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동’과 ‘문주반생기’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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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동’과 ‘문주반생기’

2018.01.17

자칭 ‘국보’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1903~1977)의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는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1897~1961)의 ‘명정(酩酊)40년’과 함께 젊어서부터 즐겨 읽던 책입니다. 술과 흥과 희대의 실수가 어우러진 두 분의 책은 해학과 풍류로 멋지게 진설(陳設)한 한바탕 글 잔칫상입니다. 

그중에서도 무애의 글은 한학을 바탕으로 한 고풍스러운 말투로 인해 읽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책을 처음 접한 대학시절 이후 지금까지도 출전과 의미를 모르는 성구와 한시가 있고, 무애가 친구와 주고받은 선시(禪詩)는 물론 일상적 용어도 주석과 풀이가 없어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인데도 뜻을 모를 것도 있습니다. 무애가 빌려온 당시(唐詩)의 표현대로 물환성이(物換星移),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흐른 탓이겠지요. 

가령 무애가 즐겨 쓴 ‘깃동’은 무슨 말일까? 명사라면 ‘저고리나 웃옷의 목둘레에 둘러대는 다른 색동’이지만 무애의 깃동은 어디까지나 부사입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에 나옵니다(‘문주반생기’ 외의 다른 글에 나온 것 포함). 

①내가 깃동 마산 수재에게 一步(일보)를 사양할 리가 없다.
②깃동 구구한 개인적인 ‘구걸’이나 허허실실의 육영 장학금은 운동해 무엇하리?
③깃동 중국식 관념의 ‘효도’란 구구한 형식적, 윤리적 생각에서 이르는 것이 아니다. 
④또 깃동 ‘가르치는 취미와 열성’ 쯤은 該書(해서, 그 책)에...언급이 없으니 
⑤아내의 무사 귀환만이 나의 전적인 소망이었고 깃동 서권쯤의 애완물, 한껏 귀중한 문화재야 안중에 차라리 원망스럽던, 시들풍한 ‘물건’이었다. 

무애의 글에서 맨 처음 만난 ①의 깃동은 노산 이은상과의 기억력 겨루기에 나오는데, 사전에 없기에 대충 짐작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나머지 깃동도 알아보지 않고 40년 넘게 살다가 ‘()최측의농간’이라는 출판사가 최근 새로 편집 발간한 ‘문주반생기’를 읽으면서 여러 용례를 살핀 끝에 드디어 의미를 터득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고작, 그까짓’ 이런 뜻이었습니다. 40여 년 만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을 한 셈이니 그동안 얼마나 언어에 무관심하고 불성실했는지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이번에‘문주반생기’를 새로 낸 출판사‘()최측의농간’은 이름이 하도 이상망측해 물어보니 나중에 주식회사가 됐을 때 괄호 안에 (주)를 넣어 ‘주최측의농간’으로 회사명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출판이 장난인가, 왜 이런 이름을 지었지’싶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더 짙어졌습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은‘책이나 글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는 뜻으로 무애가 즐겨 쓰던 숙어입니다. 그런데 ‘최측의농간’은‘독서백편의자견’이라고 독음을 붙였습니다. 그런 게 많았습니다. 오호(嗚呼)를 명호(鳴呼)라고 하고, 인몰(湮沒)을 연몰(煙沒)이라고 하고, 저 유명한 소동파‘적벽부(赤壁賦)’의 첫머리 임술지추(壬戌之秋)를 임수지추라고 잘못 읽고, 도화(圖畵)를 도서(圖書)로 바꾸어 놓고,‘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친구 석광원(石廣元)을 우광원이라고 표기했습니다. 

문장에서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거나 자기 본위로 해석하여 쓴다는 뜻인 단장취의(斷章取義)를 ‘짧은 토막글의 뜻을 취함’이라고 풀이한 걸 보면 短章으로 잘못 안 것 같습니다. 또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를 반소식음수라고 하고, 이두문(吏讀文)을 사독문(史讀文)이라고 썼을 정도이니 한문과 동양 고전에 대한 기초 교양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자전도 찾아보지 않은 채 책을 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한문이나 한자는 그렇다 치고 우리말 토씨를 틀리거나 글자를 빠뜨린 곳도 허다했습니다. 

