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와 예술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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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와 예술

2017.10.31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화가들은 그림으로 담고자 펜과 종이를 찾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미처 미술 도구들을 준비하지 못 했다면 어떻게 할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코펜하겐의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카페에서 백발의 한 노인은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앉아 아이패드를 꺼냅니다. 그리고는 컴퓨터 브러시 앱과 디지털 펜을 사용하여 창밖 푸른 바다와 칼더의 붉은 조각이 있는 풍경을 쓱쓱 그립니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년생)입니다. 영국의 팝 아티스트이자 제2의 피카소라 불릴 만큼 생존 작가 가운데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화가입니다. 호크니는 전통적인 회화 방법만이 아니라 폴라로이드 필름, 포토 카피, 팩스,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등 다양한 매체의 실험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특히 2009년부터는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업으로 아이패드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는 잠에서 깬 후 창밖의 풍경을 바로 그릴 수 있도록 아예 머리맡에 아이패드를 놓고 잠이 듭니다. 아침이 되면 꽃과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서 바로 가까운 벗들에게 그 아이패드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전송합니다. 또한 청력이 좋지 않은 호크니는 전화 대신 문자를 통해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교감을 나눕니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담을 수 있는 포켓이 달린 재킷을 특별히 디자인하여 입기도 합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저는 컴퓨터나 기계의 사용이 능숙하지 못합니다. 오랜 기간 사용한 붓이나 물감과 같은 전통적인 회화도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명 S펜, 노트 펜이라 불리는 디지털 터치 펜을 갖춘 휴대폰을 갖고 있지만 사용하는 일이 드뭅니다. 게다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언가 수공적인 일이어서일까요? 기계를 이용하여 그리는 과정이 감성적으로도 끌리지 않고, 그야말로 기계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호크니는 노년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멋진 시각 도구라며 즐깁니다. 작은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선의 굵기, 투명도, 명암, 색깔 등 다양한 방법들을 발견하고 숙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창의력을 개발해가면서 그는 그의 표현대로 매일 아침 싱싱한 꽃을 친구들에게 보냅니다. 꽃을 본 사람들은 캔버스가 아닌 디지털 이미지이지만, 작가의 아우라를 느끼며 그림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의 아이패드 그림에서는 그의 손맛이 느껴집니다. 그만의 조형언어가 있습니다. 기계복제화시대 대량생산된 상품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유일무이함이 있고 따듯한 감정이 있습니다. 결국 기술이 발전될수록 어쩌면 인간의 손맛을 느끼게 하는 예술이 잠식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호크니에게는 테크놀로지가 예술적 표현 능력을 보다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준 셈입니다.

고도로 산업화되어가는 시대, 시각적 이미지의 재현 매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가 발달되어가는 시대에 그래도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다움이 아닐까요? 그것이 형식이든 내용이든 그 어떤 것이든 말입니다. 호크니는 테크놀로지와 인간다움의 성공적인 결합을 예술로 증명해보입니다.

물론 손 편지의 향수, 종이책의 냄새, 손으로 직접 쓴 명함 등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로 살아가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그리워합니다. 아날로그의 감성은 메마르고 건조하고 각박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여름에는 부채에 그림을 그려 선물하기도 하고, 연말이나 새해에는 연하장을 그렸던 기억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면서 아날로그적으로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에만 집착할 것도 아니고 기술에만 맹목적으로 따를 일도 아닙니다.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의 결합을 추구하는 재창조의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좀 더 즐겁고 행복한 것을 공유하며 인간다움을 나눌 수 있도록, 테크놀로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예술이 일상화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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