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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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2016.11.22


영국 BBC방송이 내년 봄부터 한국어로 대북 방송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영국의 언론들은 BBC가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각각 30분씩 중·단파로 라디오 뉴스를 북한을 향해 송출한다고 보도했습니다. BBC가 목표로 하는 주 청취자는, 북한에서 바깥 세계에 큰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과 여성입니다.

BBC는 벌써 오래전부터 한국어 방송을 검토했지만, 중계소 설치 장소 물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단파 라디오는 파장이 아주 짧고 직진성이 강해 전파 발사 장소와 방향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장소가 확정되어야만, 방송전파를 내보내는 방법이 결정되고, 이어 송출기기를 주문 생산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BBC는 한국어 방송 개시가 결정되었다고 공개하면서도 중계소 위치가 어디인지는 밝힐 수가 없다고 합니다.

북한을 향한 단파 방송의 중계기 설치에 가장 효율적인 장소로는 북한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를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 설치하는 것에는 우리 정부가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러시아와 중국인데 북한 주민을 주 청취층으로 하겠다는 BBC의 입맛에 맞게, 두 나라가 중계소 설치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차선(次善)으로 일본과 몽골을 들 수 있겠는데 일본은 NHK가, 몽골은 국영방송이 각각 한국어 국제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 방송에게 자국 내의 중계소를 쉽게 허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근 한창 논란이 되는 무인 항공기나, 공해상 선박에 설치된 중계소를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무인 항공기 중계소는 최신 방법이며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는 있겠지만, 발진기지 확보가 관건입니다. 유럽에는 공해상에서 송출하는 방송시설이 꽤 많습니다. 이들은 각국의 까다로운 설치 조건을 피해 방송국이나 중계소를 차려 놓고 전파를 발사합니다. BBC도 이 두 방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대응입니다. 지난해 BBC가 한국어 방송을 시작한다고 하자 북한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 집단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 방송을 방해할는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방송 전파는 틀림없이 들리지 않게 방해(jamming)할 것이고, 중계소는 파괴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 못합니다.

이미 북한은 근해에서 정상적으로 작전 중이던 우리 해군 56함을 격침시킨 적도 있고, 정보를 수집하던 미국의 정보함 푸에블로 호를 납치했으며, EC 121 정보탐지기를 격추하기도 했습니다. 일반인들과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공격적으로 행동했는데, 일반인들을 상대로 하는 방송을 북한이 곱게 둘 리는 만무합니다.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의 어떤 방해에도 문제가 없도록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글을 쓰던 중 갑자기 생각이 나 20여년 만에 서재 한쪽에 있던 소니사가 제작한 단파 겸용 수신기를 꺼냈습니다. 몽골에서 공부할 때 애용하던 휴대용 트랜지스터입니다. 당시엔 200볼트 용 어답터를 사용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집 안을 다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건전지를 사다가 넣었습니다.

몽골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 수신기로 한국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전에 KBS 소식지에도 이 이야기를 썼었습니다만 밤에는 출력을 크게 증가시킨 KBS2 라디오의 전파(중파)가 몽골까지 닿아 잡음 속에서였지만 들을 만했습니다.

낮에는 KBS국제 방송이 송출(단파)하는 정오 뉴스를 어쩌다 운이 좋으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다는 것은 북한이 이 시간에 방해전파를 발사하지 않았을 때를 말합니다. 북한의 방해전파 때문에 늘 청취가 불가능하다가도 어느 날은 5~6분 간 깨끗하게 들렸습니다. 아마 북한의 방해전파 송출기가 고장이 났거나, 방해 담당자가 실수를 했을 겁니다. 이런 날은 현진건의 소설 제목마냥 ‘운수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럴 수 없는 날은 같은 시간대에 방송하던 NHK 국제방송을 통해 국내 뉴스를 간접으로 들었습니다.

BBC가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면 북한을 향해 방송하는 역외방송이 미국의 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 그리고 우리나라 각 방송사 등으로 늘어납니다. 북한을 향해 TOT 사격(한 목표물에 여러 포대가 발사한 수많은 포탄이 동시에 도착하는 것)하듯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를 북한 청취자에게 쏟아붓게 됩니다.

북한 주민 중 단파 수신기로 해외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가 29%에 달한다고 합니다. BBC의 대북 방송을 계기로 북한 주민의 귀가 자유 세계를 향해 조금이라도 더 열리고, 대북 방송이 이들을 통해 남북 통일의 마중물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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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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