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Venezia)에서 바칼라 만테카토(Baccala Mantecato)를 먹는 남자 VIDEO: Vivaldi - Four Seasons (Winter)


베네치아(Venezia)에서 바칼라 만테카토(Baccala Mantecato)를 먹는 남자


"스산한 겨울이 오니 갑자기 ‘그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스산한 겨울이 오니 갑자기 베네치아의 ‘그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안티파스토 – 그러니까 일종의 전식에 해당하는 것인데, 염장한 대구(바칼라)를 으깨고 치댄 뒤 거기에 마늘, 소금, 후추와 몇 가지 허브로 간단히 시즈닝을 해 감칠맛을 더한 다음 걸쭉한 크림 형태로 물성(物性)을 잡는다. 생선죽처럼 흐물거리는 그 녀석을 거칠게 구워낸 시골풍의 곡물 빵 등에 발라먹으면 정말이지 눈이 번쩍 뜨인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바칼라 만테카토’(Baccala Mantecato)라 부르는 요리다.


베네치아 Venezia IMAGE: Venez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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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를 포함한 베네토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지만 의외로 베네치아에서 먹기란 쉽지만은 않다. 투어리스트급 호텔이나 관광객용 식당에선 팔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고 다니엘리나 그리티 팰리스 같은 최고급 호텔에는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 년에만 수천 만 명이 찾아오는 관광도시가 된 베네치아는 이미 닳을 대로 닳아 관광객들이 정확하게 어디서 어디까지를 원하는지 다 꿰뚫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니 도저히 베네치아 요리라고는 할 수 없는 뽀모도로와 봉골레, 카르보나라 파스타가 웨이터들의 화사하고 얄상한 미소와 함께 서빙되어 나올 뿐이다. 결국 클래식한 바칼라 만테카토를 찾으려면 골목길로 스며들어가는 수 밖에. 현지인들이 자주찾는 골목 어귀의 바르(Bar)나 지역요리를 내는 작은 식당으로 타겟을 바꿔 이 음식을 정밀 추적해야만 한다.



베니치아 본섬 오른쪽 끝단에 해당하는 카스텔로 지구(Il sestiere di Castello)는 뭔가 바칼라와 인연이 깊은 곳인 듯 하다. 북해 노르웨이 연안에서 조난을 당했다가 그곳 어부들에게서 염장대구 만드는 법을 배워 ‘바칼라의 아버지’(?)로 등극한 퀘리니 제독 일가의 저택이 이곳에 있다. 분위기도 좋다. 바로 옆 산 마르코 지구에 비해 한결 조용한데다가, 아드리아 해의 거친 겨울바다가 자아내는 무드가 꽤나 근사해서 밀월여행을 즐기는 데이트족들이 뒷골목의 경치 좋은 소운하에 점점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심심한 고딕 양식의 교회당 하나도 눈에 띈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나 산타 마리아 델 질리오 성당들처럼 한번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그런 아름다운 교회당도 아니다. 낯을 가린 조용한 성품의 미소년처럼 가지런히 서 있는 이 성당의 이름은 산 조반니 인 브라고라(Chiesa di San Giovanni in Bragora).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가 바로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성당명에 붙은 ‘브라고라’의 어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한데, 뭔가 어류(魚類)와 관련이 있다는 게 다수설이다(혹시나 바칼라일까?). 비발디 생전에 이미 염장생선 요리가 활발히 유통되기 시작했고, 특히 겨울철이면 감칠맛이 더욱 살아나는 대구요리를 뜨끈한 옥수수죽인 폴렌타와 곁들여 먹는 건 베네치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과였다. 그러니 폭풍우처럼 사납고 서늘한 비발디 <사계>의 겨울악장 어딘가에도 바칼라 요리의 진한 감칠맛이 슬며시 스며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 연주 이 무지치. 바이올린 솔로 페데리코 아고스티니)



아르세날레로 진입하는 초입 뒷골목의 작은 식당에 들렀다. 베네치아식 핑거푸드와 와인을 넉넉히 펼쳐놓고는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는 곳이다. 베네치아 시민들도 있고, 여행객도 뒤섞여 자연스런 분위기. 그런데 오늘은 모든 테이블석이 바칼라 만테카토를 먹고 있다. “왜 그러죠?” 주인장 말씀이 오늘 바칼라가 특히 좋아서 테이블마다 권하고 있단다. “베네치아에 왔으면 진짜 바칼라를 먹고 가셔야죠”라는 말에 괜히 마음을 빼앗겼다. “그럼 저도 한 접시”. 가격도 착하다. 아, 드디어 나도 ‘바칼라 만테카토 알라 베네치아나’를 먹는 남자가 되었다. 베네치아의 겨울바람이 오늘보다 더 달달할 수가 있을까.

Club Balc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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