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A-10 선더볼트(Thunderbolt ) II


A-10 선더볼트(Thunderbolt ) II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날개 달린 전차’


개발의 역사

처음 겪어보는 환경에서 베트남 전쟁을 치른 미군은 특히 항공기의 근접항공지원(CAS, Close Air Support)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의 전투기는 방어력이 약해 가볍게 피탄을 당해도 추락할 가능성이 높았고, 지상군이 찍어준 표적을 정확하게 핀포인트(pinpoint)로 타격하기에는 너무 빨라 위치를 놓치기 십상이었다. 결국 미국은 소화기 중심 전투에 지대공미사일이 난무하고, 방공 자산이 하늘을 덮었던 베트남 상공에서 수많은 조종사를 잃은 경험을 교훈 삼아 지상군 지원을 위한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항공 자산 개발에 돌입했다. 베트남을 겪으면서 미군이 필요로 한 전투기는 접적(接敵) 지역에서 전투 중인 아군 병력에 대해 근접항공지원을 실시할 수 있고, 지원 요청을 받으면 순식간에 날아가 전차를 비롯한 적 기갑 자산을 격파할 수 있으며, 저공에서 저속으로 비행하다가 피탄을 당해도 생존성을 보장할 수 있는 튼튼한 장갑을 장착한 항공기였다. 또한 도입비용이 싸고, 정비 소요가 간단하며, 재출격 시간이 짧아야 했다.


미 공군 주방위군 매사추세츠 주 제104전투비행단 소속 존 모트(Jon Mott) 대령의 A-10이 공중급유 임무 중인 모습 <출처: 미 공군 / Staff sgt. Melanie Norman>


이렇게 완성된 요구도는 1967년 3월 6일부로 발행된 제안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에 포함되었고, 총 21개 업체가 제안서를 제출했다. 저비용 공격기를 도입하려는 취지의 해당 사업은 ‘차기 공격시험기(Attack-Experimental)’, 혹은 줄여서 ‘A-X’ 사업으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유럽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커지면서 요구도가 변경되어 소련의 기갑 자산을 염두에 둔 설계와 전천후 작전 능력이 요구 성능에 추가되었다. 그나마도 3년 뒤인 1970년에 완전히 변경되어 미 공군은 A-X 사업에 대한 제안요청서를 다시 발행했으며, 이번에는 6개 업체만이 요청서에 회신했다. 변경된 A-X 사업 요구도는 다음의 다섯 가지 사항에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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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응성(responsiveness): 조종사는 육안으로 피아 식별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전장 상공에 최대한 오래 머물며 즉응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2. 치명성(lethality): 광범위한 범위 내의 표적을 정확하게 격파할 수 있어야 하며, 우군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3. 생존성(survivability): 모든 피해 상황에서도 생존하여 기지로 귀환할 수 있어야 한다.

4. 단순성(simplicity): 유지정비 시간을 최소화하여 최대한 땅보다는 하늘에 머물며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5. 비용(cost): 기체 개발 및 도입 가격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노스럽 사의 Y-9A 시제기 <출처: 미 공군>


특히 ‘비용’ 항목을 넣은 것은 의회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왜 다른 최첨단 초음속 기체들이 저공비행을 하면서 전차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을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마찬가지 이유로 미 공군이 ‘근접항공지원’이라는 오로지 하나의 임무를 위한 항공기를 별도로 도입해야 하는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따라서 미 공군은 가급적 예산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을 방침으로 삼았다.


미 공군은 6개 업체를 평가한 끝에 최종 후보 업체로 페어차일드 리퍼블릭(Fairchild Republic) 사와 노스럽(Northrop) 사를 선정했다. 두 회사는 비행 평가를 위한 시제기를 완성하여 각각 YA-9A(노스럽)과 YA-10A(페어차일드 리퍼블릭)로 임시 제식번호를 부여받았다. 두 업체는 2년여에 걸쳐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며, 미 공군은 1973년 1월 10일부로 페어차일드 리퍼블릭 측의 YA-10A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페어차일드 리퍼블릭 사의 YA-10A 양산기인 A-10A는 1975년 초도비행을 실시했으며, 1976년부터 제355전술훈련비행단에 인계되어 시험 과정을 거친 뒤 4년 후인 1977년 10월에 실전배치가 이루어졌다. A-10A의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항공대에서 적 기갑 전력을 상대했던 P-47 선더볼트(Thunderbolt)의 명칭을 계승하여 ‘선더볼트 II’로 명명되었다.


페어차일드 리퍼블릭 사의 YA-10A <출처: 미 공군>



A-10은 1973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미 항공우주국(NASA) 에임즈 연구센터(Ames Research Center)에서 추가 풍동 시험을 거쳤는데, 생김새와 비행 특성이 워낙 독특해서 ‘흑멧돼지(warthog)’라는 별명이 붙었다. A-10은 1984년에 생산 라인이 종료되었으며, 1972년 첫 출고 이후 12년 동안 시험기 2대를 포함하여 총 715대가 양산되었다. A-10 생산과 유지관리 등을 담당하던 페어차일드 리퍼블릭의 ‘A-10 OEM’ 팀과 A-10 관련 자산은 모두 1987년에 그러먼(Grumman) 사가 인수했으며, 1994년 노스럽 사가 그러먼 사를 인수하면서 해당 팀은 다시 노스럽-그러먼 항공우주체계 산하로 편입되었다. A-10은 대량의 무장을 장착하고, 넓은 전투반경을 가지며, 공중 대기 비행시간이 길고, 결정적인 순간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미군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상공격기로 군림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수명주기 도래에 따라 지속적인 퇴역 계획이 언급되고 있으나 ‘대체할 수 없는 독창성’ 때문에 한동안 더 전장 위를 군림할 것으로 보인다.


A-10 소개 동영상 <출처: 미 공군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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