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후 핵연료 사업 재검토, 사실상 "반쪽짜리 공론화"


사용 후 핵연료 사업 재검토, 사실상 "반쪽짜리 공론화"


파이로프로세싱(건식처리)·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개발사업

계속 여부 결정 공론화 과정 졸속 추진


   사용후핵연료 파이로프로세싱(건식처리)·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개발사업의 계속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 과정이 졸속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론화 취지와는 거리가 먼 정부의 불투명한 진행 방식에 재검토 과정이 사실상 ‘반쪽짜리 공론화’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 고리 1호기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에 따라 지난해 6월 가동 40년 만에 

영구정지됐다. -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10일 이번 사업 재검토에 찬반 패널로 참여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론화의 기본 원칙이라 할 수 있는 검증 과정의 투명한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장 일주일 뒤인 17일 청문회가 예정돼 있지만 시간과 장소는 물론이고 주요 쟁점이나 진행 방식, 참석자 범위 등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사업재검토위원회 위원 중 일부는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향후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식을 결정할 중요한 과정이 충분한 준비 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고독성·장반감기 핵종을 분리해 차세대 원자로(SFR)의 연료로 재처리하는 기술이다.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20분의 1로 줄이고 방사능도 10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탈(脫)원전 시민단체 등은 파이로프로세싱도 원전 운영을 전제로 하는 기술이라며 반발해 왔다. 국회에서도 기술의 실현 가능성, 투자 대비 효용성을 들어 사업 예산을 삭감하는 등 비판이 있었다.




재검토위원회 출범 한 달 지났지만, 공개된 논의 과정은 ‘제로’

지난달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비원자력 분야 이공계 전문가 7인으로 이뤄진 사업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달 말까지 사업 계속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재검토위원회 위원은 한국연구재단이 추천한 전문위원 40명 중 국회의 의견과 찬반 양측의 요구를 고려해 선정됐지만, 최종 7명의 신원은 청탁 방지 등 객관성 담보를 위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양측 패널로부터 찬반 주장에 대한 근거 자료를 제출 받았고, 이달 8일까지 4번의 정기회의를 가졌다. 오는 11일과 12일에는 각각 반대 측과 찬성 측 패널의 의견을 듣는다. 여기서 나오는 내용을 종합해 17일 청문회를 연다는 방침이다.


위원회 출범 당시 과기정통부는 찬반 양측의 서면 검증 과정을 온라인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자료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창선 과기정통부 원자력연구개발과장은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취지가 아니었다”며 “찬반 양측 패널들이 서로 어떤 근거 자료를 제출했는지, 사실 관계가 틀리지는 않은지 내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공유하겠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반대 측 패널 중 한 명인 석광훈 전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패널들조차도 문제 제기를 하기 전까지는 어떤 자료도 받지 못했다”며 “수시로 요청한 끝에 이달 4일이 돼서야 재검토위원회의 질문지에 대한 양측 패널의 답변 자료만 웹하드에 올라왔다”고 말했다. 한 찬성 측 패널 관계자 역시 “위원회 위원들이 누군지도 모르거니와 우리 자료를 보고 어떤 논의를 했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소(수조). 현재까지 누적된 사용후핵연료는 1만5000t에 이른다. -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찬반 양측 모두 공개 검증 원하는데…과기정통부는 ‘비공개 원칙’ 고수

앞서 9일 반대 측 패널 5명 전원은 재검토위원회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주요 요구사항은 △재검토위원회의 인적 구성, 운영 규정, 회의록 등 공개 △11·12일 패널 의견 청취회 및 청문회 대국민 공개 △재검토 기간 연장 등이다. 이들은 “최소한의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번 재검토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찬성측 패널도 공개적인 공론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찬성 측 패널 5명 중 한 명인 송기찬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연료주기기술연구소장은 “이미 찬성측에서도 국가 차원의 공개 검증을 제안한 바 있다”며 “너무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이라는 지적 때문에 현재와 같은 재검토 방식을 취하게 됐는데, 국민들이 전문가 집단을 완전히 믿지 못한다면 좀 더 공개적인 검증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장은 “검토 과정 중에는 위원회를 대변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의견이 위원들 간에 오갈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그런 이야기가 과장되거나 왜곡돼 괜한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검토 결과가 나오면 종합 의견서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근본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 

파이로프로세싱·SFR 연구개발사업은 1997년 시작돼 현재까지 6794억 원이 투입됐다. 2011년부터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거, ‘한-미 핵연료주기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약 3조6000억 원 규모의 파이로프로세싱 실증시설 건설·운영 타당성을 검증하는 연구로 2020년에 끝날 예정이었다. 위원회는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 연구로에서 내년부터 3년간 수행될 예정이던 최종 3단계 연구의 계속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이번에 연구개발사업 중단으로 결론이 날 경우, 사용후핵연료는 직접 처리(단순 매립) 방식으로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축적된 사용후핵연료는 1만5000t이다. 문재인 정부의 단계적인 탈원전 계획이 그대로 실현된다고 해도 마지막 원전이 중단되는 2070년까지 2만5000t이 더 생긴다. 일단은 원전 습식저장조(수조)에 일정 기간 임시 저장한다는 방침이지만, 2024년이면 고리 1·2·3·4호기와 신고리 1·2·3호기의 수조가 모두 포화 상태에 이른다. 현재 가동하지 않고 있는 신고리 4호기 수조와 신설될 임시 건식저장조를 합하더라도 수년 정도가 한계다.


때문에 단순히 연구개발 사업의 지속 여부가 아니라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찬성측 패널의 또 다른 전문가는 “지금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죽일지 살릴지 결정하는 데만 치중해 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사용후핵연료의 간접 처리(파이로프로세싱) 방식과 직접 처리(단순 매립) 방식 중 어느 쪽을 택할지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문가는 “지금은 반대 측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의 정성적인 논증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단순한 찬반 토론보다는 간접처리와 직접처리 각각의 효용성, 경제성, 사회적 수용성 등을 제대로 분석한 뒤 정량적 데이터를 비교해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공정성, 객관성을 위한 국회의 조치지만 재검토위에 원자력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일반인이 아닌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번 재검토를 추진하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 전 교수도 “주어진 시간도 짧아 반대측 패널로 활동하면서도 우리가 사업에 반대 의견을 가진 시민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며 “이번 재검토를 통해 정부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접게 된다고 해도 찝찝한 기분이 들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청문회가 코앞인데도 사업을 종합적으로, 전문적으로 검토해야 할 위원들이 아직도 내용 파악을 위한 스터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위원들 역시 준비가 덜 됐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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