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에서 피어날 새해 희망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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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서 피어날 새해 희망

2018.01.08

2018년 대한민국의 희망은 다음 달 9일 개막되는 평창동계올림픽과 함께 떠오른다.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이후 30년만이다. 2002년에는 한일월드컵축구대회가 열렸다.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6번째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이고, 중국은 겨우 2008년 북경하계올림픽을 한 차례 개최했고,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가 예정돼 있을 뿐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1980년의 소련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이 미소 간의 냉전의 결과 서로 보이코트해 반쪽대회로 치렀던 것에 비해 동서 양 진영 160개국이 참가해 올림픽 사상 최다국 참가 대회로 치렀다. 당시 대회에 규모를 갖춘 국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불참한 나라가 북한이었다. 

북한은 이 대회가 온전하게 치러지는 것을 몹시 배아파했다. 그래서 저지른 게 1987년 11월의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었다.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으려는 목적이었다. 우리는 북한의 그런 무모한 도발을 극복하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 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급격하게 상승해서 오늘의 선진국 토대를 마련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한국으로서는 서울올림픽 이후 제2의 도약을 기약하는 무대이다. 이를 위해 대회를 평화롭고 안전하게 치르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다. 북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다. 

그 점에서 북한의 대회 참가는 평화롭고 안전한 올림픽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담보다. 자국 팀을 보내놓고 대회를 해코지할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12월 19일 북한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을 대회기간동안 중단하는 문제를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의 김정은이 1일 신년사에서 여기에 화답해 평창올림픽에 북한대표단 파견 용의를 밝혔다. 김정은은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우리 측이 제안한 남북간의 고위급 회담에도 응했다. 일단 한반도의 2018년은 희망으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희망은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미군사훈련의 일시 중단 제안을 미국도 수용키로 했다고 밝힘으로써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는  남북대화에 대해서도 지지와 기대를 표했다.

북한도 5일 우리 측이 첫 회담의 날짜로 제안한 9일을 수용함으로써 일단 닫혔던 대화의 문이 이번 주에 열린다. 이 회담의 주요 의제가 핵무기나 미사일 같은 복잡한 정치문제가 아니라 북한 팀의 올림픽 참가에 국한된다면 논의의 진전에 큰 장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다. 불과 16일간의 올림픽 기간(패럴림픽 기간을 포함하면 38일)만 무사하다고 한반도가 평화롭고 안전해진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 측으로도 올림픽 이후에 재개될 한미군사훈련이라면 도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벼랑끝 협상에 능한 집단이다. 국제외교관례 등은 안중에 없다. 대화를 깰 때는 억지 구실을 갖다 붙이기를 예사로 했다. 이처럼 북한과의 대화에는 예측불허의 함정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김정은의 신년사에도 평화보다 위협이 더 많았다. 내 책상 앞에 미국전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단추가 놓여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걸 수 없다고 큰소리쳤다. 국제사회는 북의 핵무기 폐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의 핵무장 강화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그는 신년사에서 이 부분과 관련, “핵무기 연구 부문과 로케트 공업 부문에서는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미국으로부터의 위험도 상존한다. 북한이 올림픽 기간 동안만 조용하다가 다시 도발한다면 미국의 여론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무력응징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백악관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이 “남북대화를 낙관하는 것은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라고 한 말도 그 중의 하나다.

말폭탄을 남발해 신용이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이 허풍선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강박관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단추를 갖고 있다’는 그의 말은 유치하긴 해도 미국으로부터의 위험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김의 신년사의 대부분이 민생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의 언급은 제철 화학 기계공업의 발전으로부터 석탄 철도수송 방직 신발 직물 식료 비료 발전 조선 산림복구 농업 수산업 축산업 양어 양식 다수확농법 온실남새(야채) 인비료 탄산소다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생활상 전체를 망라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시절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연상케 한 그의 경제발전 5개년계획구상은 북한 사회가 1960~1970년대 우리의 개발연대 수준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핵보유국으로 전쟁 억지력을 갖췄으므로 이젠 경제난 해결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한의 경제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개방과 개혁뿐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처방은 ‘혁명정신으로 자력갱생하자’는 것이다. 그런 처방으로 북한의 경제가 살아나기는 어림없는 일이다.

한국이 이룩한 경제개발의 성과는 세계가 인정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울 수 있는 최적의 나라는 한국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우려야 도울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은 북한이다. 그 길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이번의 남북대화가 그 길로 가는 첫걸음이기를 바란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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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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