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혈액 - 아직은 먼 얘기? The Fourth Dimension: Fabricating Artificial Blood Vessels with 4D Bioprinting


수혈 위기, 인공혈액으로 극복하나


헌혈 가능한 인구(16~69세)
3년 뒤 2020년 3,922만 명을 피크로 줄어들어
구조적인 문제 직면

현재 기술은 아직 진짜 피와 경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당분간 혈액은행이 문을 닫을 일은 없을 것이다.

- 로버트 란자

 

artificial blood SOURCE The Manufactu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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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urth Dimension: Fabricating Artificial Blood Vessels with 4D Biopr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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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할 피가 부족하다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지난 주 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 이제 정말 심각한 단계로 접어드는 것 같다. 즉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로, 헌혈 가능한 인구(16~69세)가 3년 뒤인 2020년 3922만 명을 피크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실 헌혈자 부족 문제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데, 헌혈의 73%를 차지하는(지난해 기준) 16세 이상 10대와 20대(주로 학교 및 군대의 단체 헌혈) 인구가 2000년 1204만 명에서 2015년 998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실제 혈액 공급량도 2015년 627만 단위(unit)에서 2016년 589만 단위로 줄었다. 혈액 보유량이 3일 치 미만이 되면 ‘주의경보’가 울리는데, 경보가 울린 날이 2014년 0일, 2015년 4일에서 2016년 60일로 급증했다. 지구온난화로 여름철 열대야 일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구조적인 문제가 피부에 와 닿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중년층 헌혈을 장려해야 한다지만 수혈 수요가 높은 노인 인구는 한동안 계속 늘 것이기 때문에(65세 이상이 2015년 654만 명에서 2050년 1881만 명으로 거의 세 배가 된다) 이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피를 들여오자니 비용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도 미지의 바이러스 감염 같은 위험성이 너무 크다. 또 고령화는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 막상 피를 수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08년 미국의 과학자들은 배아줄기세포를 적혈구로 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시 연구를 주도한 로버트 란자 박사는 상용화를 자신했지만 9년이 지난 지금은 아직은 

먼 얘기라고 한 발 물러섰다. 배양 비용을 낮추는 게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Blood 제공


배양 비용, 여전히 걸림돌

걱정스런 기사를 읽다가 문득 수년 전 과학동아 기자를 할 때 줄기세포 특집기사에서 인공혈액을 다룬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만든 인공혈액이 십년 안에 상용화돼 수혈이 추억 속의 풍경이 될 거라는 예측을 한 것 같다. 찾아보니 ‘과학동아’ 2010년 2월호에 실린 특집의 1파트 ‘실명도 줄기세포로 치료한다’에 있는 박스기사로 제목이 ‘2019년에는 헌혈이 사라질 수도’였다.


내후년에 헌혈이 사라진다면 이미 조짐은 나왔을 것이고 따라서 신문에 수혈 대란을 걱정하는 기사가 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10년 필자의 기사 이후 실명을 줄기세포로 치료하는 임상은 국내외에서 실시됐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만 인공혈액에 대한 예측은 완전히 빗나간 것 같다. 당시 배아줄기세포를 적혈구로 분화시키는 기술이 확립된 상태(2008년)에서 혈액제조 비용을 낮추는 게(100분의 1로) 상용화의 관건으로 봤는데, 인간게놈서열분석 비용이 그랬듯이 10년 이내에 가능하다고 본 게 오산이었을까.


학술지 ‘네이처’ 9월 28일자에는 ‘혈액(Blood)’란 제목의 부록(Outlook)이 실렸다. 모두 일곱 편의 글이 실렸는데 다행히 첫 번째 글이 인공혈액에 관한 기사였다. 얼른 읽어봤는데 줄기세포로 만든 인공혈액이 헌혈을 대체할 일은 당분간 없다는, 앞에 인용한 전문가 코멘트가 일치감치 나왔다. 이 말을 한 로버트 란자는 줄기세포 치료 분야의 전설적인 인물로, 2008년 배아줄기세포 적혈구 분화 성공도 그의 작품이다.