거의 페이지마다 잘못된 게 있어 200건(전체 건수가 아니라 페이지 수 기준)도 넘는 오류, 오탈자를 메일로 알려주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도 전문학자의 충실한 주해에 의한 정본의 성립을 목표로 한 게 아니며 '최측의농간’구성원들이 이 책의 초판을 함께 독해한 과정을 기록한 걸로 이해해달라는 답장(실은 다 머리말에 쓴 내용)이 왔습니다. '문주반생기’라는 책과 양주동이라는 학자를 전혀 몰랐던 자신들과 같은 젊은 세대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출간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갈파했던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출판은 연습이 아니며 경험 쌓기도 아닙니다. 이 출판사의 대표는 “원고의 맛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한자를 한글로 바꾸거나 병기, 초판에 없던 1,996개의 각주를 보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 “자전과 사전을 비롯해 참고도서 수백 권과 인터넷 아카이브를 뒤져 가며 꼼꼼히 해독하느라 품과 시간이 들었던 것. 그런 노력은 이번 책에 달린 1,996개 각주가 증명한다.”고 보도한 신문도 있던데, 책을 조금만 찬찬히 살펴봤더라면 이런 칭찬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出陳(출진)은 물품을 내놓아 진열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걸 出陣으로 잘못 보고‘싸움터로 나아감’이라고 각주를 달았는데도 자전과 사전을 뒤져 꼼꼼히 해독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문주반생기’ 초판은 1960년에 나왔습니다. 그때도 무애의 글을 다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지금처럼 거의 삼국시대 문서로 받아들이는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불과 반세기 조금 더 지난 시대의 글인데도 이렇게 불통이 될 정도로 어문생활은 변해왔고, 어문교육의 전통이 단절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사회 전반의 지식량이 감퇴되거나 왜소해진다는 우려와 함께,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됐습니다. 지식의 축적과 전승에 기여해야 할 출판의 엄정함과 진지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가벼워지는 경향도 걱정하게 됐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무애가 남긴 것과 같은 금세기의 고전을 또래들과 함께 읽고 싶다는 '발원(發願)'을 현실화할 만한 어문실력이 없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할아버지-아버지세대, 조금 내려와 형님세대의 어문전통은 이미 단절돼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오로지 그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이 안타깝고 출판사의 실명을 밝힌 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끝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쨌든 틀리면 안 됩니다. 장 피에르 세르(92)라는 프랑스 수학자는“명백하게 틀린 말을 듣거나 보면 그것이 강연이든 책에 적혀 있는 것이든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실제로 몸이 아플 정도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 수학자를 닮아가는지 틀린 것 때문에 자꾸 몸이 아프려 하고 병색(病色)이 짙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게스트칼럼 / 이선영

도돌이표를 붙이지 말아야 할 일


얼마 전 연령대가 비슷한 동료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젊은 시절로,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가 서로의 질문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답은 망설임 없이 같았는데, 굳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추가로 동의한 내용은 다시 젊어지기를 바라기보다 지금 현재의 상태에서 더 늙지만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은 물론 서글프고 씁쓸한 일입니다. 그것은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이미 충분히 많다는 뜻이고, 무언가 일을 새롭게 벌이기에는 평균적으로 늦은 시점이라는 뜻이고, 그렇기에 운신의 폭이 좁다는 뜻이고, ‘어려 보인다’고 듣던 말이 ‘젊어 보인다’로 바뀌는 지점이라는 뜻이고,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에게서 "왜 이렇게 늙었어?"라는 얼추 질문 형식을 취한 경악의 소리를 듣는다는 뜻입니다(예의상 면전에 대놓고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생각하지만, 대놓고 이런 말을 던지는 사람도 실제로 있습니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은 또한 숨길 수도, 감춰지지도 않는 일이기에 서글프고 씁쓸한 일입니다. 간밤에 늦게까지 잠을 설치고 겨우 일어난 일을 안색은 숨겨 주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말다툼을 한 뒤 나섰거나 시도했던 일이 좋지 않은 결과로 나왔을 때의 우울함을 표정이나 분위기는 감춰 주지 않습니다. 관리되지 않은 피부와 매무새, 웰빙이 아닌 식생활과 영양, 품격 있지 않은 차와 아파트와 치장소품은 늙음을 품격 있게 가려 주지 않습니다. 나이에 걸맞은 소셜 포지션의 부재와 해외여행 목록의 황량함, 화려하지 못한 자녀의 이력 등은 늙음을 안락한 연착륙으로 유도해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젊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록에서 말끔히 삭제하고 싶은 무수하게 많은 낮과 밤, 선택과 결단, 남자와 여자, 말말말과 글, 그리고 치기 어린 수많은 ‘나’들이 있던 생의 장면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셋하고 싶지만, 아마 리셋해도 똑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 실행하리라는 이 ‘불길한’ 예감이 맞다면 젊음의 생방송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다시 그 꼴불견의 진통 아닌 진통을 맛보고 싶지 않습니다. 늙은 스크루지도 한 번 울고 참회한 것을 두 번 울어야 한단 말인가요….

