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 지키자 [김영환]

카테고리 없음|2017. 3. 7. 12:02


비관적인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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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 지키자

2017.03.07

탄핵 사태 속에서 헌법과 공직선거법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180일이라는 법정 판결 시한의 절반을 겨우 지나가는 시점에 졸속으로 비판 받을 판결을 내릴 모양입니다. 통진당 해산 결정에도 1년이 걸렸습니다. 그간 ‘국정농단’이라며 흥분하던 언론과 탄핵에 앞장섰던 정치인들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자며 시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승복하자는 말은 옳지만 헌재를 존중하려 했다면 언론은 처음부터 선동 대신에 사실 보도의 철칙을 지켜야 했고 정치인들은 촛불시위에 권장이 아닌 자제를 시켜야 했습니다. 

최근 주목할 변화는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태극기 시위에 나와 “탄핵을 탄핵한다”고 외쳤다는 소식입니다. 국회의 소추절차의 위법성에 대한 대통령 변호인 측의 주장을 헌재와 언론이 외면, 왜곡하고 있으니 국민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것이겠죠. 공무원 징계조차도 단심제인 대통령 탄핵보다는 훨씬 복잡한 4심제라는 것입니다.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라는 현수막이 붙은 촛불집회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문제점들에 대하여 박근혜 대통령만 총공격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시위는 과장된 최순실 씨의 비리 보도로 기획되고 촉발된 것이지만 대통령은 ’국회선진화법‘으로 무장한 야당이 버티고 있어 나라를 뜻대로 통치할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을 때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것으로 드러난 민간 선박 세월호 침몰의 탄핵사유 추가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럼 7시간 동안 국회와 야당 대표 등 고위 공직자들은 다 어디서 뭐 했느냐고요. 

태극기 집회는 친박 집회가 아니라 언론, 국회, 검찰, 재판의 불공평에 대해 ‘민주적 법치’를 촉구하는 방어적 성격이라고 봅니다. JTBC 태블릿PC의 조작보도 의혹, 종편 등 매스컴의 촛불 선동, 매출 200조 원으로 세계적 브랜드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표적용 구속, 헌재의 친 국회적인 편파 재판 등으로 국민을 우습게 보는 데 따른 항의의 표시라고 봅니다. 국가의 심각한 좌경화에 대한 강렬한 분노도 함께 터지는 것입니다.  

탄핵은 한미FTA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광우병 폭란, 세월호 등으로 이어진 대선불복 운동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간 박대통령은 좌익이 저항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정책을 많이 시행했죠. 통합진보당 해산, 개성공단 폐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교조 법외 노조화, 주한미군 사드배치 결정 등입니다. 헌법 위반이라며 탄핵사유로 추가된 블랙리스트 역시 반정부적인 문화인에 대한 지원을 체제 수호 차원에서 막으려는 통치 행위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탄핵은 우파 정책에 반대하는 1,500개 단체가 총공격을 가한 종합세트라고 느껴집니다. 

그 총공격의 도우미가 야당 추천만으로 구성된 특검, 어불성설로 100만, 200만 명 시위 운운하며 입을 맞춘 듯한 전체주의적인 보도로 잘 조직화한 매스컴의 선전·선동, 촛불시위 발화점이 된 의문의 태블릿PC 등이었다고 봅니다. 많은 언론이 최순실 씨의 재산이 10조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임무가 종료된지 며칠이 지난 6일 특검은 최 씨 재산이 228억 원이라며 부정축재 의혹은 못 밝혔다고 발표했습니다. 10조 원이라던 독일 검찰의 재산 포착 정황은 어디서 입수했을까요. 역대 대통령의 비리를 다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요란을 떤 신문의 광란에 견주면 참으로 초라한 이 수치가 최순실 사건의 진상이 아닐까 합니다. 변호인들은 최종 준비서면에서 나라를 촛불로 덮고 대통령 하야 요구와 탄핵을 불러온 최순실게이트의 총액은 15억 원도 안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습니다. 

석 달 간의 특검 수사는 음모가 드러난 고영태 씨와 녹음 기획자 이 모 부장 등 속칭 ‘안산파’가 빠져서 부실했습니다. 대통령과 변호인들은 출연액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공익재단 출연이 뇌물이 아니라고 강력 부인했지만 특검은 특혜 대가의 뇌물이라며 헌재의 탄핵심판 최후 판결이 임박한 시점에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선 탄핵 후 죄목 찾기’, 탄핵소추 의결은 증거로 해야 한다는 법에 대한 우롱입니다. 

헌재는 법치의 보루가 되어야 함에도 강일원 주심 재판관은 ‘준비서면’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탄핵소추장의 재작성을 코치했고 국회의 재의결 요건을 문제 삼지도 않았습니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그를 ‘국회의 대리인’이라고 공격했습니다. 방청객의 말에 따르면 높은 법대에 앉아 있는 재판관들은 졸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전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유죄 확정 판결도 전에 직무가 즉각 정지된 국가원수 탄핵의 중차대한 적법성 심리를 아주 가볍게 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특검은 국정농단의 사유가 차고 넘친다고 했지만 탄핵을 반대하는 변호사들과 그를 따르는 국민들은 탄핵을 기각하고 파기환송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고 주장합니다. 국회의 소추안의 13개 항을 개별 표결하여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지 않고 탄핵 찬반으로 일괄 표결한 것, 180일 시한을 무시하고 재판관의 퇴임에 맞춘 헌재와 정치권의 탄핵 심판일 담합 의혹, 삼권분립 원리에 따라 3대 3대 3이어야 할 각 부(府) 추천의 재판관 정족수 미달, 9명이어야 하는 재판관 총 정원 미달 등이 재판 절차의 흠결이라는 것입니다. 헌재가 대통령 변호인 측의 증인 신청을 지연전술이라고 막은 것도 공정성과 중립성에 의문이라는 것이죠. 피청구인 역시 조속한 복귀를 위해 신속한 결정을 원할 게 당연하지만 진상 규명의 장애물에는 변호인들이 항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헌재의 결정이 어떻게 나오던 큰 후유증이 예상됩니다. 탄핵 정국에서 급부상한 전 대한변협 회장인 김평우 대통령 측 변호사는 국회 소추 절차의 하자를 들어 탄핵소추장은 찢어버리라며 파기환송인 각하를 주장합니다. 이것이 민심의 양분을 막을 ‘신의 한수’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헌재는 정국안정을 위해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헌재는 더 먼 미래에까지 계속될 국가의 안정을 내다보고 역사 앞에 떳떳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비리는 사라져야 하지만 역대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비리와 견줄 때 사소한 비리를 이유로 여러 탄핵 절차의 하자 속에서 쉽게 탄핵이 결정된다면 앞으로 많은 대통령들이 탄핵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우리는 1987년 헌법을 만든 후 여섯 차례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경험했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을 파면한다면 헌재는 자유가 너무 넘쳐서 방종한 폭주 언론과 ‘독재’라고 비판받는 국회의 손을 들어 그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탄핵을 가장한 ‘국회의 정변’이죠. 닉슨 미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발생에서 탄핵 의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절차의 정당성을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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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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