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방어와 합리화, 어떤 상황에서 튀어나올까

카테고리 없음|2016. 10. 11. 22:47


부끄러움(shame)과 죄책감(guilt)

자의식적 정서(self-conscious emotion)로 구분


   기쁨, 신남, 슬픔, 외로움, 쓸쓸함, 놀라움, 당황스러움 등 수많은 감정들의 세계에서 조금 특별하게 학자들의 관심을 받는 감정들이 있다. 부끄러움(shame)과 죄책감(guilt)이 그것이다. 


source griefhealingblog.com


감정들은 그들의 원천과 기능에 따라 주목을 받곤 하는데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자의식적 정서(self-conscious emotion)로 구분되곤 한다. 자신의 행동과 정체성등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반영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흔히 나쁜 일이 발생할 때 슬픔, 분노, 좌절 등의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그 나쁜 일의 발생 원인과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지각할 때 느끼게 된다. 달리 말해,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자기 검열을 통해서 발생하는 감정이다. Tangney 등의 학자들에 의하면 이들 감정은 “우리의 사회적, 도덕적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잘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피드백이다”. 즉,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면,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어딘가 흠집이 생겼다는 신호를 받고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양심’과 가까운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만약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시정하는 등의 책임감 있는 행동, 또는 도덕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다.


 

source nomorestrangers.org


언뜻 생각하면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상당히 비슷한 감정인 것 같지만, 연구들에 의하면 이 둘은 매우 다르다고 한다. 발생 원인과 결과 모두 다르다(Tracy & Tangney, 2012).


우선 공통점은 어떤 부정적 사건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깨달음이다. 하지만 그 부정적 사건의 내용이 다르다. 부끄러움의 경우 꼭 ‘도덕’이 관련된 사건일 필요는 없다. 예컨대 길거리에서 콰당 넘어졌다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식이 탄로났을 때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반면 죄책감의 경우 옳고 그름이 관련된 사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넘어지면서 다른 사람을 함께 다치게 만들었다거나, 나의 무식함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해를 입혔음을 지각하게 될 때, 즉 ‘잘못했다’는 인식이 발생할 때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해 부끄러움은 단순한 ‘쪽팔림’을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감정인 반면 죄책감은 구체적인 잘못에 대한 ‘후회’에 가까운 감정이다. 이런 면에서 부끄러움은 초점이 자신의 정체성(또는 체면) 전반에 있는 반면 죄책감은 구체적인 행위에 그 초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그 후의 대응도 매우 다르다. 어떤 잘못에 대해 죄책감 없이 부끄러움만 느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써서 그 잘못을 은폐하고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반면, 실제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죄책감을 느낀 사람들이라는 연구들이 다수 있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부끄러움은 자기 방어 및 합리화와 더 큰 관련을 보이는 반면 죄책감은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행동들과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


또한 부끄러움은 화, 공격성, 타인을 비난하는 것과도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 한 연구(Thomaes et a., 2008)에 의하면 파트너보다 자신의 성적이 저조했다는 피드백을 받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사람들은 그런 피드백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후 게임에서 파트너에게 심한 벌칙을 주는 등 더 높은 공격성을 보였다. 특히 다른 사람들 위에 서고 싶어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나르시시틱한 경향이 있으며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연구자들은 부끄러움이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향하나, 곧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는 내적 저항이 생기게 되고, 결국 타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림으로써 여전히 자신은 잘났고 우월하다는 느낌을 유지하고 부끄러움을 떨쳐내는 것이 아니겠냐고 설명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자기보다 더 잘난 누군가로 인해서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너무 부끄럽다며, (자신의 무능함을 해결할 게 아니라) 괘씸한 그 더 잘난 누구를 가만두지 않겠다던 사람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자존감과 마음의 평화는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밖의 모든 것은 놓치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움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 또는 성적표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렇게 유용한 감정을 잘못 사용하는 건 너무 아깝다. 부끄러움이 생긴다면 뭔가 책임지고 시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그러지 않고 자기 방어에만 몰두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도록 하자.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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