그럼에도 털어놓자면, 다시 돌아가 되돌리고 싶은 구석이 한 군데 있기는 합니다. 거기는 딸아이의 유년시절이 있던 공간이기도 하고 아들내미의 유년이 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딸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이웃집 아주머니와 할머니, 그리고는 시댁이 있는 시골에 가서 1년, ‘귀경’한 뒤에도 다시 5년 정도를 외할머니와 함께 자랐습니다. 둘째인 아들내미도 일찌감치 낙향한 바람에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떨어져 살았습니다. 

임산부였기는 했지만 채 ‘엄마’는 아니었고, 엄마였지만 한동안 엄마 노릇을 하지 못했으며, 엄마라는 자각이 둔탁해짐과 함께 엄마로서의 기능도 퇴화되어 갔습니다. 수도권과 지방으로 제각각 흩어져 있던 아이들을 겨우 모아 같이 살게 됐을 때에도 아이들을 빨리 재우고 제 일부터 처리하는 것이 삶이자 생활이었습니다. 아이들과의 정서적 교감이나 밀착감, 이런 것은 그 후로도 내내 아쉽고 쓰린 부분입니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흉악한 아동범죄가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의 다섯 살 고준희 양 죽음도 그렇고, 엄마의 실화가 원인으로 밝혀진 3남매의 죽음도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어린이들이 학대와 방치 속에 죽어갔으며 영아 유기 사건도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그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된다고 해서, 부모가 된다고 해서 모두가 다 저절로 생리학적인 엄마 이상이 되고 부모 이상이 되는 걸까요? 그저 한때의 임산부로, 아기의 생리학적인 친부로 경험과 기능만 남기는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모가 되는 것에도, 엄마가 되는 것에도 마음의 각오와 사전의 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될 준비, 엄마가 될 준비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세상에는 임산부가 되면 바로 엄마가 되는 것이라는 인식들이 많은 듯합니다. 모태가 되는 당사자인 여성들 가운데도 그러하고, 그러한 여성들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인식 가운데도 그러합니다. 저 역시 한동안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엄마라는 자의식과 책임감과 모성의 심각성을 실로 ‘심각하게’ 자각하게 된 것은 출산 이후로도 오랜 뒤의 일입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사건을 보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 가해자를 배양하지 않는 사회, 부모와 어른이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 고로, 영화 <박하사탕> 속 주인공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 외치고 싶은 유일한 때가 있다면 바로 아이들의 유년기입니다. 낙제점수였던 수학 시험지나, 실패했던 연애나, 시도조차 못해 본 배우의 꿈이나, 별 볼 일 없는 시인의 자괴감이나, 심지어 ‘무다리’와 굵은 팔뚝도 되돌릴 수 없으면 그만입니다. 구태여 수고롭게 되돌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거는 그냥 저 혼자만의 문제이고, 비극이어도 저 혼자만의 비극이며 저 혼자만의 불행입니다. 저 혼자 죽고 저 혼자 망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저 혼자만의 영역을 넘어서는 삶의 영역입니다. 저 혼자만으로 간단히 끝나지 않습니다. 그때로 돌아가서 엄마인 저를 교정하고 수정한다면, 거기로부터 파생된 우리 아이들과의 지금 현재의 삶의 무늬들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필자소개

이선영

196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0년 월간 <현대시학> 통해 등단. 시집 『오, 가엾은 비눗갑들』,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평범에 바치다』, 『일찍 늙으매 꽃꿈』, 『포도알이 남기는 미래』, 『하우부리 쇠똥구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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