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가 안 돼도 챙겨야 할 것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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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가 안 돼도 챙겨야 할 것

2014.10.31


정책은 주로 법에 따라 정해집니다. 법은 국회에서 만듭니다. 대한민국헌법에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일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치인은 선거로 뽑습니다. 선거에 나서는 사람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부터 챙깁니다. 정치인은 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표가 있는 사람은 표를 들고 정치인을 압박하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와 사회에 중요하지만 표가 없는 분야도 정치논리에 맡겨야 하나요?

청소년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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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이상인 사람에게 선거권이 있습니다. 청소년은 이들이 자라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정책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청소년에게는 자기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할 투표권이 없습니다. 청소년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성은 높지만 선거권이 없으므로 정치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국회에는 수많은 기관과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이 나옵니다. 그러나 청소년분야는 지역구 의원이나 비례대표, 전문 분야 같은 영역조차 없습니다. 청소년들은 자기 의견을 전달할 창구가 없습니다. 그저 관심 대상으로서 그들의 언로가 되어줄 사람도 잘 없습니다.

청소년은 미래 인재로서 우리의 미래상인데도, 이들의 권익을 대변할 길도 없고, 길을 마련할 생각도 없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입니다. 청소년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맡을 역할을 볼 때, 투표권이 있고 없음을 떠나 청소년의 생각과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길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 정책을 고민하여 이들의 삶을 보살펴야 합니다.

청소년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 전반에 영향을 미칠 대상인데도 우리 사회는 청소년 문제에 무관심합니다. 그만큼 미래사회에 대비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매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과학기술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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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중요하지만, 현실로 푸대접 받는 곳이 과학기술입니다. 국정을 다루는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는 과학기술계를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정책이 힘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여러 선거 때마다 과학기술계는 힘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과학기술정책을 바꿀 때에도 정부는 과학기술계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여성부 통일부 교육부 과학기술부 폐지가 문제 됐을 때에 엉뚱하게 과학기술부가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과학기술계는 이런 식으로 취급해도 반발이 없을 것이기에 그랬다는 후문이 흘러나와 아연하기도 했습니다.

정책은 중요성에 따라 순위를 결정해야 합니다. 정책이 힘으로 결정된다면 야만시대입니다. 힘에 따른다면 어린이 노인 여자 장애인 같은 약자는 설 땅이 없습니다. 획일 사회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힘이 약하더라도, 표가 없더라도 중요하다면 챙길 수 있어야 선진사회입니다. 당연한 것을 달라고 외쳐야 하는 현실이라면 희망이 없습니다. 달라고 외친다고 주는 사회도 아닙니다.

(사)사랑나눔전국네트워크(상임대표 주용학)는 지난 10월 초 현 정부의 청소년정책을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어 청소년 정책을 다루었고, 앞으로 이런 문제를 계속 다룰 것이라 합니다. 자기를 대변할 힘이 없지만 중요한 분야를 챙기는 단체가 생기기에 희망을 봅니다.

과학기술계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대과연)’이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힘을 모아 전달하려고 움직였습니다. 준비기간도 짧고 모인 힘도 약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뭉치도록 떠미는 게 바람직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라 앞날에 중요한데도 스스로 챙길 힘이 없어 내팽개쳐진 것이 곳곳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야는 푸대접을 받으면 자존심 때문에 그 길을 포기할 우려가 큽니다. 외환위기 후 과학기술계가 그랬습니다. 표가 없더라도, 힘이 없더라도, 이익이 안 되더라도 우리 사회에 중요한 것이라면 챙기고 배려해 줄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입니다. 청소년 정책, 과학기술 정책과 같은 분야에서 표나 힘의 논리가 작용하지 않는 사회이길 기대합니다.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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