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자초한 국립문학관 행정 [임철순]


www.freecolumn.co.kr

갈등을 자초한 국립문학관 행정

2017.12.05

정부의 국립한국문학관 추진 경과를 살펴보면 정부 행정, 특히 문화행정이 왜 이렇게 허술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잖아도 갈등과 분쟁이 많은데 작은 생선을 굽듯 사려와 분별을 다해 추진해도 어려운 일을 너무 쉽게 다룬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 문화부가 문학진흥법에 따라 문학자산을 수집·전시·연구·활용하고 교육시설로 쓸 수 있는 국립한국문학관을 설립키로 하고,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부지 공모를 하자 16개 시·도에서 24곳이 신청했습니다. 각 지자체는 저마다 문학자산과 연고를 내세워 사활을 걸고 유치 경쟁을 했습니다. 다른 지자체와의 경쟁은 물론 같은 지자체 안에서도 양보 없는 싸움이 벌어지자 문화부는 5개월 만에 공모 절차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문인 중심으로 구성된 문학진흥 TF(태스크포스)를 통해 지난해 12월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 국립극단 부지, 용산공원 내 부지 등 서울의 3곳으로 건립 후보지를 추렸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문학진흥법에 따라 올해 출범한 문화부 자문기구 문학진흥정책위원회가 11월 8일 개최한 공청회에서는 용산공원 내 부지 일부(국립중앙박물관 부지 내 일부)가 최적 후보지로 공개됐습니다. 

그러자 서울시는 바로 다음 날 “문학관 건립은 용산공원 종합계획 수립 이후 검토할 사항”이라는 반박문을 냈습니다. 이 일대를 생태문화공원으로 조성한다는 서울시 계획과 상충된다는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의회 답변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
했습니다. 용산이 지역구인 진영 의원도 박 시장을 지지했고, 국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는 ‘문학관 건립을 반대하는 문학인들이 있다’는 주장을 근거로 문학관 건립예산 30억 원(설계 및 자료구입비)을 삭감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문인협회·한국작가회의 등 10개 문학 단체는 11월 30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방해 책동을 당장 멈춰라’라는 공동 성명을 발표, “한국문학관은 우리 문학의 대계를 세우는 오랜 숙원”이라며 “문학인들은 용산 부지를 포기할 수 없고 그 어떤 정치적 책동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특히 서울시의 ‘문학에 대한 능멸’을 비판하고,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기초예산을 없애버리는 행위는 문학인과 문학을 사랑하는 국민의 염원 자체를 훼손하는 폭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인단체가 이렇게 한목소리를 낸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문학관의 서울 건립에 대해 “절차의 민주성이 무시된 불공정한 처사이며 국가적 화두인 지역 분권과도 역행한다”고 반발하거나 음성적 조직적으로 서울 건립을 방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화부가 문인과 독자들의 의견 수렴과 세심한 검토과정 없이 서둘러 지자체를 대상으로 부지 공모부터 한 게 가장 큰 잘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질은 사라진 채 ‘지역 발전에 유리한 국가시설’ 유치경쟁이 가열되고 정치논리와 특정 지역 내정설까지 퍼져 수습이 곤란해진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이후 문화부는 온갖 소음과 불화, 블랙리스트의 진앙이 돼버려 행정의 사려와 분별이 모자라게 된 것 같습니다. 서울시에 대한 사전 협의와 설득 노력도 모자랐습니다. 

건립 후보지로 떠오른 곳은 용산공원 경계 밖에 있고 국립중앙박물관 옆의 문화부 소관 국유지입니다. 그러나 도종환 문화부장관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몇 번 찾아가 설득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박 시장은 요지부동이었다고 합니다. 미군기지 이전 부지뿐만 아니라 주변 국유지까지 모두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 시장은 ‘시(詩)의 도시 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시가 흐르는 서울을 만들려 하는 인문적 상상력의 시장입니다. 서울도서관의 글판에 ‘보고 싶다. 오늘은 꼭 먼저 연락할게’라는 글을 올릴 만큼 그의 행정에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면도 있습니다. 문학관의 서울 건립은 시정 지향점과도 잘 맞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완강히 반대하는 데 대해 청계천 복원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명박 전 서울시장처럼 용산생태공원 조성을 큰 업적으로 삼으려 하는 것 같다는 비판도 들립니다. 

서울시와의 문제 외에 다른 문제가 또 있습니다. 새 정부는 2000년부터 경복궁 복원을 위해 이전을 논의해온 국립민속박물관을 최근 세종시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지금 문학관 부지로 거론되는 곳에 옮기는 게 기정사실처럼 돼 있었는데, 땅이 좁으니 세종시 박물관단지로 이전하고 그 땅에 국립문학관을 건립키로 함으로써 박물관 관계자들의 반발을 자초했습니다. 

민속박물관도 마다한 서울시로서는 문화부가 이랬다저랬다 하니 우스울 것입니다. 정부 중앙부처가 지자체의 웃음거리가 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문화부는 그곳에 문학관을 건립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서도 “논의를 거쳐 내년 6월까지 확정해 발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건축허가권을 쥔 서울시가 끝까지 반대할 경우 일이 어려워집니다. 

경과는 어쨌든 국립문학관은 서울에 건립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도쿄올림픽(1964년) 이후 대대적으로 자료를 모아 1967년 도쿄 한복판에 일본근대문학관을 열었고, 중국은 1985년 베이징에 현대문학관을 세우고 세계에서 가장 큰 문학박물관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라의 얼굴이 걸린 중요한 일인 만큼 이제라도 범 정부 차원의 논의와 추진을 해야 합니다. 특히 땅 주인이 아닌 박 시장은 협의체 참여 요청에 부응해 해결책을 함께 모색함으로써 문학인들의 비판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미 국방부,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세워진 마당에 또 정부기관이 들어서면 온전한 용산국가공원 조성이 힘들어진다면, 그리고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다면 차라리 국방부와 전쟁기념관을 계룡대로 옮기고 국립문학관, 민속박물관을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모여 살게 하는 게 최상의 배치이며 수도 서울의 문화적 용모를 개선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산은 13세기 몽골군이 침입해 병참기지로 삼은 이래 임진왜란과 일제 때는 일본군의 병영이 됐다가 해방 후 미군기지로 바뀌는 등 외세 침략과 굴욕의 상징이 된 땅입니다. 문학과 예술은 전쟁과 파괴에 맞서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환경과 생태의 지킴이 역할을 합니다. 피침(被侵)과 굴욕의 역사를 무력(국방부 전쟁기념관)으로 제압하려 하기보다는 문화의 힘(문학관 민속박물관)으로 극복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