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회의 청문회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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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회의 청문회

2017.04.24

지금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 스캔들로 시끄럽습니다. 이 사건은 아키에 여사가 사립학교 재단인 오사카의 모리토모(森友)학원의 학교부지 헐값 매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와, 아베 총리가 이 학교에 기부금을 냈는지 여부와 관련된 것입니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두 혐의 모두를 부인하면서 “나와 아내가 관련됐다면 의원직과 총리직을 사퇴하겠다”고 극언함으로써 선정적인 뉴스가 됐습니다. 

지난달 말 우연히 일본 NHK방송의 아키에 스캔들 관련 청문회 생중계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리토모 학원의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이사장을 상대로 참의원 및 중의원 예산위원회가 오전 오후에 걸쳐 2시간씩 별도로 실시하는 증인 환문(喚問)이었습니다.

가고이케 이사장은 대체로 아베 총리 부부의 혐의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특히 100만엔 기부금 건은 “너무 소중한 자리였기에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학교에 왔던 아키에 여사가 “아베 총리가 주는 것이라며 돈이 든 봉투를 줬다”고 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열렬한 팬으로 아베 총리의 우익노선에 찬동해 학교에서 천황의 교육칙어를 되살리고, 기미가요를 부르게 한 장본인이 가고이케 이사장입니다. 그가 아베 총리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학교 이름이 ‘아베신조 기념소학교’, 학교의 명예교장이 아키에 여사인 터에 이 학교에 아내를 시켜 100만 엔의 기부금을 낸 것이 무슨 큰 범죄라도 되는 양 아베 총리가 의원직과 총리직을 건 것도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기억에 착오가 있었다고 기부사실을 인정해도 그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청문회 이후 아키에 여사를 의회 청문회에 세워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아베 총리의 인기에 영향을 줬다고 하나 아직도 지지율은 50%를 웃돕니다. 일본인들이 사안 자체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사안에 대한 청문이기에 의원들의 질문과 증인의 답변 내용도 관심사였지만 필자에게는 그보다 한국 국회의 청문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의 청문 절차와 과정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것은 증인선서의 내용과 증인이 거기에 서명 날인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우선 증인에게 10분간의 모두(冒頭)발언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증인은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증인의 뒤에는 변호사가 앉아서  까다로운 질문이 나오면 증인은 변호사와 귀엣말을 나누며 답변 내용을 상의했습니다. 증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우리 국회도 도입해야 할 제도라고 여겨졌습니다.

정당 간 의석비례로 합의한 결과이겠지만 참의원에선 자민당 민진당 공명당 공산당 유신회 자유당 등의 순서로 대표 질문자가 나와 진행했습니다. 중의원에서도 비슷한 순서였습니다. 우리와 다른 것은 첫 심문자인 자민당의원이 2시간의 심문시간 중에서 30분 이상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민당 의원의 심문은 시간이 긴 만큼 질문을 총괄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질문 시간이 짧아져 마지막 의원은 5분도 안 됐습니다. 그런 구조였음에도 심문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질문시간 초과로 마이크가 꺼지는 일은 4시간 심문 동안 한 번도 없었습니다. 

증인은 까다로운 질문에는 “형사소추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국회에서라면 이런 경우 “이실직고하라”고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질문은 사실관계에 집중됐고,윽박지름이나 훈계 따위는 없었습니다. 

동어반복의 질문도 없었습니다. 같은 사안을 묻더라도 이전 질문자와는 각도를 달리해 물었습니다. 물어보고 답변도 듣지 않거나, 증인의 답변을 중간에서 끊는 일도 없었습니다. 시간의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물을 것은 다 묻는 일본식 효율을 보는 듯했습니다. 

증인과 의원은 먼저 앉은 자리에서 손을 들어 사회자인 위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다음 각각 질의대와 증언대로 나와 발언했습니다. 질문과 답변은 반드시 서서 했습니다. 증인은 “예” “아니오”라는 짧은 답변을 하기위해서도 매번 일어서 증언대로 나가야 했습니다. 다리가 건강하지 않으면 증언대에 서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질문하고 답변하는 우리의 방식이 유일하게 나아 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의 국회 청문회는 의원들의 인기발언 경연장입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질문이라야 잘된 질문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질문도 많고, 증인들을 죄인 다루듯이 호통치고 훈계하는 버릇도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7분 질문에, 5분 답변 식의 기계적인 시간운용으로 걸핏하면 질문자의 마이크는 시간초과에 걸려 꺼집니다. 동어반복의 불필요한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합니다. 국회 청문회가 소리만 요란할 뿐 진실규명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일본에서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이 있지만 청문회제도는 그중에서도 시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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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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