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북녘의 또 다른 속사정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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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북녘의 또 다른 속사정

2017.12.12

바로 지난달 심상치 않은 일이 휴전선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일어났습니다. 탈북 귀순병 사건입니다. 북-중 국경을 넘어 제3국을 돌아서 들어오는 탈북의 예는 허다하며 또 바다나 강을 통해 남북 경계선을 넘어오는 일도 이따금 있지만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을 탈출하는 경우는 이번이 32년 만이라 합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할 만큼 드문 것입니다. 여론이 이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열띤 논란은 오히려 아덴만에서 나포된 우리 선박 구조 사건 이래 유명세에 시달려 온 아주대 외상치료 센터장을 둘러싸고 엉뚱하게 흘러갔습니다. 그의 소상한 귀순병 수술 경과 발표에 대해 소위 ‘인격살인’ 운운하며 이를 질타하고 센터장이 석명해야 하는 소위 남남갈등 양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본질에서 멀리 벗어난 이 어처구니없는 논란은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반증하는, 늘 있는 현상이지만 남북문제의 본질에 속하는 이 극적인 탈북 사건이야말로 참으로 깊이 새겨볼 일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사건 발발 즉시 무엇보다 북한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내부적으로 흔들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숨을 가누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본 필사적인 탈출 장면은 액션 스릴러 스파이 영화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1급 저격수 네 명에 의해 근접 사격된 총알을 5개나 맞고도 절명하지 않고 생존한 것을 기적이라 아니할 수 있을까요? 우리 경비대원들에 의한 구조에서부터 미군 헬기의 수송 작전, 아주대 외상치료센터에서의 수술과 회복 과정,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거대한 드라마의 한 편이었습니다. 남북 간 일촉즉발의 대치와 아슬아슬한 긴장 그 자체가 이미 숨 막히는 상황인데 우리는 그 긴박한 드라마의 한가운데서 매일같이 실제의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 아는 뉴스 속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풀어놓는 것은 사실 그 못지않은, 또 하나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입니다. 이 드라마는 30년 가까이 걸쳐 진행돼 온 긴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하순 서울 서소문에서 개최된 ‘평화 만들기’ 세미나에서였습니다. 한반도 안보와 대북정책 전문가들이 발표하고 나서 청중의 질문답변이 거의 다 끝날 무렵 어떤 50대 전후의 낯선 여성 한 분이 질문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의외의 분위기가 연출된 셈이라 다들 의아해하면서 그 질문자를 쳐다보았습니다. 남한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어느 연구소에 근무한다는 그 여성은 자신을 '북을 떠나온 사람'이라고 하면서 질문의 끝부분에서 “북한의 지식인들이 가장 탐독하는 책이 뭔지 아시는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 뜬금없는 질문으로 인해 좌중은 오히려 예사롭지 않은 답을 기다리는 긴장된 분위기로 반전되었습니다. 답을 해본댔자 주체사상에 관한 책이 아닐 수 없을 텐데 대체 다른 어떤 책을 거론하려는 건가, 하면서 궁금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성이 스스로 털어놓은 답은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쓴 수기’였습니다. 그 자리의 누구도, 그 어떤 북한 전문가도 예상치 못한 답이었습니다. 그는 이어 북으로 송환돼 온 장기수들이 쓴 수기는 남쪽을 비방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그 세세한 기록 중에서 북의 지식인들은 남한 사회의 진면목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의 지식인들이 이 수기들을 탐독해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무기한의 긴 감옥 생활을 한 70, 80대의 장기수들이 그때까지 수명을 유지했다는 것은 그동안 남한에서 줄곧 대우를 잘 받아왔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것이지요. 또 북한이라면 비전향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형에 처했을 것인데 이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판문점을 통해 이들을 송환하면서 의사의 진단과 소견서를 첨부하고 때로는 병약한 장기수를 휠체어어 태워서 보내기도 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렇게까지 배려할 수 있는 남한과 비교할 때 북이라면 이처럼 인간답게 대우하였겠는가, 하고 도리어 북한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북한 내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여성의 발언으로 뭔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스스로 30여 년 전 외교부의 과장으로 일하면서 바로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유엔과 세계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국제기구국 산하 실무자로서 비전향 장기수, 특히 가장 완강했던 이인모 씨의 대북 송환을 적극적으로 건의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데 비록 간첩이었지만 그도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간첩죄로 복역을 하고 있지만 80대 노인의 인권과 행복권을 이렇게까지 억압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점들을 지적하였습니다. 오히려 북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 인권보호에 합당하므로 그를 북으로 송환해야 한다는 것이 저와, 또 당시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논리였습니다. 우리가 북한처럼 인권을 억압한다면 우리의 도덕적 위상이 북한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송환된 이인모 노인은 북으로 넘어간 즉시 대남 비방에 나섰고 북한 당국은 이런 비전향 장기수들을 대남 선전에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예상했다는 듯이 소위 보수 언론들의 비전향 장기수 송환 비판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북에 납북된 우리 국민과 상호 교환하는 식이 아닌 일방적인 송환이 잘못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이 와중에 회의적인 무드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올린 건의가 이상주의적일 뿐이며 현실적으로는 남북 대치에서 북에 유리한 고지를 하나 더 내주게 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로 지난달의 ‘평화 만들기’ 세미나에서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 여성으로부터 듣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쓴 수기가 남한의 실체에 대해, 남북 간 비교를 통해 북의 지식인들을 도리어 일깨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저 자신에게는 이것이 무엇보다 극적인 일로 다가왔습니다. 잘못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이 그때는 크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결국은 북한 내부를 흔드는 데 조용한 기여를 하였다는 것은 하나의 반전이기도 합니다. 제가 30년 후에 심리적으로 보상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때 입각한 논리가 정도(正道)를 따른 것이었으며 그렇게 한 것이 결국에는 정도로 되돌아온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서 얘기한 공동경비구역 탈출 귀순병 사건도 비전향 장기수 수기의 예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 병사도 남북 경계지역에 근무하면서 매우 엄중한 감시 하에 있었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경험해 보지 못한 자유를 맛보기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삶의 절박함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북의 지식인들도 알게 모르게 자유를 꿈꾸며 자유사회를 갈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식인이든 일반 병사든, 북한 사회 내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한반도는 북핵 문제로 6.25 전쟁 이래 가장 심각한 안보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여 대외적으로 위험천만의 도발을 자행하는 것은 파경으로 향하고 있는 북한 사회에서 세습독재 권력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체제에 가장 위협적인 남한을 핵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북한의 무모한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전무에 가깝다고 봅니다. 대신 자유를 희구하는 북한의 인민이 늘어나고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진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한반도의 상황은 심대한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한반도 평화 만들기’ 세미나에서 논의된 ‘통일보다 평화’라는 현실적인 목표에 투철하여, 한미동맹 하의 안보태세를 차질 없이 유지하면서 나라를 더욱 건강하게, 더 튼튼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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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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