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의 역풍...허리 휘는 취준생들

카테고리 없음|2017. 10. 26. 23:39


이젠 외모·말발이 최대 스펙


표정 성형·스피치 학원 성행

학원비 부담 증가


처진 입꼬리 올려 인상 밝게

색깔 맞춰 옷 입기도 가르쳐

5회 60만원 고가 스피치 만석

겉보기 등급올리기 과열 양상


  기업의 하반기 공채 시즌이 한창인 가운데 학벌·토익점수 등의 스펙 차별을 지양하는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되면서 되레 ‘외모 스펙’ 올리기에 올인하는 역풍이 불고 있다.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은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고, 토익 학원 대신 스피치 학원에 달려가게 됐다고 푸념한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으면 취업에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취준생들은 고가의 시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2년째 여러 대기업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김모(여·27) 씨는 처진 입꼬리를 올리기 위해 보톡스를 맞는 시술인 일명 ‘표정 성형’을 받았다. 김 씨는 “뚱해 보이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인상이 한결 브라이트해 보일 것 같다’는 상담실장 말에 혹했다”며 “과외 월급을 받는 날 바로 50만 원 정도 비용을 결제했고, 시술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남모(29) 씨는 면접에서 호감을 줄 수 있는 옷 고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 남 씨는 “옷을 워낙 못 입어서 고민이었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색깔만 잘 맞춰 입어도 첫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개인별로 잘 어울리는 립스틱 색깔 등을 알려주는 ‘컬러 진단’, 체형에 맞는 옷차림을 추천해주는 ‘톤 진단’은 20만 원을 호가한다.


남성들의 ‘취업 성형’도 부쩍 늘었다는 게 성형업계의 이야기다. 서울 강남 지역의 한 성형외과는 면접에서 호감을 주는 인상으로 만들어준다고 홍보, 남성 눈꼬리 성형 전문 병원으로 유명해졌다. 대학가가 몰려 있는 신촌의 한 병원 관계자는 “남자들이 M자 이마 등 때문에 비절개 헤어라인 교정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값비싼 스피치 학원에도 취준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대일 면접 강의는 5회(90분) 60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고액이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인기다. 서울 강남구의 한 스피치 학원 관계자는 “수강생의 답변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카카오톡으로 보내주고 피드백도 해준다”며 “바뀐 채용 트렌드에 특화된 커리큘럼을 제공한다”고 자랑했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조차 블라인드 채용이 ‘겉보기’에만 치중하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7월 인사 담당자 4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외모·임기응변 같은 단편적인 면들로만 지원자를 판단할 우려’(45.0%·복수응답)라거나 ‘인재 채용을 위한 일정한 기준, 판단 근거 모호’(47.5%·복수응답) 등을 이유로 19.1%의 응답자가 블라인드 채용에 반대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형수술이나 고액 컨설팅을 받아 취업 준비를 하는 풍토가 계속되면 취업 준비 단계부터 빈부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민·이희권 기자 human8@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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