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더욱 담담할 수 있을까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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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더욱 담담할 수 있을까

2018.01.02

책상에 놓인 새해 달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2018년 새해에는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즐겁고 후회 없는 한 해가 될 것인지,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지를. 새해에 대한 기대이자, 소망이다. 거기에는 설령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해도 크게 낙담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포함된다. 앞으로 365일 한 해를 보내면서 탁상달력 날짜마다 흔쾌히 동그라미를 치고 넘어갈 수 있는 날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걱정되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대인관계가 원활할 수 없고, 결국 어느 누구도 따로 고립되어 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로 생각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원칙과 상식을 바탕으로 견해를 좁혀갈 수 있으련만 요즘의 사회 분위기는 그렇게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 편, 네 편이 분명히 갈라진 데 따른 현상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입장이 다를 것이므로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역감정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고, 출신 학교나 생활의 빈부에 따라서도 생각들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기업주와 노동자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보수냐, 진보냐 하는 정치적 이념의 차이도 그런 배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면서 어떻게 원활히 극복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성숙도가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은 배려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기 때문에 마찰과 갈등이 생기는 법이다. 요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댓글에서도 금방 확인되는 사실이다. 각종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언론사의 기사에 대해서는 특히 심하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밝힐 수는 있지만 욕설에 가까운 표현으로 도배질되는 댓글의 홍수를 보면서 갈수록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대화로 간주할 수는 없다. 싸움박질이나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과열 현상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연달아 크고 작은 사고가 터져 사람들이 계속 나자빠지는 데도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서로의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법도 하다. 대학을 나오고도 제대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고시방에나 틀어박혀 있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들어줄 여유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극심한 빈부격차도 하나의 갈등 요인일 것이다. 아무리 위험성을 강조해도 가상화폐에 대한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 데서도 탈출구가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확인된다.

이처럼 각박한 여건에서 건전한 의사소통이 이뤄지기를 바라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불만이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사회 갈등을 조정해 줘야 하는데도 오히려 정책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정치인들도 말로는 소통과 타협을 얘기하면서 자기들 입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게 요즘 모습이다. 더욱이 올해는 지방선거가 실시되므로 벌써 기 싸움이 시작된 분위기다.

이래서는 어떠한 말로도 상대방을 설득하기 어려우며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될 뿐이다. 공자님, 맹자님 말씀조차 잔소리로 들리는 상황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가정과 학교에서도 말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다. 증거를 들이대며 잘못을 따지고 들어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텔레비전의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갈등을 풀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뜻에서 서로의 생각을 얘기하는 것인데 오히려 그 반대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줄이는 게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을 전혀 안 하면서 지낼 수는 없으므로 두어 마디 할 것을 한 마디로 끝내는 식이다. 자녀나 학생, 부하 직원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공연한 참견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우에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상책이라는 얘기다.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의 떨떠름한 태도에 순간적으로 치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미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고집을 피우는 성격이 아니면서도 울컥하는 마음에 감정을 드러냈다가 후회한 기억이 적지 않다. 그때마다 상대방이 원칙을 어긴다는 불만이 있었고, 따라서 정의감의 발로라는 나름대로의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일시적인 화풀이로 취급되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불만조절 장애나 ‘진상을 떠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을 법하다. 결과적으로는 내 개인의 손해요, 서로의 손해였다.

새해에는 말을 줄이는 대신 상대방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겠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얘기라 해도 일단 끝까지 들어줄 것이다. 나에게 터무니없는 험담을 늘어놓는다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귀기울이라 다짐한다. 비록 몇 차례의 시도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실행에 옮길 작정이다. 무엇보다 흥분하지 않는 담담한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 같다. 새해 다짐치고 너무 어려운 목표를 내세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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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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