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 인력의 명성에 먹칠한 무가베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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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인력의 명성에 먹칠한 무가베

2017.11.23

언론 보도만 보면 청년과 중장년층 세대가 희소한 일자리를 놓고 투쟁을 벌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이 심각한 저출산과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는 경제에서는 모든 인력이 중요하며 노령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발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장년·노령층이 많다는 것은 본인들에게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져야 하는 공적 부조를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흔치 않아도 90대에 들어서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쌓은 리티움이온 배터리 분야 전문 지식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며 업적을 내고 있는 미국 택사스 대학의 굿이너프박사 사례는 이 칼럼에서 소개된 적이 있지요. (자유칼럼 2017년 8월 25일 '90넘어 창의력에 빛나는 사람들')

오랫동안 나쁜 짓만 하며 노인 욕 먹이는 예도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남부에 위치한 짐바브웨에서 대통령직 하야를 놓고 후안무치의 흥정을 벌이다 어제 사임한 93세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그 인물입니다. 40년 가까운 통치의 결과로 짐바브웨는 2010년 UN이 소득 자료를 갖고 있는 183개 국가 중 제일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각종 생활의 질 지표로 보아 40년 전보다 살기가 나빠진 나라라는 불명예도 안게 됩니다. 

흑인 게릴라 무력 투쟁과 UN의 제재의 결과로 짐바브웨의 전신 남 로디지아에서 1979년 유색인종이 참여하는 보통 선거가 시행된 결과 1980년 짐바브웨가 수립됩니다. 이는 이웃에 위치한 소수 백인 통치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습니다. 건국의 영웅으로 존경 받으며 새로 출범한 정부의 총리에 취임한 무가베는 초기에는 경쟁자와의 연정구성, 백인들에 대한 유화적인 정책을 시행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길고 긴 내리막 행보를 시작합니다. 독립전쟁 때 동료였으나 그 후 정적이된 은코모의 지지 기반을 제거하기 위해 정적의 부족민을 만 명 넘게 살해했습니다. 이때 북한군에 의해 훈련되고 북한제 무기로 무장한 특수부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막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그는 당시 중국과 북한 등 공산권 국가들에서 지원을 받았고, 공산주의-사회주의에 입각한 국가 건설을 시도했습니다. 

무가베 집권 초기까지 농업과 광업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부자나라였던 짐바브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백인들도 혼란이 심해지자 대거 빠져나가며 불안정을 키웠습니다.3년 만에 백인 인구의 약 반이 타국으로 이주합니다. 그 이후 무가베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과 폭력을 지속적으로 동원합니다.

1990년 대 들어서는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하고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건국 초기의 백인에 대한 유화 정책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2000년 대 들어서는 그나마 남아있던 백인 소유의 농장들을 친 정부 무장 폭도들이 강탈하는 일이 대대적으로 벌어집니다. 2000년에 있었던 선거에서 야당이 득세하자 국면 전환의 방도로 시작된 일입니다. 대법원이 토지 강탈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리자 대법원의 구성원을 바꿔 판결을 뒤집어 버립니다. 폭거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초래했습니다. 하지만 무가베는 이런 비난을 사악한 식민주의, 자본주의의 음모라며 오히려 큰 소리쳤고 여기에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동조합니다. 

그런데 강탈한 농장들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고, 경제 질서 파괴로 식량 사정과 생활상이 급속히 악화됩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0년 약 200만 톤이던 옥수수 생산량이 2008년에는 45만 톤으로 떨어집니다. 2009년에는 인구의 약 75%기 식량배급에 의존하는 상태가 됩니다. HIV/AIDS, 콜레라 등 각종 질병이 퍼지며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 54세와 63세였던 남녀의 기대수명을 2007년 각각 34세와 36세로 낮춥니다.  

2005년 국내총생산으로 본 경제규모는 5년 전에 비해 약 반토막 나고 실업률은 80%로 고공행진 합니다. 2007년 물가상승률(인플레이션)이 7600%로 세계에서 제일 높았는데, 다음 해에는 100000%로 수직상승하는 역사상 보기 드문 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을 기록합니다. 이는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각종 인기 영합성 지출이 커지며 늘어나는 정부의 빚을 중앙은행이 사들이며 통화발행이 급증하여 나타난 현상입니다. 급기야 2009년 이후 자국 통화의 발행을 중단하고 미국 달러화 등 외국 돈을 국내에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2016년 외화와 병행 사용하는 자국 통화 발행을 시작할 때까지 이런 상태는 지속되었죠. 

