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바이올린 협주곡 VIDEO: Staatsoper Unter den Linden: De nuevo en casa y celebrando su 275to. aniversario


동토의 바이올린 협주곡


베를린 국립오페라 극장(슈타츠오퍼 운터 덴 린덴 Staatsoper unter den Linden)

 오랜 보수공사를 마치고 올해 다시 제자리로

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 새 단장 축하 야외 콘서트의 지휘봉


7년 여만이다. 

베를린 국립오페라 극장(슈타츠오퍼 운터 덴 린덴 Staatsoper unter den Linden)이 오랜 보수공사를 마치고 올해 다시 제자리로, 그들의 홈그라운드로 되돌아왔다. 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이 새 단장을 축하하는 야외 콘서트의 지휘봉을 잡아 기세를 올렸다.


베를린 국립오페라 극장(슈타츠오퍼 운터 덴 린덴 Staatsoper unter den Linden) source Peters Reisedienst



VIDEO: Staatsoper Unter den Linden: De nuevo en casa y celebrando su 275to. aniversario

http://conpaper.tistory.com/6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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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상으로만 따지자면 거의 20년은 걸린 듯 하다. 원래 지갑사정이 좋지 못한 베를린이다. 거기다 보수공사를 느리고 꼼꼼하게 하는 걸로 유명한 독일이다. 가령 드레스덴 중앙역 보수공사의 경우도 무슨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짓듯이 ‘느리고 느리게, 그리고 또 천천히’ 했었던 그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워낙에 느리게 진행되니 “언제 끝나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사실 부질없는 질문이다.


그래도 조바심이 났다. 그건 대체 극장의 ‘꼴’(?) 때문이다. 밀라노 라 스칼라가 보수공사를 했을 때는 교외의 제법 세련된 아르침볼디 극장을 썼고, 라 페니체가 불에 타 8년의 공백이 생겼을 때는 말리브란 가극장을 이용해 역사적인 스토리를 하나 더 쌓았다. 그러니 베를린이라고 못할 것 없잖은가. 3백만이 넘는 대도시이니 이런 저런 극장이 많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 베를린 필하모니홀은 베를린 필의 홈그라운드이고 거긴 콘서트 전용홀이다. 겐다르멘 마르크트 쪽에 근사한 콘체르트하우스가 있지만 거기도 역시나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도이췌오퍼 베를린이나 코미쉐오퍼 등은 남의 집, 내 식구가 아니니 거기서 더부살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페라와 발레가 가능한 떼아트로를 달라!”고 외쳐봤자 별무소용.



그래서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서쪽으로 갔다. 원래 베를린 국립오페라는 동베를린 지역의 중심가 프리드리히 거리 한 복판에 있었다. 대체 극장은 저 멀리 서베를린 에른스터 로이터 광장 인근(서베를린 최고 중심지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는 한적하고 심심한 동네다)에 있는 쉴러 테아터가 지목되었다.


(서베를린 지구의 쉴러 테아터)


한동안 이 동네에서 살기도 했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쉴러 극장을 보고는 무슨 구민체육회관인 줄로만 알았다. 사실 그렇게 생겼다. 나중에 보니 극장이었다. 연극은 몰라도 오페라나 발레에는 적합하지 않다. 무대가 좁고, 오케스트라 피트가 사실상 없고, 객석도 협소하고 불편하다. 이래저래 좋지 않은 여건이지만 그래도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저력을 입증하듯 대가수들이 무대 위에 꾸준히 오르기는 했다. 플라시도 도밍고, 안나 네트렙코 등이 여기서 노래를 불렀고, 그들의 <일 트로바토레>는 매우 훌륭해서 지금은 블루레이 영상물도 나와 있다. 좀 더 오래 베를린에서 살았더라면 우리 동네 슈퍼마켓에서 간식거리를 사가는 도밍고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 동네 골목에는 슈니첼을 꽤 괜찮게 하는 가게가 하나 있기도 했다.


(새 단장을 마친 베를린 국립오페라 가극장. 옛날보다 크고 웅장하게 변했다.)


베를린 국립오페라 소속의 오케스트라를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이라 부른다. 오페라단 소속 오케스트라가 콘서트도 같이하는 양수겸장형은 독일-오스트리아의 중요한 음악전통 중 하나이다.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빈 필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의 역사는 빈 필보다 더 오래 되었다. 세계 최고(最古)인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의 바로 뒤를 잇는다. 1570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창설했고, 선제후가 프로이센 왕이 된 후에는 왕실 소속 궁정 오케스트라로 승격된다. 이후 정치적 부침을 유독 많이 겪었으나, 그 중에서도 압권은 동독 시절의 이야기들일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동서베를린을 금을 그어 쫙 갈라 놓았더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콘서트홀, 극장, 대학, 도서관, 박물관 등 모든 문화시설이 동베를린에 떨어지게 되었다. 서베를린은 쇼핑 거리만 남았다. 베를린국립오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들도 ‘눈을 떠보니 동베를린’이었다. 


그래도 기라성 같은 지휘자들이 – 동독 시절임에도 – 이 곳의 수장을 맡았다. 요제프 카일베르트, 에리히 클라이버, 프란츠 콘비츄니, 오트마르 주이트너 등이다. 동독에 속한 덕분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건너온 아티스트들과의 연합 연주회도 유독 잦았다. 이런 인연으로 탄생한 기념비적 라이브 레코딩이 아직도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데, 바로 오늘 소개드릴 1963년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의 축제(Festtage Berlin) 공연이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963년 베를린)


‘20세기의 거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지휘는 역시나 전설의 거장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특유의 무뚝뚝하고 뚱한 표정과 후덕한 몸매로 뭔가 러시아보다는 ‘소련’이라는 말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오이스트라흐였다. 생김새만 보자면 의욕 없이 권태로운 공산당 중간 간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였고 음악가였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지성미를 자랑하는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뜨겁고 진득한 로맨티시즘과 초인과도 같은 서늘한 기교, 20세기 거장 음악가들의 특징인 강인한 어조와 폭발적인 주관성으로 가히 완벽한 차이코프스키를 거침없이 연주했다. 로제스트벤스키 또한 ‘러시아의 오케스트레이션이란 이런 것이다’를 증명이라도 하듯 거친 절도와 주저함 없는 차가움, 내면의 깊은 곳을 직격하는 처절한 멜랑콜리로 가득 찬 압도적인 관현악 리딩을 선보이고 있다.


내년 2018년도 축제(Festtage)는 빈필이 축하사절로 와 오프닝을 말러 교향곡으로 장식한다. 베르디와 바그너가 쓴 최후의 오페라 두 편 <팔스타프>와 <파르지팔>이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모두 참여하는 캐스팅으로 공연될 예정이기도 하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이 오케스트라는 그만큼의 영욕과 굴절의 세월을 모질게도 겪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들은 최고 오케스트라였고, 지금도 최고의 오케스트라이다. 내년도 봄 축제를 기다리며 다시 한번 오이스트라흐의 연주에 눈과 귀를 기울여본다. 뻔한 이야기지만 다시 한번 깨닫는다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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