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나눔의 문화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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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나눔의 문화

2017.11.30

얼마 전에 딸아이와 함께 청주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청주가 무엇으로 유명하냐고 물었는데, 사실 딱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직지로 알려진 청주고인쇄박물관과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청주는 문화의 도시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옛 연초제조창 때문입니다. 한때 청주시민을 먹여 살렸다는 전설의 담배공장, 옛 연초제조창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역사적 공간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옛 담배공장이지만 오래된 건축물들은 세월의 흐름, 역사, 존재의 의미를 은밀하게 혹은 엄숙하게 전하기도 합니다. 담배공장의 높은 천고, 빛바랜 회벽, 낡은 바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오래됨이 주는 감정은 편안함과 익숙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공간에 있다 보면 관람자는 왠지 그 장소를 개척해 나가야 할 영토처럼 느끼기도 하고, 관람의 태도 역시 능동적이 됩니다. 

이곳에서 세계문화대회가 열렸으며 옛 담배공장은 그 행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세계문화대회의 모토인 '공감과 평화'를 주제로 글로벌 컬처디자이너들은 개방된 공간에 각양각색의 문화콘텐츠를 담았습니다. 보다 나은 세상, 함께 하는 세상을 향해 열정을 꽃 피우는 컬처디자이너들은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으로 길목마다 난전을 펼치듯 토론하고 때로는 춤을 추었습니다.

그중 마음에 담고 싶은 것은 '다름의 예술'이라는 코너였습니다. 다름에서 시작하는 예술 즉 장애문화예술입니다. '다름의 예술'에서는 오티스타라는 사회적 기업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자폐인의 재능을 계발하고 확장하여 이들의 순수하고 재미있는 생각과 표현을 담은 그림들을 상품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자폐인들의 예술적 재능이 사회에 환원되고 이를 기반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익적 활동입니다.

‘다름’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다른 사고와 행동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런 ‘다름’은 예술표현에 있어서 창의적인 세계, 독창성을 만들어 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장애인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접근하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지 작업의 결과물을 보면 감동은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업의 과정을 이해한다면 그 감동은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청년 작가는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제 딸아이의 모습을 관찰하며 쉼 없이 검은색과 연한 주황색 도화지를 오리고 테이프로 붙여가며 얼굴의 특징을 잡고 펜으로 이목구비를 그렸습니다. 그리기 중심이 아닌 만들기 중심의 캐리커처라 독특하였고 그의 빠른 손놀림도 인상적이었으며 캐리커처를 받은 딸아이가 마냥 좋아했습니다.

그는 휴지로 뼈대를 만들고 테이프를 뜯고 감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만화를 비롯하여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만드는, 일종의 테이프 공예작품들을 보여주었는데,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어느덧 동심으로 돌아가 미소를 짓게 됩니다. 사실 자폐 범주성 장애는 신경 발달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100명당 1~2명 이상의 높은 발생률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일생에 걸쳐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보이는데 이러한 재능과 나눔의 행위는 만남과 공감의 장이 됩니다.

청주 옛 연초제조창은 공간이 너무 좋아서 하루만 머무르겠다는 당초의 계획을 수정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었고 세계문화대회는 따뜻함을 품을 수 있는 좋은 콘텐츠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편중된 문화자본이 지역으로 확대되고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화자본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형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축적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모쪼록 이번 청주 옛 연초제조창에서 열린 세계문화대회가 문화의 접속과 창조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길 바랍니다. 또한 '다름의 예술'에서 느꼈던 감동처럼, 공감과 나눔을 향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기를 기대해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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