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이야기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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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이야기

2017.11.16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에 사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김장풍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희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김장은 물론이고, 된장이며 고추장을 만들어 먹습니다. 김장은 겨울 한 철에만 먹을 분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듬해 김장 때까지 먹을 분량을 해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합니다.

아내는 김장철이 다가오면 김장할 날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추며 마늘 시세를 알아보는 등 준비를 합니다. 그런 아내에게 올해는 김치를 겨울에 먹을 것만 담그자고 하면, 하루만 고생하면 가족들이 1년 내내 건강한 김치를 먹을 수 있는데, 왜 농약으로 범벅을 한 여름배추를 먹느냐며 고개를 흔듭니다.

김장을 할 때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김장을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에는 어느 집이나 겨울에는 김장 때 만든 배추김치며 무김치 동치미 등이 밥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데다 어느 집이나 자식들이 많아서 적게는 김장 배추를 한 접 이상, 많게는 두 접 이상 준비합니다. 

김장을 하려면 물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으로 상수도가 생기기 전에는 물이 귀했습니다. 산골 동네 같은 경우는 공동우물이나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길어다 식수로 썼지만, 면소재지 같은 경우는 공동우물이 없어서 부잣집 마당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다 식수로 썼습니다.  소풍을 가서는 강물을 손으로 떠서 마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배추를 절일 때는 우물이 있는 집에 가서 물을 길어다 할 수 있지만 절인 배추를 씻을 때는 냇가로 갔습니다.
그때는 11월이면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린다고 해서 소금에 절인 배추를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김장을 품앗이하는 아주머니들과 소금에 절인 배추를 리어카에 실고 냇가로 갑니다. 

냇물은 꽁꽁 얼어 있고 바람은 저절로 눈물이 날 정도로 매섭게 불어댑니다. 배추를 씻기 전에 집에서 준비를 해 온 마른나무로 모닥불을 피웁니다. 몸을 충분히 녹인 후에는 묵직한 돌로 얼음을 깨트립니다. 

요즘처럼 고무장갑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맨손으로 소금에 절인 배추를 냇물에 씻다 보면 금방 손등이 뻘겋게 얼어 버립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얼음 속에 흐르는 냇물이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갑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모닥불이 꺼지지 않도록 마른나무를 주워다 불을 살피는 틈틈이 어머니들이 주시는 배춧속의 짭짜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은 영하의 추위를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김장하는 날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김장김치로 싸서 먹지만, 그 시절에는 쌀밥을 먹는 날입니다. 풍성하게 양념이 된 김장김치에 먹는 하얀 쌀밥은 너무 맛이 있어서 금방 밥그릇이 비어 버립니다. 김장이 끝나면 품앗이를 한 아주머니들에게 두어 포기씩 냄비며 함지박에 담아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한겨울에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배가 촐촐합니다. 도토리묵을 채 썰어 김장김치로 고명을 만들어서 먹기도 하지만 고구마를 많이 먹습니다. 고구마를 먹을 때 김장김치는 유난히 맛이 있습니다. 봄나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김장독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기온이 올라가서 쉰 김치를 물에 헹궈 양념을 털어내어 전을 부쳐 먹기도 합니다. 

요즈음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은 김치를 마트에서 사 먹거나 홈쇼핑으로 구입합니다. 방송에서는 김장철이 될 때마다 올해 4인 가족 기준으로 김장 예상가를 발표하지만 크는 아이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정보입니다. 

김치를 담아 먹지 않고 시장에서 구입해 먹다 보니, 밥상에 김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밥상에서 김치가 사라진 자리는 햄이며, 어묵 같은 가공식품이 차지합니다. 김치는 중독성이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해외로 이민을 간 사람들도 김치 맛을 잊지 못해서 나름대로 환경에 맞게 김치를 담가 먹는 경우도 흔 할 정도입니다. 

가공식품은 며칠만 계속 먹어도 질리게 됩니다. 더 자극적이고, 더 고소한 맛을 찾다 보니 편식을 하게 됩니다. 편식을 하는 이유는 특정 재료나 음식을 먹었을 때, 거부감 또는 안 좋은 기억이 뇌에 저장되기 때문입니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 편식을 하게 되면 몸의 영양 호르몬이 불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과체중, 비만 혹은 그 반대로 저체중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뇌의 성장과 발달이 늦어서 성격 형성에 악영향을 줍니다. 면역력이 저하되거나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김치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2013년 12월 6일 김치와 김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습니다. 인정하게 된 이유는 “한국의 전통 가정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김장이 겨울철이 닥쳐오기 전에 나눔과 개인 정보망에 관한 한국문화를 대표하고 한국인들에게 결속과 단결을 통하여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생일이거나 손님이 오거나, 특별한 날 김치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김치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김치의 종주국인 우리의 밥상에서 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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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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