민심의 이반으로 늘어나는 반대파에 대한 탄압은 더 무자비해집니다. 도시 빈민이 반대파 지지기반이 되자 도시정비를 명분으로 빈민 거주촌을 불도저로 밀어버립니다. 국제사회의 지탄이 이어졌지요. 그럴 때마다 무가베는 짐바브웨의 모든 문제를 백인들의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며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농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지지자들과 자신의 사욕 채우기에 몰두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2008년 미국의 메사추세츠 대학교가 1986년에 무가베에게 수여했던 명예박사학위를 박탈했겠습니까. 이 대학은 미국에서 드물게 진보·좌파 성향의 구성원이 많은 학교인데 당시 이미 짐바브웨 내에서 대규모 부족 학살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명예학위를 주었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최근 로힝야족 탄압을 외면하고 부인하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진행되고 있지요. 

무가베의 부인은 이 역겨운, 부조리극과 같은 드라마가 극적 종결로 가는 각색에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명품 쇼핑과 비싼 보석 애호로 별명이 ‘구치(Gucci)’ 그레이스인 현재 부인은 등장부터가 범상치 않습니다. 첫 부인이 암 투병 끝에 사망했는데 그동안에 당시 비서였던 40세 연하인 지금의 부인과 밀애로 아이를 낳았고 첫 부인이 죽자 결혼합니다. 

무가베가 점점 노쇠해지면서 50대 초반의 부인은 욕심을 키웁니다. 자신을 부추기는 젊은 층 지지자들과 모의하여 권력을 승계할 계획을 실행합니다. 무가베로 하여금 이달 초 오랜 심복이자 서열 2위 음난가구아 부통령을 축출하게 하고 자신이 부통령으로 임명됩니다. 하지만 그동안에 무가베의 온갖 악행에 동참해온 악어라는 별명의 70대 후반의 이 인물도 만만치 않아 자신과 가까운 군부를 움직여 대통령을 구금하며 드디어 무가베 시대의 종식을 알립니다.     

이번 정변이 짐바브웨의 찌든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저 권력에 눈 먼 마키아벨리 애독자들의 먹고 먹히는 난장 한 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굿이너프 박사와 무가베 대통령은 나이가 들어도 창의적일 수도 있고, 더 무식하고 악랄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짐바브웨의 예는 무식과 악행이 나이와 무관하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노령 인력을 쓸모가 없다고 일괄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글의 교훈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흰꽃여뀌(마디풀과) Polygonum japonicum Meisn.

하늬바람 쌀쌀한 낙엽의 계절,
들판의 꽃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갑니다.
논밭 벌판에 충만했던 풍요가 휑하니 비워져갈 때
논두렁 도랑 가에 피어있는 좁쌀만 한 하얀 꽃,
자세히 볼수록 맑고 투명한 앙증맞게 고운 꽃, 
귀하지도 흔하지도 않은 흰꽃여뀌입니다.
  
여뀌는 농사꾼에게는 참 골치 아픈 잡초입니다.
국내에 자라는 여뀌 종류는 약 20종이 됩니다.
개여뀌, 가시여뀌, 물여뀌, 털여뀌, 바보여뀌, 장대여뀌 등
논밭이나 냇가 습지에 지천으로 자라는 것이 여뀌류입니다.
대부분 여뀌류의 꽃은 꽃 같지도 않은 
좁쌀 반 톨보다 더 작은 알갱이가 
총상꽃차례(總狀花序)로 꽃이삭에 빼곡히 달립니다.
희고 붉은 알갱이 같은 꽃송이가 무더기를 이루니 
멀리서 보면 고와 보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여뀌류 중 그래도 꽃다운 꽃을 피우는 종이 있습니다.
여뀌 가문의 명예를 걸고 체면치레하는 꽃인가 봅니다.
성가시고 귀찮고 볼품없는 여뀌 가문이 아니라 
화사한 꽃을 피울 줄도 안다고 내세우는 꽃이 
바로 꽃여뀌와 흰꽃여뀌입니다. 
꽃여뀌는 꽃이 붉고 흰꽃여뀌는 하얗습니다.
꽃은 고작 2~3mm 정도이지만 모양이 매우 곱습니다. 
    
흰꽃여뀌는 전국에 분포하지만, 주로 중부 이남에 자라며
도랑, 하천변 등 양지바른 습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꽃은 8~10월에 피며, 원줄기 끝에서만 꽃이삭이 나오는데
이삭꽃차례(穗狀花序)를 닮은 총상꽃차례(總狀花序)입니다. 
줄기는 곧게 자라고 밑에서 가지가 갈라집니다.
주요 특징은 잎 엽초 상부에 수염털이 나 있고
잎집의 탁엽은 맥이 있으며 막질(膜質)입니다.
  
(2017. 10 월 제주 한림에서)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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