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네 말이 옳구나, 네 말도 옳구나"


"중립이란 대개 저런 것이다"


   얼마전 경복궁 근처를 걷다가 문득 떠오른 이야기인데, 또 얼마전 완변 회의를 하다가 다시 생각났다.(최근에 경복궁 근처에 언제 갔었나를 생각해 보니 저 둘이 같은 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튼 그래서 적어둔다.


황희 정승 


황희 정승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정치가.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상. 

영의정에 18년, 우의정 1년, 좌의정 5년까지 합치면 총 24년간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세종 시대라는 태평성대를 이끌었고 그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기도 한 훌륭한 정치가이자 능력있는 공직자

였지만, 반면 청탁 때문에 수차례 사직 권고를 받고, 뇌물을 좋아하는 

등 도덕성에 흠이 있던 인물.

출처 나무위키

edited by kcontents


초등학생 때였을 텐데, 어느 정승에 대해 배웠다. (정승 이름은 물론 기억하지만 중요하지 않으니 빼고 말한다.) 제 집의 하인 둘이 다툼을 하다 그 정승에게 판결을 청하러 왔다고 했던가, 한 사람이 자초지종을 말하자 정승은 “네 말이 옳구나” 했단다. 남은 한 사람이 제 입장에서 다시 말하자 정승은 또 “네 말도 옳구나” 했다. 지나가다 이를 본 부인이 그런게 어딨냐고 핀잔을 주니 정승은 질리지도 않고 “부인 말도 옳구려” 했다고 배웠다. 공감 가지 않는 말들이므로 기억 나지 않지만, 이야기가 끝난 후 교사는 정승의 지혜를 기리는 말들을, 그것을 배워야 한다는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부인과 정승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정승은 어찌 그리도 호방하고 침착할 수가 있었나. 정승은 어찌 그리도 공명정대할 수 있었나.

간단하다. 


하인 둘이 어떻게 싸우든, 부인이 무어라 핀잔을 하든, 그는 정승이었으니까. 나랏일을 책임지고 있는데 아랫것들의 싸움 쯤이야 누가 옳든 시시한 일일 뿐이니까.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은 건, 어느쪽이든 자신에게 아무 가치도 없을 때뿐이다. 된장국을 먹든 참치김치찌개를 먹든 상관 없으므로 나는 늘 누가 메뉴를 물으면 아무 거나 괜찮다고 답한다. 


둘이 뭐라고 싸우든, 그 정도인 것이다. 내가 메뉴를 고르는 건, 된장국과 돼지김치찌개가 선택지로 나올 때다. 육류를 먹지 않으므로, 내가 선택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 돼지김치찌개를 택하는 순간 나는 곤란해지므로, 나는 선택해야만 한다.


중립이란 대개 저런 것이다. 어느쪽이든 자신에게는 아무 해가 없을 때 취할 수 있는 태도다. 선택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선택이 영향을 미칠 그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미래의 자신이 받을 영향 같은 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배운 정승의 이야기는 저기서 끝났지만, 아마 뒤는 이렇게 이어지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계속해서 싸운다. 주먹다짐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랬다면 정승에게 들켜 혼이 났을 것이다. 그러고도 다툼은 끝나지 않고 그들은 반복적으로 제들끼리도 싸우고 정승에게도 찾아간다. 정승은 생각할 마음이 없다. 매번 허허 웃으며 둘 다 옳다고 버티던 정승은 어느날 버럭 짜증을 낸다. 


보기만 해도 피곤하니 어쩌니 하며 앞으로 또 그 이야기를 꺼내면 경을 칠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부인은 옆에서 또 짜증을 내지만 정승은 그 정도 쯤이야 찾을 수 있다. 결국 둘은 그렇게 다툼을 멈추고 원수지간이 되었지만, 더 이상 다투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소문으로 퍼져 정승은 수백 년 후 교과서에 훌륭한 사람으로 실린다.


남의 일은 남의 일로 남겨두고, 같잖은 사람은 사람 대접 하지 않고, 그런 것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면 나는 역시 그냥 소인배로 살란다.

출처 wanbyun.org 안팎님의 글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