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부총리의 격화소양(隔靴搔痒)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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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부총리의 격화소양(隔靴搔痒)

2018.01.18

2018년도 대학입시가 끝났습니다. 이번 입시는 포항 지역의 지진으로 수능이 한 주 연기되면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중에 수능을 두 번 보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김상곤 부총리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초∙중∙고 12년 공부를 단 하루에 평가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사려 깊은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사의 댓글은 필자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입시 정책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김 부총리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저런 사람이 교육부 수장이라고, 수시와 학종(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80% 선발하고, 정시는 20% 선발하면서 수능평가는 2번 치자고? 지X이다. 수능 2번 치면 정시로 80% 뽑는 것이냐? 수시나 학종을 폐지하라. 

불공정과 빈부격차에 따른 학력세습이 확연한 현 체제가 좋다고? 그게 선진국이라고? 그냥 학력고사 부활시켜라.

정유라, 장시호도 돈 많은 집 애들이 좋은 학교 갈 수 있도록 만든 현 입시제도의 대표적인 케이스지. 수시 없애고 내신 없애고 논술 없애라. 뭐 머시기머시기 전형 죄다 없애라. 100% 수능만 가지고 평가하고 수능시험 어렵게 내라. 그리고 점수 순으로 줄 세워라. 많은 문제점이 있겠지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공평한 입시제도가 될 것이다.

입시를 단순화하라고 이 멍청한 양반아.

다소 표현이 과격한 부분을 필자가 완화하여 옮겼지만, 대한민국의 대학입시와 관련해 대중들이 바라는 바는 1년에 수능을 두 번 보게 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표현의 강도로 추정해보건대, 입시정책에 대한 피로도가 한계치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입시의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주요 대학의 교수들이 중·고등학생 자녀를 자신의 연구에 참여시키고 논문 공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례가 한 달 전쯤 보도되었습니다. 교수들이 발표한 논문이라 당연히 과학기술논문색인(SCI)급이나 영향력이 최상위급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많았고, 이중에는 국비 지원까지 받은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학생이 우수해서 그런 영광을 누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면 자기 아버지가 아닌 다른 교수의 논문에 공저자가 되면 됐지, 굳이 오해의 소지가 생기게 아버지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SCI급 논문은 고등학생이 학업과 병행하면서 쓸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논문을 썼다고 하면 대학 입시 전형에서 매우 주목받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자식을 자기 논문의 공저자로 등재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이런 교수들이 자신의 아들을 전국체전에 출전시키려고 아들과 맞붙은 다른 제자를 일부러 기권시켰다는 서울의 한 체육 교사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입니다. 참고로 그 체육 교사는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더 웃기는 일은 이 문제가 공론화되자 교육부에서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 ‘자녀 논문 저자 끼워넣기’ 실태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입니다. 어느 대학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겠습니까?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학부모들이 어차피 수시전형은‘지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마음속에 패배감과 분노를 켜켜이 쌓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분노가 노출된 것이 위에 보는 댓글입니다. 

만약에 학종을 유지하고 싶으면, 이런 개운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쾌도난마를 보여 줘야 합니다. 부정이 저질러졌을 땐, 단호하게 사실을 확인한 후, 교수 자녀가 제대로 된 공저자가 맞다면 미래를 이끌 인재로 더 큰 인센티브를 주고, 제 자식 스펙을 만들기 위해 양심을 판 것이라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전문가로 구성된 공청회를 열어서 정말로 교수의 자녀가 공저자의 자격이 있는지 논의하고 심도 있는 심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치의 의혹도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늘 교수,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등등의 엘리트들에게 관대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도 소리소문 없이 사그라질 것 같다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시중에 떠도는 얘기가 있습니다. 의사들이 동아리를 만들어서 자기 자녀들을 가입하게 한 후, 특정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오게 한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학생부에 기재해서, ‘어디어디에 의료봉사를 다녀온 학생’은 의사들 자녀라는 표식을 만들어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식이 의대 입시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게 만든다는 얘깁니다. 사실관계가 전혀 확인이 되지 않은 이야기인데 이런 얘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공감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비슷한 성적의 학생끼리 경쟁해서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집니다. 게다가 가끔은 성적이 약간 더 좋은 학생이 낙방을 하기도 합니다. 공정한 사회라면 ‘다 떨어질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됐다’라고 수긍을 할 테지만, 우리 사회가 한 번이라도 공정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강원랜드와 우리은행의 취업부정으로 이미 사회 지도층의 비리에 진저리가 났는데 숨돌릴 틈도 없이 코레일 임직원 자녀들의 특혜 채용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필기 시험에서 가장 낮은 D등급을 받고도 서류 전형에서 전체 4등, 면접에서 6등을 받아 합격을 했다고 합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도 가수 정용화 씨가 입시부정으로 실검 1위에 올랐습니다. 경희대학교 박사과정에 면접도 보지 않고 합격했다는 장본인이 바로 정용화 씨였습니다. 이제는 면접도 생략하는 시대가 열렸나 봅니다.