찾아보니 그사이 줄기세포 인공혈액의 상용화 가능성에 대한 논문이 간간히 나왔는데 결론은 배양 기술에 획기적인 진전이 생기지 않는 한 비용을 더 낮추기는 어렵다는 내용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배양액 1밀리리터당 세포 수가 100만 개가 넘으면 더 이상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수혈용 혈액 한 단위에 필요한 적혈구 2조 개를 만들려면 배양액이 적어도 2500리터가 필요하다. 참고로 피 1㎖에는 적혈구가 50억 개 정도 들어있다. 물론 세포를 키운 뒤 모으고 남은 배양액을 다시 쓰는 (필요한 영양분과 성장인자를 더하고 노폐물은 없애서) 순환식 배양을 해야겠지만 이 과정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기사에 따르면 줄기세포 인공혈액을 범용 수혈용 혈액으로 쓰는 건 아직 먼 얘기지만 특수한 용도, 즉 비용이 큰 문제가 아닐 경우에는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종교적인 문제로 수혈을 받지 않아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종종 생기는데, 이 경우 자기 체세포를 역분화시킨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분화시킨 적혈구로 만든 인공혈액을 쓸 수 있다. 참고로 2011년 iPSC를 적혈구로 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적혈구가 없는 대신 헤모글로빈을 산소운반체로 쓰는 혈액대체제가 여럿 개발됐다. 

2001년부터 남아공에서 상용화돼 쓰이고 있는 헤모퓨어의 경우 소의 적혈구에서 

추출한 헤모글로빈 단백질을 서로 화학결합으로 연결해 안정화시킨 입자(헤모글로빈 

15~16개)를 이온 용액에 분산한 상태다. - HbO2세라퓨틱스 제공


2001년부터 혈액대체제 쓰이고 있어

다소 실망한 채 기사를 읽다가 진짜 적혈구는 없지만 적혈구의 기능을 하는, 즉 산소를 운반하는 물질이 들어있는 인공혈액에 대한 최근 현황이 소개돼 있어 다시 흥미가 생겼다. 적혈구가 없는 인공혈액은 혈액대체제(blood substitute)라고도 부르는데 뜻밖에도 수십 년 전부터 개발돼왔고 여러 유형이 나와 있다. 그 가운데 헤모글로빈기반산소운반체(haemoglobin-based oxygen carrier)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놀랍게도 남아공에서는 2001년부터 상용화돼 쓰이고 있다.


즉 HbO2세라퓨틱스(Therapeutics)라는 미국의 회사가 만드는 헤모퓨어(Hemopure)라는 제품으로 소의 적혈구에서 추출한 헤모글로빈 15~16개로 이뤄진 작은 입자가 들어있는 액체다. 헤모퓨어는 진짜 수혈 혈액처럼 환자의 혈액에 더해져 수십 일 동안 작동하는 건 아니지만 당장 급한 며칠 동안은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오지나 전쟁터 등 수혈용 혈액을 구하기 힘든 곳에 헤모퓨어를 비치해 두면 죽을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실제 남아공에서는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헤모퓨어로 수혈했다고 한다(주로 빈혈환자나 수술 중에). 한편 헤모퓨어의 동물용 버전인 옥시글로빈(Oxyglobin)의 경우 미국과 유럽에서 개에게 적용하고 있다.


헤모퓨어는 세심하게 보관해야 하는 진짜 피와는 달리 상온에 둬도 36개월 동안 안정하고 모든 혈액형에 쓸 수 있고 면역반응을 일으키지도 않는다고 한다. 물론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가 들어있을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인공혈액이 이미 나와 있는데 왜 정작 제조국인 미국은 물론 늘 피가 부족해 쩔쩔매는 우리나라에서도 쓰지 않는 걸까.


사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 이미 사람을 대상으로 소규모 임상을 진행했고 그 결과 진짜 혈액과 비교해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혹시 모를 위험성을 우려해 미 식품의약품안전처(FDA)가 추가 임상을 금지시켰다. 이를 둘러싸고 임상을 추진한 미 해군 측이 지나친 기우라며 FDA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2008년 학술지 ‘미국의학저널(JAMA)’에 실린 메타연구 논문이 헤모글로빈기반 혈액대체제 연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즉 1980년부터 2008년까지 헤모글로빈기반산소운반체로 실시한 임상 16건을 종합한 결과 심근경색증과 사망 위험률이 높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결과 FDA는 혈액대체제 연구에 회의적인 입장을 강화했다.


그러나 학술지에는 이 논문에 대한 반박 서신이 이어졌는데 한 마디로 엉터리라는 것이다. 즉 서로 유형이 다른 다섯 가지 헤모글로빈기반산소운반체에 대한 임상을 한데 묶어 분석했을 뿐 아니라 이 가운데 높은 사망률로 문제가 된 한 유형을 뺄 경우 메타분석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아무튼 현재는 이런 문제점이 인정돼 내년에 미국에서 헤모퓨어의 3상 임상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조만간 현실화될 가능성이 큰 수혈 대란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로서는(최악의 경우 나중에는 수혈이 필요한 사람은 각자 알아서 피를 구해오라는 식이 될 수도 있다) 헤모퓨어 같은 혈액대체제라도 구비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피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가끔 일어나는데(O형이나 특히 Rh-형 같은 경우) 이때 혈액대체제라도 있으면 며칠은 벌 수 있지 않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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