), 무관에게 힘(武)를 상징하는 호랑이(虎)가 새겨진 흉배(胸背)로 간접적으로 표현했지 칼이나 활로 권위와 권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조선 초상화에서 일관되게 볼 수 있는‘곡선의 미’는‘자연 순응성’에서 비롯되고, 일본이 추구하는‘직선의 미’는‘인공성(人工性)’에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는 직선이 갖는 非미학적 의미를 아주 드라마틱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요컨대 그는 이 우주에“직선(直線)은 없다”며 직선에 잠재된‘인위성’을 자신의 미술 세계에서 철저하게 배격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다에서 바라보는 수평선도 얼핏 직선처럼 보이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걸 감안하면 결코 직선이 아니이기에 그의 주장에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전 세계 디자이너들의 대부 루이지 콜라니(Luigi Colani, 독일, 1928~ )도 얼마 전“자연은 각(角)을 만들지 않으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조선일보, 2017. 12. 11).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의 문화적 정서에는 분명‘직선과 칼의 미‘라는 코드처럼‘절제미와 깔끔함의 공식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코드가 있고, 이와 더불어‘인위’와‘인공성’도 내재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 문화에는‘자연에 순응하며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가운데‘자유분방함’이라는 정서가 있습니다. 

이처럼‘한국과 일본’,‘일본과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이웃하고 있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적·정서적 코드를 갖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요즈음의 상황을 보면서 두 나라가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 절실해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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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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