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 몸에 좋다구?


만성 장염 치료

 저축 은행도 탄생


   수술 중 피가 부족한 사람은 수혈을 받고, 장기가 손상된 사람은 장기를 이식받는다. 그렇다면 만성 장염에 시달리는 사람은 무엇을 이식받으면 될까. 정답은 바로 ‘똥’이다. 아직 놀라지 마시라.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옛말을 교훈 삼아 최근 국내에서는 건강한 똥을 저축하는 은행도 탄생했다.


초코케익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sl8511&logNo=22016820509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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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왜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다른 사람이 싼 똥을 장에다가 이식하겠다는 걸까. 이 발칙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까닭은 현대의학 기술로도 손 댈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장염을 잡기 위해서였다.


상한 음식을 먹으면 그 안에 있던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는 독성물질이 장에서 염증을 일으킨다. 그런데 원래 몸속에 살고 있던 세균이 장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악랄한 녀석은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Clostridium difficile)이다. 평소에는 아무 탈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장 속 세균끼리의 생태계가 무너지면 독소를 배출해 치사율이 높은 위막성대장염을 일으킨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65세 이상이 이 세균에 감염되면 약 10%가 한 달 안에 사망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 항생제로는 완치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학계에서는 1930년 항생제가 개발된 뒤 과거에 없던 위막성대장염이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내 똥을 대변은행에 저장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면 건강한 똥인지, 어떤 장내세균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반드시 검사해야 한다. 

사진은 골드바이옴 연구원이 대변 샘플 안에 들어 있는 DNA를 추출하기 위해 원심분리를 하고 있다. - 이정아 제공


대변이식으로 만성 장염 치료

건강한 장에서는 유산균, 유익한 대장균 등 ‘이로운 균’이 살모넬라균이나 병원성 대장균 등 ‘해로운 균’에 비해 훨씬 수가 많아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로운 균은 음식물을 발효시켜 소화를 돕거나, 장벽에 들러붙어 해로운 균이 번식하지 못하게 한다. 건강한 장내세균 생태계는 이로운 균이 약 85%, 해로운 균이 약 15% 정도다. 세균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건강하다.


그런데 항생제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병의 원인이 되는 균뿐만 아니라 장내세균까지 없어지게 된다. 즉 이로운 균이 사라지면서 상대적으로 항생제에 강한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 장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결국 평소에 나타나지 않았던 독성이 나타난다. 그래서 오랫동안 항생제를 복용한 사람은 위막성대장염에 걸릴 확률이 높다.

 

건강한 장은 선홍색이지만(왼쪽), 위막성대장염에 걸린 장은 누런 고름이 잔뜩 생긴다. - Nature Microbiology 제공


치과의사에서 유산균 연구자로 변신한 뒤 현재 김석진좋은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김석진 소장은 “위막성대장염은 일반 항생제로는 치료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것을 치료하겠다고 강력한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다가는 오히려 또 다른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생겨 더욱 위험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2012년 2월 토마스 보로디 호주 소화기질환센터 센터장과 알렉산더 코럿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정제해 환자의 장에 넣었더니 위막성대장염 증상이 사라졌으며, 완치율이 90%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쳐 리뷰 소화기내과학&간장학’에 실었다(doi:10.1038/nrgastro.2011.244).


이후 미국,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 위막성대장염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변이식술이 퍼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최명규, 조영석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과 박수정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팀 등이 대변이식술을 하고 있다.

 

건강한 똥 저축하는 ‘똥 은행’

대변이식술에 앞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역시 ‘건강한 똥’을 얻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수준의 건강한 똥은 구하기가 어렵다. 2013년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대변은행인 ‘오픈바이옴’을 세웠다. 대변이식술을 위한 대변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대변을 이용한 또 다른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후 캐나다와 영국, 네덜란드 등에 대변은행이 생겼고, 국내에서는 6월 아시아 최초로 김석진좋은균연구소가 ‘골드바이옴’을 열었다.


8월 9일 기자도 대변을 기증할 수 있을까 궁금한 상태에서 골드바이옴을 찾았다. 김 소장은 “건강 상태가 우수하지 않은 대변을 환자에게 이식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엄격하고 까다로운 테스트에 합격해야 대변을 기증할 수 있는데, 합격률이 100명 중 고작 4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무 똥이나 기증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자료 : 김석진좋은균연구소 제공


일단 성별과 나이는 관계없다. 하지만 흡연이나 음주 등 생활 습관이나 현재 건강 상태, 과거 병력, 가족력, 혈액검사로 알 수 있는 백혈구 수치와 에이즈 바이러스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 감염 여부, 그리고 대변 속 해로운 균이나 기생충 감염 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한다. 비만이거나 고혈압 환자, 변비가 있거나 자주 설사하는 사람도 기증자 명단에서 제외된다. 현재 골드바이옴에는 수십 명의 대변이 보관돼 있다.


골드바이옴은 대변 기증자와 환자를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에 대한 특허를 출원 중이다. 혈액이나 장기를 이식할 때처럼 대변도 기증자와 환자 간에 ‘궁합’이 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사람마다 필요한 세균의 종류와 수가 다르므로, 환자에게 부족한 세균이 많은 건강한 똥을 이식하면 더욱 효과적”이라며 “가족이나 배우자의 대변을 이식 받을 때 심리적으로 훨씬 편안하다는 점도 고려한다”고 밝혔다.




골드바이옴 측은 대변이식술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건강한 똥에서 장내세균을 모아 담은 ‘장내세균캡슐’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유럽과 미국, 캐나다에서는 먹을 수 있는 장내세균캡슐이 상용화됐다.


최근 건강한 똥은 대장을 넘어 다방면으로 연구되고 있다. 3월 독일 막스플랑크노화생물학연구소 연구팀은 짧은 생애 동안 사람과 비슷한 노화 과정을 겪는 터콰이즈 킬리피시(Nothobranchius furzeri)를 이용해, 나이든 물고기의 장에 어린 물고기의 변을 이식했더니 수명이 늘어나고 노화가 지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doi:10.1101/120980).


김 소장은 “당뇨 환자의 경우 건강한 사람과 비교했을 때 장내세균의 생태계가 조금씩 다르다”고 밝혔다. 당뇨 환자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장내세균 중에서 페르미쿠테스 속이 적고 베루코마이크로비아가 많이 산다(doi:10.1542/peds.2011-2736).



이에 따라 낙산(butyrate)처럼 이로운 균이 생산하는 물질이 줄어들고 해로운 균이 증식할 수 있다. 김 소장은 “비만과 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의 경우 공통적으로 부족한 세균을 이식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똥을 만들 수 있을까. 김 소장은 “장내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많이 사용해 키운 육류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며 “장내세균이 먹이로 삼는 섬유질이 많이 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라”고 조언했다. 쓸모없고 더러운 것으로 버려졌던 똥이 건강을 되찾고 목숨을 살리는 일등공신이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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