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항식(恒式)으로 삼읍시다 [신현덕]


www.freecolumn.co.kr

이제는 항식(恒式)으로 삼읍시다

2018.01.16

지난 주말 차를 몰고 길을 나섰습니다. 서울 종암 사거리에서 고려대학교 방향으로 들어섰습니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추위가 매서워서인지는 몰라도 왕복 8차로의 넓은 길에는 자동차가 별로 없었습니다. 2차로에서 여유롭게 운전했습니다. 뒤쪽에서 구급차의 경보음이 작게 들렸습니다. 실내 거울로 보니 구급차가 경광등을 켠 채 차들을 피해 지그재그로 운전을 하며 달려왔습니다.

바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속도를 낮추고, 옆 차로의 승용차에게 내 앞으로 오라고 신호를 했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운전자는 앞만 보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트럭 운전자가 건널목을 피해 어렵사리 길을 텄습니다. 구급차가 겨우 빠져나갔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뻔뻔한 승용차 운전자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귀찮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순간 많은 국민들이 리본을 달고, 시위하며, 책임을 규명하자던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제천 화재 현장에서 숨진 유족들의 항의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지난 일입니다만 세월호 사건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입니다.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만약 세월호 업무 관련자, 공무원, 지자체, 언론 그리고 그간 세월호를 이용한 수많은 승객 중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안전 문제를 제기했더라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 아쉽습니다.

하기야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면, 엄청 큰 고통을 당했으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관련자라면 공연히 문제를 제기한다고 무리들이 따돌렸거나, 괴롭힘 당했겠지요. 일반 국민이었다면 의견이 묵살되었을 것이고요. 심한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이나 집단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침몰과 제천 화재 같은 대형 참사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해군 YTL함과 서해 훼리호 침몰, 소공동 아케이드와 대연각,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등입니다. 이런 대형 사고가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가도 국민도 같은 유형의 사고를 방지하려는 합의도, 법제정도 없었고, 적극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사건이 재발할 때마다, 서독과 미국의 두 사건을 떠 올립니다. 서독 대학에서 만난 피해 학생과 미국 국민에게 닥칠 수도 있었던 엄청난 불행을 막아낸 한 신참 공무원입니다. 서독의 대학 구내식당에서 팔은 없고 손이 양 어깨에 달린 여학생을 가끔 보았습니다. 그는 남들과 달리 가방을 대각선으로 둘러메고, 양어깨에 달린 작은 손으로 식판을 들고 식탁으로 오갔습니다. 한 번은 그 학생이 여러 명과 둘러 앉아 “제약사와 국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독일 사회가 그들이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조치했고, 재발도 방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약학을 전공하던 후배에게서 임신부가 불면과 입덧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한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의 피해자라고 들었습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7년 서독의 한 제약사가 개발했습니다. 부작용이 알려지기 전, 신비의 묘약처럼 임신으로 힘들어 하는 여성들을 한 순간이나마 고통에서 해방시켰습니다. 하지만 곧 밝혀진 대로 태아의 팔다리를 기형으로 만드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60년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 이 약 판매 허가 여부를 결정할 공무원은 아주 신참이었습니다. 그는 신약의 안정성을 인정할 근거가 없음을 발견하고는 판매 허가를 직권으로 보류했습니다. 그는 제약사에게 보완을 요구했고, 둘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제약사는 그의 일자리를 빼앗겠다고 험한 말까지 하면서 압박했습니다. 그의 상관도 시달렸습니다. 안전을 확인할 근거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동안 1년 반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약의 부작용이 알려졌습니다. 미국에서 탈리도마이드는 결국 시판이 금지되었고, 그가 미국 국민의 건강을 지켰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영웅처럼 치켜세웠습니다.

그는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기가 가진 권한을 충분히 활용했으며,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을 뿐입니다.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원칙대로 일했습니다. 공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근무수칙을 지켰습니다. 이 일로 미국은 FDA의 규칙까지도 바꿨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전례가 조선 내내 있었습니다. 왕들은 어떤 일이 마땅히 개선되어야 하거나, 전례 없는 새로운 일이거나, 더 나은 방법이 알려졌거나,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경우 등에 그 일을 처리하는 정책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신하들은 상고(上考) 협의 토론하여 완벽한 정책을 결정하여 올렸습니다. 왕은 방식이 합리적이며, 국가와 백성을 위한 일일 때 항식(恒式, 늘 따라야 할, 정하여진 형식이나 법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항식은 조선 내내 시행되었습니다. 조선이 5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참 좋은 제도였습니다. 

일제 이후 오늘까지 우리나라에는 모든 분야에 항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가역적입니다. 국가의 안위와 외교, 국민의 생명과 재산, 인권 등과 직결된 것조차도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합니다. 끝없는 토론과 연구, 의견 수렴 등으로 뿌리내린 것과 정말 국가의 장래를 위한 것이라면 항식으로 삼고,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