유태인 학살에 가담했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그저 묵묵히 수행했을 뿐이며 자신에게 봉급이 주어지는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할까 봐 오히려 걱정을 했다는 겁니다. 그가 한 일은 유태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단 한 번 만이라도 주위를 돌아봤더라면, 단 한 번 만이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중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그를 관찰하고 난 후 발표한 ‘악의 평범성’에 따르면 거악(巨惡)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자기 자식을 논문의 공저자로 넣은 대학교수와 자식을 위해 다른 제자의 경기를 기권시킨 체육교사, 부정한 방법으로 자식을 합격시킨 코레일 임직원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했던 정용화 씨 모두, 사실은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 좇아서 저지른 행위가 우리 사회에 수없이 쌓이고 쌓여 불신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었고 ‘헬조선’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줬습니다. 여기에 시민사회를 이끄는 주체로서 개개인의 올바른 의식적 성숙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유혹적인 시스템을 만든 것이 못된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대입제도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면, 학종은 개발에 편자를 끼운 것과 같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기성세대가 너무나 성급하게 도입한 선진 입시제도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다시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가기에도 너무 멀리 왔다는 것입니다. 교육부총리가 수험생들에게 측은지심이 들어서든, 교육적 소신에서든 수능 시험 2회로 늘리겠다는 얘기를 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격화소양(隔靴搔痒) 꼴이 되어 사람들의 뭇매만 맞은 형국이 됐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빛깔만 좋은 정책을 만들기보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차근차근 끌어올리는 데에 교육적으로 더 치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포인세티아 (대극과) Euphorbia pulcherrima


부탄왕국,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입니다.

장엄한 히말라야산맥의 동쪽 끝자락,
수 세기에 걸쳐 다른 세계와 동떨어져 살아온 불교국가,
전통적인 모계사회이며 남자가 스커트를 입고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매운 고추 맛을 즐기며
유일하게 담배 판매와 흡연을 금지한 나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겨울에도 맨발이나 슬리퍼만 신고 다닙니다.
   
티베트와의 국경지대에는 해발 7,000m급의 높은 산이 솟아 있고
국토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0m 이상인 산악지대의 나라,
국가의 유일한 공항인 파로(Paro) 공항이 국제공항임에도
오직 부탄의 항공기, 드룩 에어(Druk Air)만이 들고나는 나라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800달러(2016년 기준), 평균수명 69세(2015년 UN), 
성인 문맹률 47%, 영아 사망률 32%인 나라(unisef 2012 기준)
‘세계 행복보고서 2017’에 따르면 세계 순위 97위의 국가이지만,
어디서, 언제부터 연유한 것인지,
국민 행복지수 1위의 나라로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진 나라,
국내선 항공편도 없고, 헬기도 없고, 철로도 전혀 없는 나라.
거리마다 곳곳에 떠돌이 개가 판을 치지만 
사람을 향해 짖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나라,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는 부탄왕국입니다.
   
통계 숫자로 이해할 수 없는 베일에 싸인 나라,
오랫동안 세상과 격리된 은둔의 나라에서
뜻하지 않게 멕시코가 원산인 포인세티아 군락지를 만났습니다. 
가지 끝에 펼쳐진 포인세티아의 빨간 이파리가 
노랗고 빨간 바탕에 하얀 용이 비상하는 부탄왕국의 국기처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듯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세계와 교류가 없이 독자적 생활을 꾸려왔던 땅에
지구 반대편 머나먼 땅의 멕시코 원산인 포인세티아가
도로변과 마을 안 집집의 울타리에 한두 군데가 아니라 곳곳에 
즐비하게 늘어서서 고목이 된 채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포인세티아는 우리나라에서는 날씨가 추워 크게 자라지도 못하고
온실에서 관상용 화분으로 기르지만,
원산지인 아열대 지역에서는 최대 3~5m까지 자라는 상록성 떨기나무입니다.
잎은 어긋 나며, 넓은 피침형이고 끝은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매끈합니다. 
   
열대 관목으로서 해 길이가 짧아지고 온도가 내려가면 포엽이 빨갛게 변합니다.
줄기와 가지 끝의 잎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 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해 길이가 짧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포엽이 빨갛게 변하는 특성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장식화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꽃말은 ‘축복합니다’, ‘축하합니다,’라고 합니다. 
  
(2018. 1. 4. 부탄왕국의 푸나카에서)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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